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문화연대는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과 관련해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최준영 소장이 사회를 봤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윤태진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이어진 토론에는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박승범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산업과 과장,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 온상민 해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과 문화연구자 이혜영 등 7인이 참여했다.
→ ① 문화연대 긴급토론회, "WHO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
② [패널토론] "게임 질병코드 이슈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세력은 의사"
첫 번째 발제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윤태진 교수가 맡았다. <누가/왜 우리를 환자로 만드는가? '게임 중독'의 질병화 역사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게임 중독 담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뒤에는 어떤 행위자들과 요인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브리핑했다.
첫 발제를 맡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윤태진 교수.
윤태진 교수에 따르면, 게임이 마약으로 간주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30년 전에 벌써 언론 미디어에서는 게임을 '마약'에 비유하는 기사가 등장했고, PC방과 바다이야기를 거치면서 게임은 '불순한 것'이 됐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몇 개의 사건을 거치며 게임은 병인(病因)이 됐다.
게임 중독에 미국 정신의학협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이하 APA)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2013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차 개정안, DSM-5에 '게임 장애'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범주로 분류된 상태였다.
그리고 2018년 6월 18일, 세계보건기구(이하 WHO)는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의 개정안, ICD-11을 공개했다. 초안이 발표됐을 때 쟁점이었던 게임 장애 항목이 그대로 있었다. 게임 장애는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발달적 장애'라는 대분류 아래, '물질 사용이나 중독성으로 인한 장애'에 속하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 항목에 들어왔다. 가까운 경우로는 도박 중독이 지목됐다.
이 결정에 모든 학자들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심리학자 빈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빈은, "WHO의 제안은 '물질 남용 연구'에 기반했기 때문에 게임을 '미디어 소비'로서 이해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게임 중독은 병리학적 정신장애로서 안정적인 구조와 높은 수준의 암상적 손상을 가지지 않고, 게임 행동의 병리화가 오히려 치유적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를 지목했다.
이러한 WHO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동아시아 국가의 정신의학자 집단이었다고 윤태진 교수는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게임 중독과 관련해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국가는 한국(91편)이었다. 뒤를 이은 것은 중국(85편)과 미국(83)이었으며, 나라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당연히 인구당 논문수 역시 한국이 1위였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는 논문이 나오는 분야와 전공이 다양했다. 하지만 한국은 유독 정신의학 관련 논문의 비중이 높았다.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게임 중독을 심리학적 현상으로서 분석하기보다, 정신의학 전공자가 의료적 차원에서 접근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윤태진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마도 연구비 지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국가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태도는,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체 연구자들 중 68.6%가 게임 중독 개념을 전제하거나 동의하고 연구에 임했는데, 한국,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 연구자들은 무려 90%가 게임 중독 개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단어를 명명하는 것은 연구의 가장 기초작인 작업이다. 우선 어떤 개념을 정의하고, 이로부터 사고를 발전시키는 것이 연구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연구자들은 그러한 기초 작업을 수행하지 않고 가장 많은 논문을 써냈다.
게임 중독 관련 논문의 연도별 증가 추세 역시 매우 중요하다. 2013년 DSM-5가 발표된 이후, 개념적 질문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 전에는 의미를 찾고 개념을 정의하는 작업이 중요하고 필요했지만, APA가 인터넷 게이밍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 이하 IGD)라는 것이 있다고 써놓으니,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게임 중독을 비롯한 질병화 담론은 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주장하고 반박하며 결과가 축적된 것이 아니라 APA 등 권위 있는 집단에 의해 탑-다운으로,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중독 연구의 주요 지원기관은 한국과 중국 정부 기관이었다. 가장 많은 논문을 지원한 단일 기관은 중국의 NSFC(National Natural Science Foundation of China)였다. NSFC는 50편의 논문 연구를 지원했다. 그 다음은 한국연구재단(35편), 한국 보건복지부(23편), 한국 미래창조과학부(17편) 순으로, 기관의 국적을 따지면 한국 기관이 75편으로 가장 많은 연구를 지원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게임 중독의 진단 도구와 척도는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척도는 영의 인터넷 중독 테스트(Internet Addiction Test, 이하 IAT)였고, 그 외에도 GAS(Game Addiction Scale), CIAS(Chen Internet Addiction Scale) 등이 있다. 1998년 공개된 IAT는 "일을 하기 전에 이메일부터 확인한다"라는 항목이 중독의 지표로 사용되는 등 매우 낡은데다 게임과 무관한 척도다.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척도를 쓰다 보니 유병률이 0.7%에서 15.6%까지 제각각이다. 증상은 같은데, 누구는 병이라고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는 꼴이다.
이렇게 학술적 근거가 불명확함에도 WHO가 게임의 질병코드 분류를 추진하는 현 상황에 대해 윤태진 교수는 '의료화(Medicalization)'의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한다. 의료화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 의학적 문제가 되는 것을 뜻한다.
게임 중독의 의료화, 질병코드 부여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윤태진 교수는 말했다. 바로 학부모와 의사들이다. 게임을 오래 하는 아이의 부모는 스스로 가정교육의 모자람을 탓할 필요가 없고,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저 게임이라는 병인에 아이가 손을 댔을 뿐이라고 믿으면 된다. 의사들 역시 게임이 수많은 병의 원인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병원은 비보험 치료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윤태진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까닭을 '도덕적 공황 이론'(moral panic theory)으로 설명했다.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가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인들의 개입을 부르며, 그 결과 공포와 해악의 이유를 지지하는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 다시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의 실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디어가 게임 중독 담론을 둘러싼 도덕적 공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윤태진 교수는 다음과 같은 2000년도 한겨례 신문의 보도를 예시로 들었다.
“경찰은 김 씨가 인터넷 머드게임에 중독돼 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9일 주검을 부검할 계획이다.” - 2000년 한겨레신문 보도
여기서 김 씨의 사인은 게임인가, 과로와 스트레스인가, 아니면 심장마비인가? 스트레스 때문에 게임을 했는가, 아니면 게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하지만 "게임이 사람을 죽였다"며 공포를 조장하는 미디어들의 실태는 '도덕적 공황'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론적으로 게임 중독의 의료화는 게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라고 윤태진 교수는 말했다. 대부분의 게임 중독 연구가 정작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았다. 어떤 장르, 어떤 플랫폼이나 디바이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게임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들 연구는 그런 것들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게임들의 내적 차이를 무시한 채 '게임'이라는 한 마디로 퉁쳤다.
윤태진 교수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가, 왜 우리를 환자로 만드는가? 누가 주범이고, 누가 결백한가?"
이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동연 교수가 <게임, 중독물질 혹은 질병코드가 아닌 놀이문화의 플랫폼>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동연 교수는 중세 이후 거의 모든 매체가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었지만, 게임처럼 질병으로 분류된 경우는 없었다고 말하며, 이러한 토론회가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그에 따르면 게임을 규제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3단계 정도를 거쳤다. 첫 단계는 청소년 보호론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셧다운제다. 보건의료나 정신의학의 차원이 아니라, 주로 청소년의 보호를 위한다는 문화담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규제였다. 기독교 단체, 학부모 단체 등 주로 미디어 감시 운동을 하던 단체들이 포진한 영역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2013년 발의됐다가 통과되지 못한 '게임중독법'이다. 전과 달리 매우 강력한 제도적 규제였고, 이를 통해 게임은 문화담론의 영역에서 정신의학의 대상으로 이동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한 문화 담론이었던 셧다운제와 달리, 게임중독법은 게임을 질병의 대상으로 정의하는 충격적인 규제였다. 문화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고, 당시 의학계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바로 현재, WHO 질병코드 분류다. 질병코드 분류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보건의료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담론에서 정신의학계로, 그리고 정신의학에서 다시 보건의료로 이동하는 문제적 과정을 거치며, 게임은 놀이로서 가치뿐 아니라 산업적 가치와 예술미학적 정체성까지 일거에 제거당할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고 이동연 교수는 설명했다.
많은 게임 중독 연구자들이 게임 중독을 우선 기정 사실로 만든 뒤, 그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가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이 뇌에 좋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많은 임상 사례들은 게임과 뇌의 관계에 대해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주의력 결핍을 유발하기는커녕 시력과 집중력 개선에 도움이 된다. 이처럼 게임이 뇌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임상 연구는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과학적 신빙성을 인정받았다.
이동연 교수는 정신의학자들이 위와 같은 연구는 무시한 채 게임을 물질중독, 행위중독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게임이 지니는 중독성은 물질적, 행위적 오남용이 아니라 감성적 몰입(emotional engagement)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의 중독 요인으로 거론되는 도파민의 분비나 내성, 금단 증상과 같은 용어들은,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들로 쉽게 대체된다. 즐거움, 몰입, 보상, 쾌락 등이다. 이동연 교수는 특히 게임 중독 연구자들이 게임에서 어떠한 경로로 보상과 쾌락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정과 내용을 빼고, 결과와 형식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과정과 내용을 빼고 게임을 이해할 수는 없다. 게임의 재미와 즐거움이 제대로 평가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은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게임이 가진 여러 가치들을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린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정신의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때문이라고 이동연 교수는 말했다. 정신의학자들은 단순히 정신질환을 치료, 연구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것이 질병이고 치료 대상인지를 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2013년 게임중독법 발의안을 주도한 것은 한국중독정신의학회로, 법안의 대표 발의자 신의진 의원 역시 이 학회 회원 출신이다. 미셸 푸코가 썼듯, "정신의학의 권력은 광기를 현실화한다."
이동연 교수는 지금까지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잘 나가는 산업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 혹은 규제의 대상으로서 유해한 것이라는 2가지 태도, 즉 산업육성론과 게임규제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말했다. 정작 놀이로서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 '놀이문화론'은 제3의 영역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는 상태에 머물렀던 것이다.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하는 입장과 규제를 하려고 하는 입장만 있는 이러한 상황이, 게임 중독과 같은 규제 담론이 나왔을때 게임업계가 역으로 '얻어맏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이동연 교수는 말했다. 즉, 놀이문화로서 게임을 진흥시킬 생각은 안하고 경제적 이익 취득에만 집중했다고 비판받게 되는 것이다. 이동연 교수는 영화의 사례를 들어, "영화가 힘들었을 때 영화를 지켜준 것은 분석, 연구, 학술적 토론이었다"며, 게임의 문화적 가치에 걸맞는 학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