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가 최근 이슈인 WHO의 게임 과몰입 질병 코드 분류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공식으로 물었다.
문화연대는 22일,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추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므로 찬성할 수 없다’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묻습니다'라는 긴 제목의 성명서를 공개했다. 게임 과몰입 질병 코드 분류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부처 별로 입장이 다른 정부에게 통일된 입장을 요구하는 성명서다.
성명서 전문은 아래와 같다.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추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므로 찬성할 수 없다’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묻습니다.
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2019. 5. 20.(월)부터 5. 28.(화)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기구 총회가 한국에서 특별한 관심인 이유는, 이른바 ‘게임장애 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자는 제안(ICD-11)이 총회 안건으로 상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건/의학의 관점에서 게임을 중독을 일으키는 행위 혹은 물질로 판단하고 강력 규제해야 한다는 관점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강력범죄 언론보도 중 상당수는 “게임에 빠져..”라고 범죄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의 밤12시부터 새벽6시까지의 인터넷게임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는,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행 중입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가칭 <게임중독법> 입법 논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게임은 그 동안 이중적 잣대로 판단되고 다뤄져 왔습니다. 중독물질이라는 보건/의학의 관점의 다른 한편에서 게임은, 현재와 미래 한국 산업의 성장 동력이자 한류의 중심으로 지원/진흥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언론에서는 한국 게임산업의 실적과 고용, 성장가능성 등에 대한 장밋빛 기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악마화하는 기사와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마치 ‘찬성과 반대’ 마냥 둘로 갈라진 이중 잣대로 인해 정작 필요한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가장 중요한 여가활동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이유, 문화활동으로서 게임의 가치, 게임의 예술성, 그리고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노동권과 인권, 젠더문제까지. 규제와 진행, 찬성과 반대와 같은 이중 잣대 속에 가려진 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 또한 시급히 만들어져야 합니다.
국제질병분류코드(IC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s of Diseases) 11차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한국에서는 다시 한 번 보건/의학 관점의 게임 규제 논의가 강화될 것입니다. <게임중독법>, 중독관리센터, 기금 조성 등 그 동안 보건의학계 일부가 얘기해왔던 법과 제도의 도입 논의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게임 질병코드 분류는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주로 약물중독과 도박중독의 근거를 차용한 ‘게임장애 gaming disorder’ 논의에서 유일하게 합의된 내용은 “게임장애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라는 분석글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게임장애의 정확한 증상은 무엇인지, 임상의는 게임장애 증상을 알 수 있는지, 게임장애로 인한 문제행동이 다른 정신장애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직 학술적/의학적인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화연대는 ‘게임장애 gaming disorder’의 질병코드 분류에 반대합니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게 서한도 보냈고, ICD-11에 대한 의견도 등록했습니다. 2019. 5. 3.(금) 긴급토론회를 통해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반대하는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청취했습니다. ‘게임장애 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 의학적, 학술적 근거 부족과 함께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조명과 게임의 예술성, 새로운 시대의 놀이문화로서 게임의 가능성 등은 문화연대가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건강은 질병에 걸리지 않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뿐만 아니라 육체, 정신, 사회적으로 온전하며 행복한 상태”라는 ‘세계보건기구헌장’의 정의에 따른다면, 게임은 현대인들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고, 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화연대의 입장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배우고, 즐기고, 소통하고, 휴식합니다. 게임은 예술이고, 문화이며, 일상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이미 정부에서도 잘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세계보건기구의 2018년 총회에서 ICD-11이 한 차례 무산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5차 개정안>(DSM-5)에 게임장애가 등장했고, 당시 ‘추가 연구가 필요한 범주’로 구분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정부에게는 최소 1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게임장애 gaming disorder’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근거가 나뉘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상황. 정부 부처 내에서도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과연 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부처 간 논의, 국무회의에서의 조정 노력 등의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은 다르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사회적 논의, 합의, 공론화 등의 가치와 프로세스는 왜 여기에서 찾을 수 없었을까요. 게임산업의 규모, 게임의 사회문화적 영향력과 가치가 다른 사회문화경제적 이슈에 비해 결코 덜 중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번주 내로 ICD-11은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상정됩니다. 우리 정부도 총회에 참여해서 토론하고, 논의하는 등 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겠지요. 과연 한국 정부는 ICD-11에, ‘게임장애 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분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요. 정부의 입장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공론화와 논의가 채 시작도 되지 않은,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신중해야만 합니다. 지금 이대로 보건복지부의 주장대로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결코 타당하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 문화연대의 주장이 100%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번 72차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ICD-11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추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롯이 찬성표를 던져야 할 과학적, 의학적, 학술적 근거와 사회적 논의가 너무나도 부족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묻습니다. 과연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