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이 주최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이 주제 발표를 했으며 패널로 ▲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 ▲ 김성회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 제작자 ▲ 전영순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이 출연해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특히 법학박사이자 현직 변호사인 임 학회장은 헌법적 측면에서 WHO 게임 이용 장애의 국내 도입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발표했다. 그의 발제 내용을 정리해봤다.
임 학회장은 "ICD-11은 권고인만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국내 질병기준 일람인 KCD에 게임 이용 장애가 추가됐을 때의 상황을 예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게임 이용 장애가 KCD에 등재됐을 경우 보건당국이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해 질병 관련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며, 질명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 학회장은 이번 WHO의 의결을 계기로 기존의 ‘신의진법’ 등 강성 법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다.
임 학회장은 WHO 게임 질병 장애의 국내 도입이 5가지 측면에서 법적·정책적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1) '문화국가원리'와의 조화 가능성
(2) '개인의 행동 자유'와 '자기 결정권 침해' 가능성
(3) '명확성 원칙' 침해 가능성
(4) '과잉금지원칙' 침해 가능성
(5) '경제적 자유' 침해 가능성
헌법 제9조를 통해 정의된 '문화국가원리'란 국가의 문화국가실현에 관한 과제 또는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가는 문화육성의 책임이 있으며 이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문화창조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포함된다. 게임도 마찬가지.
때문에 게임 이용 장애가 도입되면, 특정 문화영역에 대한 의학적 개입이 되기 때문에 문화국가원리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임 학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국가가 먼저 나서서 국민의 행동양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다수의 국민을 잠재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WHO의 의결의 의미는 단순한 통계나 건강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해야 하며, 국가가 게임 이용 장애를 적극적으로 질병으로 진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자제할 것을 제안했다.
임 학회장은 "게임 이용 장애는 우리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여기서 파생하는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법은 국가가 개인이 스스로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일반적인 행동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다양한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WHO 결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게임과 관련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는 게임 이용 장애의 도입을 통해 국민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 어떤 게임을 고를지, ▲ 자신이 선택한 게임을 얼마나 즐길 것인지, ▲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 ▲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의 포기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권 내지 자기결정권을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게임 과몰입을 '중독'이나 '장애'라는 틀에 넣고 국가의 보호·관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 이념에도 배치될 수 있다고 임 학회장은 말했다.
임 학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시행을 예고한 '인터넷 게임 예방교육 및 선별검사'같은 제도의 섣부른 도입보다는, 오히려 개인이 게임이라는 여가활동 내지 직업 활동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고, 다소 활동이 과잉되는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치유방법을 찾고 이것이 다시 게임문화에 피드백되는 자정기능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을 제정할 때에는 그 법률을 통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다.
이번에 통과된 WHO의 의결을 보면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임을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digital gaming or video gaming)으로 한정했다. 임 학회장은 "여기서 말하는 게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게임에 있어서도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WHO는 규제 대상이 되는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통제력의 손상'이라고 밝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며, 개인이 게임을 함에 있어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가 오로지 게임 때문이라고 한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임 학회장의 주장이다. 주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게임에 과몰입한다는 정의준 교수의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하는 지점.
WHO는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에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려 했고 각 국가에서 자율적으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임 학회장의 견해다.
실제로 WHO의 회원국들 중에는 아직도 인터넷이 게임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디지털 기기 자체가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보급되지 않는 국가가 많다. 게임중독에 대한 사회적인 심각성 인식이 국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임 학회장은 "심각성 인식이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최근 게임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접속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소한 게임 과몰입이 문제된 한국, 중국, 일본 만이라도 게임 과몰입의 ‘질병’ 판단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국가의 활동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가진 법 원리로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와 헌법 제37조 2항에서 근거를 가진다.
이 원칙은 입법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네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임 학회장은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 그리고 국내법 적용 움직임 등을 헌법상 비례원칙에 따라서 검토했다.
1) 목적의 적절성: 이번 WHO의 결정은 게임의 범위나 판단기준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자,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순수한 치료의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이번 결정으로 추후에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이머는 전체 게임인구의 1-2%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임 학회장은 "개인의 게임활동에 대하여 국가의 개입이 필요할 만큼의 부작용이 큰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 수단의 적합성: 현재 게임인구가 국민의 절반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국민 절반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혹은 ‘게임’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인 혹은 국가간의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중독’이나 ‘자제력(control)’, ‘지속성(continuation)’ 등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규제의 범위가 1-2%가 아니고 훨씬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임 학회장은 전망했다.
그는 아울러 4차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 VR, AR, AI 등의 분야가 게임과 접점이 많기 때문에 게임 과몰입이 질병화되면 이러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3) 침해의 최소성: 게임 과몰입과 관련해서는 기존에 게임산업법에서 건전한 게임문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선정해 교육, 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기존 규제의 적용 및 확대를 통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통제를 가하는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4) 법익균형성: 비례의 원칙은 위와 같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이라는 세가지를 모두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규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법익과 규제를 통해서 잃어버릴 수 있는 법익들을 비교해 전자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다시 검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건복지부의 예상에 의하더라도 전체 게임인구의 1-2% 정도를 분류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얻는 이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함으로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개인에 대한 불이익도 못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게임의 질병화를 둘러싼 사회적인 손실도 매우 크다는 점이 대두되고 있다고 임 학회장은 설명했다.
헌법 제119조 제1항은 한국이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질서를 바탕으로 경제적 자유는 보장하고 있다. 물론 이 경제적 자유도 공동체 질서와 관계에서 제약을 받기 때문에 공익을 위해 일부 제한될 수 있다. 임 학회장은 "대표적으로 약자보호, 독점방지, 실질적 평등, 경제정의 등의 관점에서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헌법이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과잉금지원칙 등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기본권제한의 한계를 준수하여야 하며,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은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며 게임 이용 장애의 국내 도입이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임 학회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 발표 자료와 서울대 산학협력단 발표 자료를 인용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로 과반(56.6%)에 이르며, 이는 방탄소년단(BTS) 등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6.8%)보다 8배 이상 큰 수치이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WHO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2022년부터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하게 되면 게임 산업이 위축돼 향후 3년 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직접적인 규제뿐만 아니라, 산업종사자들이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따른 위축효과(chilling effect)도 고려해야 한다"고 임 학회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