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의 질병화 담론을 살펴보며 의아했던 것이 있다. 바로 ‘게임 중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으레 사용하는 ‘인터넷 게임’이라는 이상한 말이다. 이 말은 게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쓰지 않는 말일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상용어가 떡하니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인터넷 게임’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 직접 논문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내에 게임 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 연구(연구를 연구하는 것)가 없지는 않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을 직접 살펴본 결과는 생각보다도 더욱 충격적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하면 게임 중독 고위험군”
“한 달에 5만원 이상 게임에 돈을 사용하면 게임 중독 고위험군”
이처럼 상식에서 벗어나는 충격적인 결과가 수두룩한 ‘비과학적’ 게임과몰입 연구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디스이즈게임 이준호 기자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인터넷 게임이라는 말은 가정용 인터넷 보급으로 온라인 게임 시대가 열리던 즈음,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슬슬 사용되다가, 더 구체적인 명칭인 ‘온라인 게임’이라는 말에 헤게모니를 넘겨주고 자취를 감췄다. 적어도 게임계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을 질병화하고자 나선 정신의학계와 ‘중독연구자’들 사이에서 ‘인터넷 게임’은 여전히 상용어다. 당장 ‘게임 이용 장애’ 이전,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만든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인 DMS-5에 공개된 명칭도 ‘인터넷 게임 중독’(Internet Gaming Disorder)이었다.
# ‘인터넷 중독’이 ‘게임 이용 장애’가 되기까지
‘인터넷 게임 중독’ 이전에는 ‘인터넷 중독’이 있었다. 20세기 말 인터넷 보급 확산이 불러온 여러가지 부작용은 자연스럽게 정신의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인터넷에 미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치료를 필요로 한다.”
지금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해 정신의학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질병코드 등재가 필요하다. 질병이 되어야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사실 ‘게임 중독’이 이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터넷 중독’의 하위 범주로서 간주되어 왔다는 점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게임 중독 연구 강국(?)이다. 몇몇 해외 학자들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일부 아시아권 국가들이 압력을 행사한 결과”로 분석하기도 할 정도다. ‘게임 중독’과 관련해 한국에서 나온 논문만 90편이 넘는다. 양만 따지면 세계 1위다.
“일부 연구는 한국이 유독 높은 ‘인터넷 게임 중독’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한다. (중략) 하지만, 이 연구들은 ‘인터넷 중독’과 ‘인터넷 게임 중독’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중략) 두 질병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it will not be wise to consider the prevalence of one as that of others.)”
- Subrata Naskar et al. 2016. “One level more: A narrative review on internet gaming disorder.”
Industrial Psychiatry Journal 25(2). p145-154.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게임 중독’ 연구에 우려를 표해왔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을 사실상 구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 학자들은 ‘게임 중독 연구’에 있어서 이상하리만치 ‘인터넷 중독’과 관련된 연구를 자주 인용해왔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인터넷게임중독은 물질중독과 유사하게 뇌의 보상회로의 기능 이상3)이 주요하게 병태생리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게임중독은 다양한 정신병리와 연관되며,4) 성격, 양육, 사회문화적 환경의 요인5)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포괄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 이해국 외. 2014. “인터넷게임중독의 단계적, 맞춤형 조절력 향상 치료개입 프로그램의 개발.”
중독정신의학 Vol.18 No.2. p53-59.
위 연구는 마치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선행 연구를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치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처럼 보이는 저 각주의 논문들은, 아니 실은 이 논문에서 인용된 논문의 거의 대부분이 ‘인터넷 중독’에 대한 연구였다. 인터넷 게임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인터넷 중독에 대한 논문을 인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잘못된 범주화라는 논리적 오류를 거의 의도적으로 논문 단위에서 저지르고 있었다.
‘인터넷 중독’에 대한 우려는 20세기 말엽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대두하기 시작했지만, 독자적인 질병으로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인터넷은 하나의 미디어 양식을 넘어섰고, 우리 사회의 기반을 구성하는 중요한 고리가 됐다. 따라서 인터넷 사용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유해한가에 대해서 증명하는 일 역시 더욱 요원해졌다.
일부 학자들은 대신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이전의 ‘인터넷 중독’ 연구에서 하위 범주로 간주되어온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다시 말해 ‘인터넷 게임’이라는 말이 아직까지 쓰이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인터넷 중독’을 질병화하기 위해 시도되던 연구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 DSM-5와 ICD-11, 말은 어렵지만 내용은 쉽다: “우리도 잘 모른다.”
“만약 당신이 가진 것이 망치 뿐이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일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매슬로
이번에 ICD-11 등재된 ‘게임 이용 장애’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 보인다.
1) 게임 이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2) 게임을 하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으며,
3) 게임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 이용 시간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
4) 12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것을 ‘게임 이용 장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게임의 자리에 무엇을 넣어도 정상이 아니라고 봐야한다. 즉, 매우 엄격하지만 동시에 포괄적이기도 한 것이다.
1) ○○ 이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2) ○○을 하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으며,
3) ○○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 시간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
4) 12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것을 ‘○○ 장애’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질병의 정의가 위처럼 너무 포괄적인데 반해, 구체적인 진단 기준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게임 중독’ 관련 연구는 연구 대상을 진단하기 위해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은 ‘인터넷 중독’의 진단 척도를 사용하고 있다. IAT라고도 부르는 이 척도는 게임이라는 매체 범주와 무관할 뿐 아니라 만들어질 때부터 임상적, 학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의학계 내부에서도 계속 지적되어온 논란의 대상이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척도가 한국 정신의학계와 보건계에서는 여전히 현역이다. 아니, 현역을 넘어 주력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게임 이용 장애의 진단을 위해 초/중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에 쓰인 5개의 척도 중 3개가 IAT와 IAT를 적당히 변형한(그저 인터넷을 게임으로 바꾼 수준의) 진단 척도고, 하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명시된 DSM-5의 기준을 따른 척도, 그리고 하나는 ‘스마트폰 중독’을 진단하는 척도다.
그중 하나인 IGUESS는 인터넷 게임중독 선별 도구(Internet Gaming Use-Elicited Symptom Screen, IGUESS)로서, IAT의 항목들을 적당히 변형해 만든 척도로 한국에서 보건복지부의 지원 하에 개발됐다. 기자가 시범삼아 해봤는데, 17점으로 ‘고위험군’이 나왔다.
디스이즈게임에 들어온 이후 기사 쓰느라 게임하는 시간이 줄어든 기자로서 의아했으나,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살펴봤다. 대부분의 항목에 ‘아니다’를 골랐는데 딱 하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인터넷게임을 한다.” 항목에 ‘거의 항상 그렇다’를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혹시나 하여 다시 실험을 해봤다. 다른 모든 항목에서 ‘아니다’를 선택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인터넷게임을 한다” 항목에만 ‘가끔 그렇다’를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고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시 말해 IGUESS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을 하는 대부분의 게이머들조차 ‘게임 중독 고위험군’으로 진단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척도를 가지고 5년이라는 긴 기간, 3,000명이라는 큰 규모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해당 연구의 영문 약자는 줄여서 iCURE(나는 치료한다). “병이 있는가?”를 질문하고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존재를 이미 전제하고 “치료하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iCURE 관련 연구에는 보건복지부 예산 약 13억 8,000만원이 투입됐다.
“수많은 (게임 중독 관련) 문헌은 게임 이용 장애라는 개념에 대한 과학적 회의와 호기심이 아니라, 그저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그리피스는 묻는다. “문제적인 비디오 게임 플레이라는 현상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질병이 아닐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잘못됐다. 질문의 답이 전제로서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 van Rooij et al. 2018. “게임 이용 장애의 빈약한 과학적 근거: 아무리 조심해도 나쁘지 않다
(A weak scientific basis for gaming disorder: Let us err on the side of caution).”
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 7(1). p1-9.
*확증 편향: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해버리는 경향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분석한 총 523편의 게임과몰입 관련 논문에서, ‘게임과몰입’이라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은 무려 16개였다. 지난 수 년간 자기들끼리도 이것을 뭐라 불러야할 지에 대해서 조차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었단 뜻이다. 이제는 WHO가 정해준 ‘게임 이용 장애’라는 말을 쓰겠지만 말이다.
명확한 정의가 없었으니 명확한 진단 기준이 생겨날 리가 만무하고, 제대로 된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없었을 터. 심지어 이들 연구는 게임과몰입을 연구하면서 정작 ‘게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위 연구에서 분석한 671편의 논문 중 게임 이름을 1개 이상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오직 55편(8.2%)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자신들의 연구 대상이 어떤 게임을 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게임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 것일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이런 수준이니 당연히 플랫폼이나 디바이스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운운하며 ‘인터넷 게임’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주장으로 논문의 서두를 열었지만, 정작 이들이 연구에 사용한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이 당대에 인기있는 PC 게임인 경우가 많았다.
모바일 게임에 한정된 연구는 671건중 8건, 전체의 1.37%에 불과했다.
또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장르를 MMORPG라고 쓰고, 잘못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해 "월 게임 이용 금액이 5만원 이상이면 게임 중독 고위험군"이라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도출해놓고도 당당히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일부 정신의학계가 보이는 학술적 오류의 사례는 하나하나 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유 모를 공포에 시달려왔다. 잘 모르는 것은 무서운 법이다. ‘뉴미디어 포비아’라고도 부르는 이 현상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세기 초에는 영화와 라디오가 ‘중독’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텔레비전이었고, 20세기 말엽에는 인터넷과 ‘비디오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미디어 중독’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임상적으로 증명되거나 질병으로서 분류된 적이 없다.
‘게임 이용 장애’는 미디어 사상 최초로 질병의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내용은 설득력이 없다. 게임 이용 장애는 커녕, 그 전 단계인 인터넷 게임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이라는 질병에 대해서조차 학자들은 하나의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우선 질병코드를 등록하고 나면 (질병으로 만들고 나면) 질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수상한 논리를 펼칠 뿐이다.
그런데, ‘게임 중독’ 옹호론자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와 논리적 오류들, 정신의학계의 게임 과몰입 연구가 보이는 게임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단순히 학자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무능’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 보다 생산적인 논쟁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연구자들 역시 소속한 사회에서의 입지와 권위의 획득이 필요하고, 종종 ‘인정받는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이해관계로 인해 정치적인 의도에 편승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술적 근거 없이 ‘명명’하고 근거를 찾아보자며 사회적 파장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면 연구자로서의 윤리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일 것이다. 학술적 장에서의 지식의 발견은 결국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지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윤태진 외. 2018.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혹자는 기존의 게임과몰입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타당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단순한 이익집단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반대로 ‘게임 이용 장애’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가 밥그릇 만들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고자 하는 수많은 의사들의 선의와,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일부 집단의 기획은 표면상으로 구분되지 않고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몇몇 연구가 편향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고 해서 게임과몰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중단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달려가는 편향된 연구가 아닌, 더욱 합리적이고 충분히 과학적인 게임과몰입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가 부상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진실로 치료를 염원하는 사람들과, 단순히 이것을 ‘수익 모델’로 취급하는 일부 집단이 구분될 수 있을 터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비단 정신의학계 뿐 아니라 게임업계와 학계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용인송담대학교 송두헌 교수는 “게임 장애/중독 연구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게임 학계와 산업계는 따라서 지금까지처럼 게임 중독/장애 관련 논의를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소극적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상심리학자 등과의 협업을 통해 보다 과학적이고 신뢰도 높은 판단 기준을 만들고 DSM-5나 ICD-11 초안이 1년 이상의 관찰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만큼 1년 이상의 종단 연구를 통해 게임의 부정적 효과가 존재한다면 적극적으로 그것을 밝히고 치료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 송두헌. 2019. “게임 장애/중독 연구에 대한 비판적 분석.”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9(1). 한국게임학회. p135-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