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10일 <삼국지 천명 2>가 압구정 엔쿨 PC방에서 시연됐다.
2000년 한국은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뜨거웠다. 경쟁작들도 속속 등장했다. <킹덤언더파이어>처럼 <삼국지 천명 2> 역시 <스타크래프트>의 자리를 노리던 국산 유망주 중 하나였다.
<삼국지 천명>은 <스타크래프트> 전부터 존재했던 프랜차이즈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삼국지는 인기 콘텐츠였다. 'KOEI'의 <삼국지> 시리즈가 고전 삼국지 재현에 노력했다면 <삼국지 천명>은 전혀 달랐다. 일단 RTS였다. <워크래프트>보다 <커맨드앤퀀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UI나 게임방식이 많이 닮아 있었다.
스토리도 특이했다. 삼국지를 RTS로 옮긴 게 아니었다. 삼국통일에 실패한 제갈량이 하늘에 기도해서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위촉오가 결전을 재현하는 설정이었다. 덕분에 이름은 '삼국지'지만 게임 안에는 기계형의 미래 유닛이 등장했다.
캐릭터는 더 특이했다.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캐릭터를 게임으로 옮겨놓았다. 미래를 배경으로 총과 탱크를 타고 싸우는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캐릭터는 참신했다. <삼국지 천명 1>은 꽤 인기를 끌었다. 오나라 시나리오인 <손권의 야망>이라는 확장팩도 발매됐다. 이 게임들은 멀티플레이가 되지 않았다. 캠페인만 있는 RTS게임이라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있었다.
'동서게임채널'은 <삼국지 천명 2>를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우영 화백의 만화 캐릭터에서 벗어나 좀더 현실에 가깝게 3D 캐릭터를 새로 디자인했다. 스토리도 1편과 달리 했다. 촉나라는 전작처럼 기계문명이었지만, 오나라는 마법 문명을, 위나라는 삼국지 원형의 모습을 띠었다. 게임 밸런스는 약간 안 맞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타크래프트>의 밸런스가 비정상적으로 좋았다.
<삼국지 천명 2>는 시연 후 5월말(29일이라 알려져있다.)에 출시했다. 전작에 이어 기대를 모았다. 멀티플레이 서버도 있었다. 중과부적이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거인을 넘기에는 힘들었다. 아, The winner takes it all.
멀티플레이 서버는 결국 운영이 중지됐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서게임채널의 홈페이지는 최근까지도 접속 가능했다. 2000년대 그 느낌 그대로 접속되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는 접속이 되지 않는다.
동서게임채널은 이후 프로젝트명 <삼국지 천명 3>으로 시작한 풀3D RTS <영웅의 길>을 개발했다. 2003년 뉴스에도 나왔지만 아쉽게 출시엔 실패한 듯하다. 동서게임채널은 80년대년부터 게임을 유통, 개발했던 회사였다. 처음엔 루카스아츠나 EA 게임들을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했다. 국문화도 했다. 불법복제가 판을 치던 게임 시장에서 처음 패키지 시장을 열어낸 회사였다.
IMF가 터지고, 많은 게임 유통업체들이 망하거나 철수했지만 동서게임채널은 살아 남았다. 그 무렵엔 외국 게임사들이 국내에 지사를 세웠다. 직접 게임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동서게임채널은 게임 유통만으로 버틸 수 없었다. 그 결과물이 <삼국지 천명>이었다. 패키지게임 유통업체 중 장수했지만 <스타크래프트>와 온라인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4년에도 삼국지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산 웹게임과 모바일의 영향 탓이다. <밀리언연의>가 나온다는 뉴스를 며칠 전 들었다. 요즘 삼국지들도 경쟁작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픽션을 가미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탱크를 타고 싸우는 삼국지는 참 참신했었던 것 같다. 요즘은 나오는 미소녀보다는 더 나은 상상력 아닐까 싶다. 이번에 나온다는 <밀리언아서>의 외전인 <밀리언연의>는 삼국지를 어디까지 해석할지, <삼국지 천명> 때만큼 충격적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