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머무는 인도의 벵갈루루는 인도 남부에 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인도의 큰 도시인 뭄바이, 델리, 꼴까따 등 대도시는 인도 북부에 위치해 있다. 그 도시보다 남쪽으로(적도 방향으로) 1,500-2,000km 쯤 내려가면 벵갈루루가 있다.
인도 남부지역 가운데 위치한 벵갈루루는 인도의 첸나이, 태국의 방콕 등과 위도(12.5도)가 비슷하다. 다행히 해발 950m의 데칸고원 위에 만들어진 도시라 연중 온화한 편이며 아침, 저녁이 서늘하다. 그리고 바닷가와도 300~400km 정도 떨어져 있어 날씨가 습하지도 않다. 퍼니즌의 이주민 대표님은 내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벵갈루루는 인도에서 축복을 받은 곳이에요. 날씨가 정말 좋아요. 샌프란시스코에 내놔도 손색없어요. 햇볕은 따가운 편이지만 그늘은 시원해요. 작년에 집에서 에어컨을 2~3번밖에 켜지 않았어요"
그래서 숙소를 잡을 때도 주로 회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하여 에어컨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거실 천정에는 2개의 큰 팬들이 방마다 1개씩 있으니, 바람이 잘 통하면 선선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1월이었다. 1월이면 벵갈루루도 겨울이다.
벵갈루루의 겨울 날씨는 훌륭했다. 낮에는 30도를 훌쩍 넘지만 아침저녁에는 20도 근처에 머문다. 얇은 바람막이가 필요할 정도다. 새벽에는 15도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이불을 꼭 덮고 자기도 했다. 낮과 밤이 선선해 야외 운동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여름에도 기껏해야 35도까지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위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내 생각에도 많이 더워야 우리나라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벵갈루루의 여름은 3월부터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여기저기에 나무마다 꽃이 사시사철 피어 있으니, 봄의 느낌은 딱히 나진 않았다. 여름이 하지보다 좀 더 빠른 이유는 5월 하순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계절풍인 '몬순'이 오기 때문이다.
벵갈루루는 지금이 여름이다. 어떠냐고? 엄청 덥다.
40도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햇볕은 따가운데, 지열까지 올라온다. 위아래로 뜨겁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습하지 않다. 숨이 턱턱 막히지 않는다는 거. 점심 먹으러 바깥에 나가면 바짝 마른 건식 사우나에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갑자기 배신감이 들었다. 대표님께 거짓말쟁이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대표님도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 벵갈루루에 60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왔단다. 신문에는 이상고온 소식으로 난리다. 날씨가 더우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벵갈루루의 올해 여름은 유난히 혹독하다. 사진은 인도타임즈에 실린 기사 중 일부.
#1. 식당에서
나: (식당에서 자리를 잡아 앉으면서) 시~~~~원~~~~한 생수(Chilled bottled water) 하나 주세요.
종업원 : (잠시 후에) 네, 물 여기 있습니다.
나 : 더 시원한 거 없어요?
종업원: 우리는 생수를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아요.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나: 헉.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시원한 걸로 주세요.
종업원: 그러면 얼음(아이스큐브)를 준비할까요?
나: 얼음은 안 주셔도 됩니다.
종업원: 얼음은 돈 받지 않습니다. 그냥 드릴 수 있어요.
나: 얼음은 주지 마세요. (그 이유는 얼음을 만드는 물이 어떤 물인지 모르기 때문)
종업원: 차가운 물을 원한다면서요. 물에 얼음을 넣으면 차가워져요.
나: 얼음은 주지 마시고요. 그냥 물 주세요. 흑.
#2. 회사에서
나: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왔더니, 아직도 덥네요. 아 더워. 에어컨이 참 고맙다니깐요.
(갑자기 정전)
나: 정전이 됐네? 그래도 건물에 발전기가 왔으니 금방 작동되겠지.
(에어컨 재개)
나: 아. 시원해. 에어컨은 정말 최고의 발명품이야. 에어컨~ 사랑한다!
(또 정전)
나: 에어컨이 왜 멈췄지?
(에어컨 재개)
나: 에어컨이 다시 켜졌구나. 아이구 신나라. 선선하게 일이 술술~
(또 정전)
나: 엉? 에어컨이 작동을 안하는 건가?
(에어컨 재개)
나: 에어컨이 또 켜졌네. 고마운 에어컨 같으니라구.
(또 정전)
나: 뭐야? 장난하는 건가?
(결국엔 에어컨은 멈췄고 1시간 뒤에 수리 기사가 왔다)
직원: 불안정한 전압으로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일주일간 사용 중지입니다.
나: 아~ 왜~!
#3. 2달 전, 숙소 수영장에서
나: 아파트 뒤에 야외 수영장이 있어요. 깔끔하고 좋던데.
룸메이트: 날씨도 슬슬 더워지고 있으니, 이번 주말에 한 번 도전해볼까요?
나: 근데 여기 아파트들은 수영장이 참 많은 거 같아요.
룸메이트: 날이 더우니깐요. 애들도 물을 좋아하니까요. 수영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나: 서울 강남 스포츠 클럽에서 4년간 배운 '학원 수영'을 가르쳐드릴게요. 수영은 팔각도가 생명입니다.
룸메이트: 나도 강남 스포츠 클럽 수영을 배워봐야겠네. 주말이 기다려져요.
(금요일 쯤)
룸메이트: 아파트에서 메일이 날아왔어요. 수영장 폐쇄한대요.
나: 아~ 왜~. 한번도 이용하지 못했는데..
룸메이트 : 수영장에 누수가 생겨서 물이 샌대요. 곧 이유를 찾아 조치하겠대요.
나: 그럼 수영장이 빨리 고쳐질까요?
룸메이트: 여긴 인도에요.
나: 아 그렇군요. 포기해야 겠네.
(2개월째 수영장은 폐쇄된 상태다)
#4. 커피를 마시다
나: 더워. 더워. 더워.
룸메이트: 어디 뭐 시원한 거 안 파나?
나: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어요. 더워. 더워.
룸메이트: 근처 카페들을 찾아보죠. 어디에 가고 싶어요?
나: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카페인에 중독되고 싶어요.
룸메이트: 스타벅스는 여기에서 10km쯤 떨어져 있는데..
나: 근데 근처에 카페가 있어요? 아이스커피 오케이?
룸메이트: 찾아봐야 알겠죠. 한번 나가 보도록 하죠.
(근처 호텔 라운지 발견. 비싸겠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로 결정)
나: 뭘 마시지? 아이스커피는 없네.
룸메이트: 여긴 그런 거 없어요. 일단 마실 수 있는 걸 찾아봅시다.
나: 난 콜드커피! 이거. 딱 좋을 것 같아.
룸메이트: ㅇㅎㅎㅎ
(종업원이 콜드커피를 갖고 등장)
나: 이거 뭐야? 뜨거운 아메리카노 위에 바닐라 커피를 올린 거네?
룸메이트: 맛은 어때요?
나: 달고, 미지근하고, 아.. 이거 뭐야?
(다음 주말에 택시를 타고 스타벅스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