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삼성동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서는 ‘격동하는 게임시장, 봄날은 오는가’ 라는 주제로 산업계, 기자, 국회 및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해 최근 WHO가 ‘게임 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을 두고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토론은 이장주 이락디지털 문화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진욱 스포츠서울 기자, 곽성환 한국콘텐츠진흥원 팀장,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이 패널로 참여해 저마다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이날 참가 패널들의 주요 발언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 게임은 질병이라는 낙인을 걷어내지 않으면 e스포츠의 올림픽 정식종목 지정도 어려울 것
김진욱 스포츠서울 기자는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질병 코드 지정은 어떻게 보면 ‘게임은 나쁜 것이다’ 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을 전제로 진행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업계가 과연 이런 사회적인 낙인을 걷어 내기 위해 충분히 노력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에 대해 업계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를 지적하며, 결국 사회적인 낙인 효과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번 WHO의 질병 코드 지정이 e스포츠 업계의 숙원이기도 한 ‘올림픽 정식 종목 지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했다. 그는 “아마 단기적으로는 이번 이슈로 인해 게임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콘텐츠로 e스포츠가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런 낙인을 걷어내지 않는 한 올림픽 정식 정목 지정 같은 업계의 오랜 꿈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WHO의 질병코드 지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질병코드 지정 찬성 논리에 따르면 유튜브와 스마트폰 이용도 질병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WHO의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질병코드 지정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대해 기존 집단에서 보이는 일종의 ‘모럴 패닉’(Moral panic,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에 대해 집단에서 강렬하게 감정을 포현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사회에서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항상 모럴 패닉이 발생하고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그 반발이 굉장히 격렬하게, 또 신속하면서도 철저하게 진행되고있다는 것.
정의준 교수는 지난 2014년부터 올해 2월까지 만 5년간, 청소년 2천 명을 대상으로 게임 과몰입의 흐름을 추적 조사해서 업계 및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연구의 결과를 설명하며 “결국 청소년들이 게임 과몰입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이용시간’보다는 ‘자기 통제력’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자기 통제력은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으로도 조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이용장애를 무작정 질병으로 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의준 교수는 마지막으로 “의료계가 아닌 사회가 나서서 게임 과몰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해야지, 이를 질병으로 지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질병 코드 지정 찬성측 논리에 따르면 이제 유튜브 시청도 질병으로 지정되어야 하고, 스마트폰 이용도 질병으로 지정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결국 게임만 억울하게 되었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청소년기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학업 스트레스”
# 아픈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보다는 서로 치유해 나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곽성환 한국콘텐츠진흥원 팀장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 과몰입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게임 과몰입힐링센터’를 전국 4개 권역에 설치해서 운영중이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그 수를 대폭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런 힐링센터의 운영에는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게임사들이 함께 참여해서 운영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의준 교수의 연구에서도 드러나듯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가정과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질병으로 지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 사회가 아픈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보다는, 서로 치유해나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부 또한 이번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러 부처들이 많이 노력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 WHO의 권고는 '권고'일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이번 WHO의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게임은 나쁜 것’ 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는 게임을 청소년들의 공부에 방해되는 콘텐츠. 무작정 부정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질병코드 지정 찬성 측에서는 이번 ICD-11이 과학적인 연구와 근거 확보 끝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번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게임 이용장애가 질병으로 확정되면 이제 의사들은 시트를 보고 ‘어느 기준’을 넘어서면 게임 중독으로 처방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선’을 그 기준으로 잡을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사나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ICD-11은 어디까지나 WHO의 ‘권고사항’으로, 이를 우리나라가 무작정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조사와 연구가 있어야 하며, 이제는 이를 계기로 업계에서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밝히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결국 게임이 가장 만만하니까 당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이슈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 질병코드 도입을 추진한 측에서는 처음에는 ‘디지털 콘텐츠나 인터넷의 과대사용’을 지적하다가 2014년부터 갑자기 그 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가능할까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병관 의원은 “스포츠, 낚시, 쇼핑 등 사람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지만, 유독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두고 ‘중독’ 이라며 질병코드로 지정하는 것이 정상일까? 결국 게임은 문화가 아닌, 나쁜 것이라는 낙인 효과가 있다 보니까 이러한 공격이 계속 들어오고 결국 질병 코드로 이어진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게임업계 소속된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게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에 업계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김병관 의원의 이번 토론회 발언은 다음 기사에서 좀 더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기사] 김병관 “이제는 업계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