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모험왕) 차이나랩 대표가 최근 WHO의 게임 이용 장애(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 이슈 및, 이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각종 토론과 관련해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이를 편집해 소개합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1.
예전에 태극기 부대가 서울 시청 앞에서 박원순 시장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면서 인상적인 구호를 외쳤다.
“박원순, 나와! 이년아~”
그들은 박원순이 서울시장이라는 것만 알았고 이름만으로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2.
그들은 서대문 딴지일보 사옥 앞에서 또 다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어준, 나와라. 이 나쁜 놈아~”
그들 앞에 머리가 길고, 뚱뚱하고, 수염까지 난 중년남성이 다가와서 물었다.
“김어준이 나쁜 놈인가 보죠?”
“응, 아주 나쁜 놈이래, 아니, 나쁜 놈이지”
그 질문을 한 사람은 김어준이었다. 김어준은 자신을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정작 시위 당사자들은 나온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3.
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WHO의 ‘게임질병등재’ 관련 이슈에서 국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기사나 토론을 보다 보면 간혹 저 위의 상황이 떠오른다. 물론 이 문제는 찬성이든 반대이건 의견 표명은 자유롭다.
그런데 전문가로서 미디어를 통해 어떤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합당한 근거나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별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기본적인 내용이나 사실관계도 틀린 경우가 적지 않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4.
5월20일 전자신문에 기고된 카톨릭 의대 이해국 정신의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반적인 게임사용을 중독으로 규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게임산업의 비윤리적 이윤추구가 만든 중독성이 문제다. 사행, 선정 요소를 전략과 성취 요소보다 높게 만든 데 따른 것이라. 중독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게임산업의 비윤리 이윤추구가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올 것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산업계의 비윤리적 이윤추구의 문제점’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정신과 의사가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넌센스다. 또한 이해국 교수의 저 주장에서 ‘게임’이라는 단어 대신 ‘SNS’ ‘쇼핑’ ‘TV’ 심지어 ‘운동’이나 ‘공부’라는 단어로 교체를 해도 전혀 논리전개에 문제가 없다.
공부도 비윤리적인 사교육업계(스카이캐슬?)가 나서면 중독을 넘어 청소년 학대에 해당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게임중독일까? 과도한 학습일까? 혹은 학원폭력일까?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어릴 때 많이 듣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었다.
"TV는 바보상자야. 그러니 그만 봐"
5.
이해국 교수는 정신의학 전문가이니 만약 게임의 유해성을 입증하고 싶다면 적어도 본인이 관련 사례를 연구해서 발표하던가 그게 아니면 적어도 관련한 구체적인 연구 논문이라도 제시하면서 본인 의견의 합당함을 주장했어야 옳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고 게임회사의 윤리가 문제’라는 말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주장이기에 설득력을 잃는다. 내가 ‘정신의학적으로 게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 받아 들여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6.
어제 ‘MBC 백분토론’은 (아침에 하이라이트만 보았지만) 솔직히 황당함을 넘어 실소를 자아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토론의 압권은 게임학회 위정현 교수와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라는 대단히 긴 이름을 가진 단체 소속인 김윤경 정책국장과의 토론 중에 나온 논쟁이었는데 ‘정부가 게임산업 육성에 관여를 했는가? 안했는가?’에 대한 논쟁중에 나온 내용이었다.
김윤경 국장은 ‘1980년대 후반 한국의 PC사용용도 순위 중에서 게임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부의 게임육성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했는데 위정현 교수가 해당 주장의 근거로 논문(출처)을 묻자 ‘저희는 일반인이라 굳이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용도 황당하지만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공중파에서 당당하게 한 용기는 안타깝기까지 했다. 앞으로 유머짤로 오랫동안 온라인에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토론내내 김윤경 국장이 보여준 태도도 전반적으로 '무례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분야에 전문가도 아니고, 태도까지 무례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공중파에 패널로 섭외된 것일까?
7.
김윤경 국장의 소속단체인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라는 곳을 구글과 네이버를 통해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이 의미는 비밀스럽게 활동하던가 혹은 활동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내 추측은 후자였다.
짧은 검색 내용으로는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는 2018년 9월 창립했다. 비영리법인 등록은 2017년 8월에 했다. 활동 회원은 대략 60명 수준인데 주로 김포지역 기반이다.
활동내용은 사실 몇 가지 없었는데 주로 청소년들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과몰입’에 대한 세미나 2~3번 정도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학부모(정확하게는 어머니)들이 자녀들 공부에 방해되는 ‘스마트폰 사용을 어떻게 통제 할까?’가 주요 관심사인 지역의 작은 소모임에 불과했다. 이 단체의 세미나 활동을 경기도 의회에서 후원 몇 번 해 준 것이 전부였다. 검색내용으로는 말이다.
8.
그러다가 이 단체와 김윤경 국장이 갑자기 언론에 크게 등장한 것은 쿠키뉴스에서 주관하는 게임세미나에서 '강서 PC방 살인사건은 게임중독 사건’이고 '게임과몰입은 일반적인 국민의 시각으로 보면 정신병'이라는 강력한 발언을 하면서였다. 이 어그로성 발언은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는 언론이 딱 좋아할 내용이었다. 살인, 정신병...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인데 MBC 백분토론이 김윤경 국장을 섭외한 이유는 ‘정신과 의사’ ‘교수’ ‘대중성 있는 게임 크리에이터’가 나오는 상황에서 무언가 시청자들 혹은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낼 빌런의 역할을 기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김윤경 국장은 본인의 미션을 훌륭하게 달성했고 MBC 입장에서는 (시청률은 모르겠지만) 온라인상에 화제성(?)은 얻었으니 즐거워 할 것 같다.
9.
하지만 이것이 과연 생산적인 토론일까? 아울러 전문적인 의견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전문가가 반드시 높은 수준의 학위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학 혹은 보건 의학의 전문가가 게임과몰입의 질병등재에 해당하는 유해성을 증명하려면 이 부분은 전문적인 연구와 논문을 필요로 하거나 혹은 전문가로서 가볍게 의견 개진을 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적어도 게임이 다른 중독성을 유발하는 요소(가령 SNS, 쇼핑, TV 등)에서 분비된다는 ‘도파민’ 보다 더 자극성이 있다는 주장과 입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사회활동가로서 자녀들의 스마트폰 혹은 게임과몰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관련된 합당한 통계와 사례들 그리고 그 출처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근거를 제시 못하면서 주장만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 것 같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토론이다.
10.
왜 생산적이지 못한 토론이 진행되었는지를 좀 더 생각해 보니, 질병등재 찬성측에서 이런 주제에 대한 토론(혹은 기고) 준비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WHO의 게임 과몰입 질병 등재'를 반대하는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많은 준비를 해서 심지어 대학에 의뢰를 통해 ‘무관하다'는 직접적인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해외에서 발표된 게임에 대한 우호적인 연구 사례들까지 많이 확보했다. 반면 찬성하는 (보건 정신 의학계) 입장에서는 특별한 지원예산도 없는데 굳이 나서서 해당 연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전문가답지 않게 '두리뭉실한 이야기'밖에 못하는 것이다.
또한 게임에 비우호적인 학부모단체의 경우는 (내 자식의 학교 성적이 안 좋은 이유는 오직 게임 때문이라는 굳건한 믿음만 있었지) 너무 급조해서 만들어진 단체들이 많은지라 '체계적인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어제와 같은 황당한 토론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11.
내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좀 생산적인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문제인가? 확률형 아이템이 문제인가? 혹은 스마트폰이 문제인가?”
내 개인적으로는 어제 토론에 나온 김윤경 국장은 이 3가지의 문제점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원래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를 창립한 목적도 '게임과몰입'이 아닌 '스마트폰 과몰입'이 주요한 이슈였는데 그 짧은 활동기간 동안 갑자기 게임과몰입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과 전문인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도 의심스럽기는 하다.
“게임 과몰입이 정신 보건 의학 관점에서 질병으로 등재할 만큼 문제가 있는 것인가?”
국내에서는 무관하다는 연구가 최근에 하나 발표되었으니 ‘문제가 있다’는 쪽에서도 연구를 진행해서 발표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국가차원에서 질병으로 등록하고 마약, 알콜, 도박처럼 국가적인 통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민간자율기관을 통해 스스로 자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여담이지만 민간자율기관은 게임업계 중심의 기관일지 혹은 게임에 비우호적인 학부모 모임 중심이 될지도 궁금하긴 하다.
12.
최근 2년 가까이 나는 전문가 입장에서 어떤 분쟁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지식만큼이나 그것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갖춰야 한다. 합당한 근거를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전문가는 아무리 학위가 좋고, 경력이 많아도 전문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13.
게임과몰입의 질병등재는 업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만약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업계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합당한 근거'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충분한 준비와 생산적인 토론을 거친 후에야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일종의 정치적인 이슈로 ‘게임을 무작정 때리는 방식’은 과거의 구태의연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업계에서도 그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선 나부터도 말이다.
북한의 ICM 미사일과 중미 무역전쟁에 담긴 의미, 검사의 공소장과 법원의 판결문까지 공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그저 옛날처럼 ‘게임은 청소년들에게 매우 유해합니다’라는 기사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이제 시대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