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준 가톨릭대학교 교수 연구팀의 '인터넷 게임 장애 진단용 조성물 및 진단을 위한 정보제공 방법'에 관한 특허의 뿌리는 자신들의 연구에 있다.
특허 신청서에는 정 교수가 작성한 '혈액시료 기반 인터넷 게임 중독 특이적 유전변이체 마커 발굴 최종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일반적인 논문과 거리가 먼 보고서 형식의 자료다. 이 보고서가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정부 지원 사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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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톡스 사업②] 실체 없는 중독 위해, 자가당착에 빠진 '12억 원' 보고서 (현재 기사)
[디톡스 사업③] '게임 중독, 뇌과학으로 해결' 정부가 계획한 디톡스 사업
2015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약 2년간 준비된 정 교수의 최종보고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의 연구과제 중 하나다. 81페이지의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연구에는 총 1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정 교수는 최종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연구팀의 특허 신청에 대해 "연구 결과에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보고서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많았다. 또한, 단순한 결과 보고서로 치부하기에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다수 발견됐다. 보고서에는 연구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선행 조사부터 논리적 비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정연준 교수의 최종보고서
# '인터넷 중독 = 게임 중독'이고, 행태 비슷하니 정신 질환? 실체 없는 중독 만들기
타 게임 중독 관련 논문 및 보고서와 비슷하게, 정연준 교수의 보고서에서도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을 별다른 논의 없이 동일시하는 오류가 발견된다. 인터넷 중독을 보이는 많은 경우, 인터넷을 통해 게임을 한다는 자료를 인용하였지만,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을 같은 선상에 놓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
무엇보다 게임 중독의 존재 자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인터넷 중독 = 게임 중독'이라고 정한 보고서의 논리는 위험한 가정까지 확장된다. 인터넷 중독이 정신 질환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니 "청소년 뇌 발달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중독과의 연관성도 덧붙였다. 정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약물 중독 또는 알콜 중독과 관계있는 유전자가 있으니, 인터넷 게임 중독 관련 유전 정보를 찾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근거는 인터넷 게임 중독과 약물/ 알코올 중독 사이 신경생물학적 과정의 유사성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 알코올 중독자가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인터넷 중독자가 인터넷 또는 게임 관련 자극에 반응하는 뇌 부위가 비슷하다.
▲ 패턴의 유사성이 단순히 '중독'이라는 질병까지 갈 수 있을까?
"게임 중독과 관련된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는 정 교수의 목표를 위해 전문 용어에 대한 자의적 해석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인터넷 중독과 유전적 형질의 관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멩지아오 리(Mengjiao Li)'의 2014년 논문을 자주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멩지아오 리의 논문은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를 비교하여 인터넷 중독은 유전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논문에는 '인터넷 중독'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멩지아오 리는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 Internet Addiction Disorder)' 대신 '문제가 있는 인터넷 사용(Problematic Internet Use)'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미 통계 매뉴얼인 DSM-5에 인터넷 중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DSM은 정신병 진단을 위한 척도로 사용하며, 중독은 DSM 기준에게 따라 의사가 진단한다.
실제로 멩지아오 리는 과도한 인터넷 사용 자체에 관해서만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논문에서 인터넷 중독에 대한 의료적 관점을 드러나지 않았다. 게임 중독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 단 87명에서 찾은 '게임 중독'의 비밀
실험에 대한 신뢰도도 부족하다.
정 교수의 특허에서 중요한 부분은 'miRNA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정보가 게임 중독 가능성을 말해준다'였다. 최종보고서는 이에 대한 결론을 단 87명의 데이터를 통해 내렸다. 또한, 성인이 아닌 청소년으로만 진행했다.
▲ 심지어 처음에는 계획되지 않은 실험이었다.
인터넷 게임 중독 관련 miRNA를 찾기 위해, 정연준 교수 연구팀은 먼저 87명을 '발견(discovery)'과 '확인(validation)', 두 집단으로 나눴다. 발견 집단(51명, 인터넷 게임 중독자 25명 포함)에서는 인터넷게임 중독 관련 혈장 miRNA로 추정되는 유전 정보를 10개를 정리했다. 실험 방법으로는 단순 비교에 가까운 '마이크로 어레이'를 선택했다.
이후, 확인 집단(36명, 인터넷 게임 중독자 20명 포함)에게 10개 miRNA가 인터넷 게임 중독과 관련되어 의미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정 교수 연구팀은 확인 집단에서 유의미한 관계성을 보인 miRNA 바이오 마커 3개를 찾게 된다.
보고서를 통해, 정 교수는 "(바이오 마커 3개가) 모두 차등 발현할 경우 마커의 발현이 정상인 경우에 대비해 위험도가 22배 높은 것을 확인"했다며 miRNA의 유용성을 검증했다고 자평했다.
▲ 검증은 단 한 번, 87명의 표본을 나눠서 진행한 게 끝이다. 추가 자체 검증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외에는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내 다른 연구과제 결과와 비교는 했지만, 자체적인 추가 검증이나 실험을 진행하진 않았다. 단 한 번, 87명에게서 얻은 유전 정보로 인터넷 게임 중독과 관련된 miRNA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miRNA와 관련된 실험은 청소년 유전 정보로만 실험이 진행됐다. 청소년과 성인 간 발달 차이가 있는 만큼, 청소년 유전 정보만을 바탕으로 해당 miRNA를 인터넷 게임 중독 관련 유전 정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 집단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자를 뽑는 기준이었다. 이 지점에서 정 교수 보고서의 가장 큰 한계 중 하나가 드러난다.
# 정 교수, 객관성 부족하다고 지적한 20문항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자 선별
인터넷 게임 중독자와 정상인을 나눈 기준은 KS-척도였다.
KS-척도는 2008년 제작된 '간략형 청소년 인터넷중독 자가진단 척도'로, 청소년의 편의를 위해 기존 K-척도 문항 수를 20문항으로 줄인 버전이다. KS-척도의 대표적인 문항에는 ▲ 다른 할 일이 많을 때에도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 ▲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현실에서 아는 사람들보다 나에게 더 잘해준다 등이 있다.
하지만, 정연준 교수는 연구 목적을 설명하며, 대부분의 경우는 자가진단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을 판단하고 "객관적 진단 및 평가 도구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터넷·게임 중독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혈액학적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찾는 것이 연구 목적이었지만, 정 교수 연구팀은 KS-척도로 나눈 두 집단을 비교하여 인터넷 게임 중독을 가렸고, 인터넷 게임 중독 관련 유전 정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스로 객관적 진단 및 평가 도구로 평가하지 않는 자가진단을 기준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을 판별한 이상, 최종보고서의 결론은 객관성을 크게 잃는다.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결국, 인터넷 게임 중독 또는 게임 중독 모두 실체가 여전히 없다.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르기엔 어렵다. 하지만 과기부에 뇌과학원천기술사업의 이름으로 12억 원을 지원받아 작성된 보고서다. 또 다른 논란인 KS-척도와 K-척도 역시 과기부의 전신인 정보통신부에서 제작했다.
과학의 탈을 쓴 뇌과학원천기술사업의 또 다른 이름은 '인터넷 게임 디톡스 사업'이다.
▲ 2008년 개발된 KS-척도. 문항 자체가 지금을 반영하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