2010년 4월 3일 미국에서 신기한 물건이 출시됐다. 아이패드였다.
이미 애플은 아이폰 3GS로 휴대폰에서 혁명에 성공했다. 아이패드 출시 전 새로운 태블릿에 대한 기대도 높았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았다. 발매 당일, 비관론의 운명은 비관적으로 끝났다.
판매속도는 아이폰보다 훨씬 빨랐다. 아이폰은 100만 대 판매에 74일 걸렸다. 아이패드는 예약판매로만 30만 대를 팔았고, 100만 대까지는 28일 걸렸다. 다음해 애플이 아이패드 2 이벤트에서 발표한 판매량은 1,500만 대였다.
발매날은 아이폰 3GS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꽤 진기한 풍경이었다. 아이패드를 사려는 사람들이 가게마다 긴 행렬을 섰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그 줄의 꽤 앞부분에서 웃으며 인터뷰를 했다. 잡스가 매장에 깜짝 등장했다. 애플 팬들에게는 축제 분위기였다. 일본에서는 새 게임이나 하드웨어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미국에서 그런 행렬이 대중적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폰부터가 아닌가 싶다.
애플의 새로운 기기가 국내에 정식 발매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던 때였다. 아직도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아이패드가 국내에 언제 들어올지 궁금해 했다. 아이폰에서 뒤늦게 스마트폰의 맛을 본 사람들 중 일부은 용감했다. Wifi 모델의 아이패드를 먼저 써보겠다고 외국에서 직접 구매를 시도했다.
전자기기는 국내법상 전파인증을 받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은 불법으로 규정했다. 많은 얼리어답터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웃지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유인촌 당시 문화부장관은 4월 26일 '통관이 금지된' 아이패드를 이용해 브리핑을 했다. 얼리어답터들의 화난 마음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었다. 유 장관이 위법행위로 신고당하는 등 불만이 폭발했다. 공교롭게 그 다음 날인 4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비상업적인 용도로는 1인당 한 대의 반입은 문제삼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유인촌 장관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개인의 전자기기 반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운 셈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이패드를 위한 전자책 등의 콘텐츠가 풍부하게 나왔다. 북미의 태블릿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국내에서는 2010년 9월 갤럭시 탭이, 다음 해 4월 아이패드와 비슷한 크기의 갤럭시탭 10.1 이 나왔다. 국내 실정에 맞춰 안드로이드 앱을 제공하기도 했다.
북미와 달리 아이패드는 국내에서는 큰 힘을 못 쓰고 있다. 핵심 기능이라 부를 수 있는 아이튠즈와 아이북스가 국내 시장에는 서비스되지 않아 기기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플은 뉴 아이패드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리더 기기의 혁명을 보여었다. 아이패드 미니 등으로 기기의 다변화를 시도하며 여전히 세계 태블릿 PC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다르다. 아이패드와 태블릿 시장이 단순히 '화면이 넓어서 편하다’를 넘어서는 맞춤 콘텐츠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출판시장과 신문은 위기다. 태블릿 PC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전자책은 과도기에 있고, 출판시장은 항상 위기였다. 언제쯤 출판사들이 태블릿을 통해 안정적으로 책을 만들수 있게 될 지 궁금하다.
- 2010년 4월 3일, 아이패드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