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미디어에 비친 한국은 “게임 중독의 나라”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 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게임 과몰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 언론 미디어의 보도를 살펴보면 유독 아시아권 국가.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중국이 가장 대표적인 ‘게임 중독의 나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ABC 방송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게임) 중독의 나라이며,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중독자수가 200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는데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이나 유럽은 상대적으로 ‘게임중독’에 대한 사회 논란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게임중독, 혹은 과몰입과 관련된 보고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과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나 중국은 무언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문화적 특이성이 존재하고, 이러한 것들이 게임 과몰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요?
25일, NDC 2019에서 강연을 진행한 정의준 건국대학교 교수는 지난 2014년부터 4년 동안 청소년 약 2,000명을 패널로 직접 조사 및 추적해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의준 교수는 과연 어떠한 요인들이 청소년층 게임 과몰입에 영향을 끼치는지, 부모나 환경과 같은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적했다고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해서 정의준 교수는 “청소년층의 게임 과몰입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 요인. 특히나 ‘학업 스트레스’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 한번 게임에 과몰입하면 빠져나올 수 없을까? No!
정의준 교수는 조사대상 중 명백하게 ‘게임 과몰입’ 군으로 분류된 청소년 패널과 ‘일반군’으로 분류된 청소년 패널들을 1년 간격으로 5년 동안 추적한 결과 눈에 띄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외부에 어떠한 특별한 조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몰입군’ 유저의 50%~60%가 매년 ‘일반군’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만약 게임중독이 질병이라면, 한번 과몰입군에 들어간 패널은 특별한 치료활동이 없을 시 계속 현상을 유지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준 교수의 추적 결과 과몰입군 유저는 매년 자연스럽게 일반군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에 일반군 패널 또한 약 10% 정도가 매년 과몰입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결과 5년 동안 내내 ‘과몰입군’에 머무른 패널은 전체의 1.4%에 불과했습니다.
정의준 교수는 5년 내내 과몰입군에 있었던 이들 1.4%의 패널을 주목했습니다. 그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모두 ‘학업 스트레스’를 높게 받았으며, ‘공격성’이 높고, ‘자기 통제’능력이 떨어지며 친구와의 커뮤니케이션, 교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부모의 기대가 과도하게 높고, 양육태도가 일관적이지 않은 패널일 수록 오랫 동안 과몰입군에 머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 자녀의 심리적 특성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의준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과몰입군’으로 분류되어 공격성, 스트레스, 자기통제 같은 수치가 부정적으로 나온 청소년 패널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들의 부모 또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부모가 자기통제 능력이 떨어지고, 고독을 많이 느낀다면 해당 자녀들 또한 자기통제 능력이 떨어지고, 고독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패널들이 과몰입군으로 많이 분류되었습니다.
정의준 교수는 “실제로 자녀의 과몰입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부모의 양육 태도를 개선하는 것이 유효한 결과를 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과몰입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부모의 심리 및 양육태도를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 게임 과몰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꼭 ‘게임’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게임 과몰입을 ‘병리적 중독’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게임중독은 정신질환이며, 게임이 주된 원인’ 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다시 말해 ‘게임 이용시간’이 과몰입에 큰 영향을 끼치며, 게임을 많이 즐길 수록 쉽게 중독될 수 있다는 논리인데요.
하지만 이번 패널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년 ‘과몰입군’으로 분류된 패널들은 정작 게임 이용시간은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힘든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기 통제’가 게임 과몰입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즉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는 패널 일 수록 쉽게 게임 과몰입에 빠졌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기 통제력’에는 과연 어떠한 요인이 가능 큰 영향을 끼쳤을까요? 바로 ‘학업 스트레스’가 자기 통제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결국 학업 스트레스에 의해 자기 통제력이 떨어진 청소년들이 게임 과몰입에 손쉽게 노출된다는 것이죠. 정의준 교수는 “부모의 과잉간섭, 과도한 기대 등에 노출된 패널일 수록 학업 스트레스가 높았으며, 이들이 1년이 지나면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고, 그 다음 해에는 결국 게임 중독군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의준 교수는 “5년 가까이 패널들을 조사 및 추적한 결과, 게임 과몰입은 단순히 ‘게임’ 그 자체에 책임을 씌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청소년 게임 과몰입 문제는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 부모의 영향, 주변 환경 및 사회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