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5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도입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현재 안대로 확정되면 올해 5월 예정된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게임장애'에 관한 규정이 발표되며 한국에는 2025년부터 적용될 전망입니다.
게임 중독은 장애일까요? 테니스나 영화 말고 게임만 '콕' 찝어 중독이나 질병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고민을 담아서 4월 5일, 국내·외 4개 대학의 교수들이 건국대학교에서 심포지움 "게임중독: 다양한 관점에서부터' ("Game Addiction -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를 열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심포지움에서 나온 알짜 내용만 '콕' 찝어드립니다.
심포지엄은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의 의역이 사용됐음을 밝힙니다.
스텟슨 대학교(Stetson University) 정신의학과 크리스토퍼 퍼거슨(Chistopher Fersuson) 교수는 비디오 게임 중독에 관한 '학자'의 관점("Scholars' Views of 'Video Game Addiction': Area of Agreement, Disposal and Conversation)을 주제로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새로운 것은 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퍼거슨 교수는 "예전부터 어른들은 만화책에도, 락 음악에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고 이야기합니다. 21세기 어른들 눈에 '가싯거리'는 바로 게임입니다.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은 기득권이 의제 설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위기 요소를 만들어 유포하고, 대중적 동의를 확보해 자신들의 통제력을 강화한다는 이론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이러한 도덕적 공황 이론이 게임에 적용되었으며 게임 중독 내지는 장애의 프레임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프레임이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요? 아래는 흔히 정신질환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DSM-5의 '인터넷 게임 장애' 기준표입니다. 이 중에 5개 이상 해당한다면 여러분은 게임장애의 대상이 됩니다.
1. 게임하지 않을 때 게임 생각을 하나요?
2. 게임을 할 수 없을 때 기분이 나쁜가요?
3. 게임에 많은 시간/돈과 쓰나요?
4. 게임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나요?
5. 게임 때문에 다른 취미/활동 포기한 적 있나요?
6. 당신 인생에 명백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게임을 계속 하나요?
7. 다른 사람들한테 게임하는 시간을 속인 적 있나요?
8. 부정적인 기분을 내려놓기 위해 게임을 사용하나요?
9. 게임 때문에 직업, 학교, 교우 관계를 잃어버린 적 있나요?
'게임'이 들어갈 단어에 여러분의 취미 생활을 아무거나 집어넣어보세요. 여러분은 그 행위의 중독자일까요?
기자는 요즘 취미로 드럼을 칩니다. 드럼을 치지 않을 때 드럼 생각을 하고, 적잖은 돈과 시간을 쓰고, 부정적인 기분을 내려놓기 위해 드럼을 칩니다. 드럼을 치기 위해 TV 보는 시간을 줄였고, 일이 생겨서 연습실에 못 가면 기분이 언짢습니다. 그러면 기자는 드럼 중독자인가요? 퍼거슨 교수는 "DSM-5 조사는 잘못된 비율을 가진 설문으로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게임을 특정해서 이러한 기준을 마련한 데에는 게임은 사용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장애가 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현재 학계에서는 논란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214명의 게임 학자, 심리학자, 의학자 등에게 설문을 보냈습니다. 그 결괴는 아래와 같습니다.
질문 / 찬성 / 반대 (%)
"비디오 게임 중독"은 정신 질환이다. / 60.8 / 30.4
인터넷 게임 장애에 대한 DSM-5 기준은 신뢰할 수 있다. / 49.7 / 36.7
WHO/ICD 게임 장애 진단은 유효하다. / 56.5 / 33.1
DSM/ICD 비디오 게임 중독 진단으로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60.9 / 28.1
아이들이 DSM-5 기준에 따른 게임장애가 될까봐 걱정한다. / 51.1 / 37.1
아이들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기준에 따른 게임장애가 될까봐 걱정된다. / 54.9 / 36.0
DSM-5나 ICD 기준이 제시하고 있는 게임 중독에 대한 두려움은 과장되었다. / 37.5 / 50.0
비디오 게임 중독 진단이 득보다 손해가 많을까 우려스럽다. / 43.5 / 47.7
게임 중독 진단이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악용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 35.5 / 50.4
비디오 게임 중독에 대한 우려는 신기술에 대한 도덕적 공황 때문이다 / 46.7 / 40.2
통신기술의 이용에 따른 사회적, 심리적 영향을 연구하는 하와이 대학교(University of Hawaii) 로버트 토쿠나가(Robert Tokunaga) 교수는 "인터넷 게임 '중독': 정말로 중독적인가? 문제적인가? 습관화된 패턴에 불과한가? (Internet (Gaming) Use “Disorder” Truly addictive, problematic (over) use, or merely habituated patterns of consumption?)"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토쿠나가 교수도 퍼거슨 교수의 도덕적 공황 이론과 유사한 이유로 영화, 라디오, TV 등 각종 미디어에 '중독'이라는 프레임이 적용된 사실을 지적합니다. 게임중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된 '미디어 중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1941년 학계에서는 영화와 라디오가 소비자에게 중독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요즘 '라디오 중독'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994년 처음으로 등장한 '비디오 게임 중독'은 비교적 최신 '미디어 중독'입니다. 라디오 중독처럼 먼 훗날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지도 모르죠.
토쿠나가 교수는 라디오 중독부터 게임 중독까지 '미디어 중독' 모델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먼저 프레임을 씌우는 입장에서 '미디어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저항력이 사라지고 금단 증상이 생긴다'고 진단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보편적인 검증을 받은 진단 도구는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습니다. 그리고 과몰입에 빠진 사람이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연적으로 과몰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미디어 소비를 중독의 문제로 보는 것은 효용이 없다"는 토쿠나가 교수는 중독 대신 '미디어 습관' 개념을 제시합니다. 미디어 습관이란 일련의 안정된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미디어 소비 패턴으로 이러한 구조로 작동합니다.
사용자가 어떤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받으면, 해당 미디어를 사용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다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습관의 영역으로 단순히 '1.기분이 좋아져서 2. 약물을 한다'는 로직과는 달리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소비를 이해하는 데 설득력이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게임이 좋아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게 되는 맥락과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래의 중독에 보상은 없지만, 게임을 비롯한 미디어 '습관'에는 보상, 상호 작용, 도전 과제와 기술 등의 '보상' 구조가 작동합니다. 토쿠나가 교수의 모델 속 과몰입에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사용자의 소비 패턴을 큰 틀에서 조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성장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볼 수 있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토쿠나가 교수는 "미디어 습관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그 미디어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에 달려있다"고 설명합니다. 게임이 나쁘니까 막아야 하고 병으로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사용자가 게임에 과몰입하게 된 패턴이 무엇인지를 보자는 겁니다.
노스 텍사스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Texas) 댄 J. 김(Dan J. Kim, 김단종) 교수는 "사회관계 관점에서 본 온라인 게임 중독: 사회적 관계가 게임 중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Online Game Addiction from Social Relationship Perspective: How Does Social Relationship Impact Game Addiction?")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즐거움, 스트레스 해소, 경쟁심 등의 이유로 게임을 즐깁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네트워킹'이나 '친구와의 상호 작용'을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사회적 관계 맺음'도 게임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MMORPG의 길드, 혈맹, 파티를 꼽을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서울의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관계와 과몰입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네트워킹'이나 '친구와의 상호 작용'을 위해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 게임의 사회적 관계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게이머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MMORPG를 한다는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게임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는 게임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 게임에 대한 호감이 올라가면 그 게임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모델입니다.
김 교수는 해당 연구에 사용된 게임의 장르가 MMORPG에 한정됐지만, <포켓몬 고> 등 현실과 게임의 만남이 확대되는 만큼 사회적 관계가 게임 과몰입을 유발하는지에 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정의준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청소년 게임과몰입 원인과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초,중,고교생 2,000명을 추적 조사한 정의준 교수의 연구는 게임에 과몰입한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청소년이 왜 게임에 과몰입하는지 연구한 값진 자료입니다.
게임 과몰입군에 속한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은 무엇이 다를까요? 5년 간의 연구 결과, 게임 과몰입군은 부모의 비일관성과 과잉간섭, 과잉기대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주로) 학업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역시 높았습니다. 이들 그룹의 부모합리성, 부모의 애정 등은 유의미하게 낮은 값을 기록했습니다.
청소년이 한 번 게임에 과몰입하면 수년간 계속 게임에 빠지게 될까요?
5년 동안 12~13% 정도의 게임 과몰입군이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수치에 대상자는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과몰입 진단을 받은 청소년들의 절반 정도가 정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부모의 교육,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준 교수는 부모의 심리적 특성은 자녀의 심리적 특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억제하는 데 부모 양육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모의 감독이 높을수록 게임 과몰입이 낮아지지만, 부모의 과잉기대와 과잉간섭이 높을수록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디스이즈게임에서는 여러 차례 정의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 있습니다. 정의준 교수의 연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상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6일 열리는 '제4차 게임문화포럼'에서 정의준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석학들이 말하는 '게임과몰입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야기도 '콕'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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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동일시되는 게임. 게임은 정말 '도박'과 같은 성격일까? (바로가기)
“게임 과몰입, 해결 열쇠는 사회와 부모들에게 있다” 정의준 교수 인터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