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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통한 사회공헌

[허접칼럼] 강지원 변호사에게 묻고 싶은 질문

강지원의 행적과 넥슨을 난처하게 만든 상황, 그리고 물음

임상훈(시몬) 2013-12-27 16:02:04

강지원 푸르메재단 공동대표(이하 강지원 변호사)가 게임계의 ‘이슈 메이커’가 됐습니다. 지금껏 대부분 사회적으로 우호적인 이슈를 만들어 왔던 그였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뒤통수를 쳤다'는 거친 표현이 나올 정도로 게이머들의 반응은 사나웠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네오플은 지난 12월 13일 푸르메재단에 3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강 변호사는 네오플 강신철 대표와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하루 전(12일), 그는 기자회견에서  "(일명 4대 중독법의) 입법화가 우리나라 중독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행복을 위해 이 법의 온전한 입법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게임업계의 반발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이율배반이라고 흉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올해 넥슨이 푸르메재단에 기부한 액수는 43억 원입니다. 병원 건립 금액의 10%가 넘습니다. 이런 지원을 받으면서도 ‘4대 중독법’을 앞장서 지지하는 모습이 표리부동하다는 겁니다. 넥슨도 당장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통 큰 기부로 칭찬을 받아도 모자란 판에, ‘삽질했다’, ‘당했다’ 같은 비판을 받게 됐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강지원 변호사가 지금까지 해왔던 상당수의 활동들을 지지했습니다. 강 변호사의 부인인 김영란 전 대법관을 존경하고요.(김영란 법’을 아시는지요? [링크]) 그런 탓일 겁니다. 강 변호사의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곤혹스럽고, 그에 대한 인격적인 비난이 뜨악했던 것은요.


그래서 왜 그랬나 생각해 봤습니다. 훑어 봤습니다.

 

 

2002년 10월, 검찰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하다


1976년 강 변호사는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출셋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89년 서울보호관찰소장을 맡은 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보여 왔던 강 변호사는 이후 검찰 내 한직으로 분류되는 사법연수원과 서울고검 등에 근무할 것을 자청했죠. 청소년 보호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청소년보호위원회 창설(1997년)을 주도했고, 초대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성년자에 대한 주류판매금지, 청소년 상대 성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추진하는 등 청소년 보호에 노력했습니다.


검사장 승진이 확실시 되던 2002년 10월 그는 검찰에 명예퇴직을 신청했습니다. “청소년보호 활동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뒤로는 승진이나 인사에 관심이 없었고, 올해 안에 검사 생활을 정리할 생각이었다”고 명퇴 이유를 밝혔습니다.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이후 강 변호사는 2003년 9월 성남에서 개교한 최초의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중고등학교’의 설립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두 딸도 대안학교를 다녔습니다.)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청소년 피해 상담 센터’를 만드는 등 ‘청소년 지킴이’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검사를 사직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검찰인사권을 권력이 쥐고 있는 이상, 정치검사란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


"적재적소 인사보다 연줄타기가 우선시 되고 그러다 보니 각종 정치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상궤를 벗어난 수사가 이루어지고 국민적 냉소가 이어지는 것."


"하지만 검찰의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 더 큰 문제."


"젊은 검사들은 독립투사와 같은 용기로 싸워야."


"사법연수원 교수를 2년 간 지내면서 인간사를 판단해야 할 법률가를 시험공부만으로 결정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검찰은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것보다 사명감과 일에 헌신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2004년 8월, 모든 방송활동을 접다


강 변호사는 검사 시절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 이경규가 간다>의 ‘양심냉장고’ 편에 출연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부쩍 올라갔죠. 인상도 좋고, 스펙도 좋고.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많았습니다. 고사했습니다.


대신 방송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2003~2004년 KBS 1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와 EBS TV의 토크쇼 <선택 화제의 인물>을 진행했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방송국에 출근했죠. 당시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사회의 건강성을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청소년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으로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잘 나가던 그는 2004년 8월 갑자기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도 사퇴했습니다. 아내인 김영란 변호사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강 변호사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으로, 정치적 공정성이 요구되는 신분인 아내가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 특별한 일을 한다기보다 이제 청소년과 여성을 보호하는 본업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계속 방송에 호출됐습니다. 2008~2009년 진행했던 EBS 라디오의 <강지원의 특별한 만남>.

방송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소년 지킴이라는 ‘명성’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바로 ‘성폭력사건 수사재판 시민감시단 단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고, ‘온라인 청정 문화운동본부운영위원장으로 위촉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그가 방송 출연료 5,000여만 원을 비롯해 각종 강연료, 원고료를 매년 청소년과 여성단체에 남몰래 기부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과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에 대해서는 무료 변론을 쭉 해왔던 것도요.

 

당시 그는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가’로 본인을 포지셔닝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 밀양 성폭행사건의 무료변론을 맡다


2004년 12월 대한민국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경남 밀양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울산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밀양 지역의 고교생 44명 등이 1년 동안 성폭행한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결국 국회에서는 진상조사단까지 꾸려졌습니다.

 

이 여학생의 변호는 강지원 변호사가 맡았습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자 강 변호사가 변호를 맡아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었죠. 이 소식을 기자들로부터 들은 강 변호사는 흔쾌히 무료 변론에 나섰습니다.


수사 과정은 완전 엉망이었습니다. 인권침해 등 2차 피해로 넘쳤습니다. 조사받던 곳은 전국 247개 경찰서 가운데 진술녹화실이 없는 4곳 중 하나였습니다. 형사는 피해자 신상정보를 기자에게 유출시켰습니다. 경찰은 피해자들만 있던 방에서 “밀양 물 다 흐려놨다”고 폭언했습니다. 여자 경찰에게 조사를 받고 싶다는 요청은 묵살됐고, 가해자들을 일렬로 세운 뒤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직접 찍어내도록 했습니다.


5명의 피해자 중 여중생 2명 등은 가해자들로부터 회유, 협박, 폭언, 압력을 당했고, 한 피해자는 학교까지 가해자의 어머니가 쫓아와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동영상까지 유포된 여중생들은 수치심과 함께 보복 걱정에 시달려야 했죠.

 

강 변호사는 경찰 수사 직후 피해자 자매를 서울로 전학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미 얼굴이 알려지는 등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어서 그 지역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서울로 이사를 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재판 후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잘 지내는 뻔뻔스러운 가해자들과, 계속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사연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2005년 1월 강 변호사, 신의진 교수를 만나다


피해자 자매와 어머니는 2005년 1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신의진 교수(현 새누리당 의원)가 치료를 맡았습니다.



신 교수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던 의사였습니다. 2001년 11월 쓴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죠. 한 언론에 의해 발달지체와 애착장애 아동 분야의 ‘명의’에 선정됐고, 2004년 10월에는 ‘베스트셀러 제조기’ 명단에 들기도 했습니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스타 저자 분석(한국일보 2004년 10월 21일) 중 일부 발췌 (전문 보기)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포함해 올해(2004년)까지 4권의 교육서를 출간한 신의진 교수 역시 ‘내가 여자이고 엄마여서 안다’는 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논조, 소아정신과 의사라는 전문성, ‘적기 교육’이라는 틈새시장 공략이 맞아 떨어진 데다 외모에다 언변까지 좋아 홍보에도 그만인 점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신 교수는 2004년 6월부터 아동성폭력피해 지원기관인 ‘해바라기 아동센터’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2005년 1월에는 강지원 변호사와 함께 서울신문 고정칼럼 '열린세상'의 사회·법학·과학·의학 분야 필진이 되기도 했죠. 이런 상황과 인연의 끈을 타고 신 교수는 강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던 피해자들을 치료하게 됐습니다.



당시 강 변호사는 여러 모로 골치가 아팠을 겁니다. 서울로 올라온 성폭행 피해자 A양은 수차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피해자의 아버지는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는 이혼했고, 피해자의 친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이혼 후 집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습니다. 몸까지 불편했던 어머니와 딸의 사이는 거칠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서울로 데려온 사람이 강 변호사였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거의 혼자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 짐을 덜어준 이가 신의진 교수였습니다.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죠. 강 변호사에게 신 교수는 천군만마였을 겁니다. 무척 큰 고마움을 느꼈겠죠.


이후 한 동안 두 사람은 성폭행 대책이나 청소년 문제와 관련된 방송이나 기사에 단골로 나왔습니다. 한 목소리로 정부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죠. 신 교수가 “전문적 통합 시스템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여성부는 여성 피해자만 다루고, 청보위는 청소년만 다루고, 정치권이나 사법부는 또 따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 강 변호사는 “단계 별로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거들었습니다.

 

 

2004년 8월 강 변호사, 민간 재활병원 설립 운동과 만나다


CBS 기자였던 백경학 씨는 가족과 함께 한 독일 유학에서 돌아오기 직전인 1998년 여름,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와 딸은 곧 회복됐지만, 아내의 부상은 심각했습니다. 결국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국 땅, 지인도, 외교부 영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던 상황. 하지만, 스코틀랜드와 독일에는 좋은 재활병원이 있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24시간 언제든 환자를 도왔습니다. 독일 의료보장제도는 아내를 일어서게 했고, 충격에 빠졌던 남편과 꼬마 아이의 심리와 정서까지 일상으로 되돌려 놨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니 상황은 딴판이었습니다. 재활병원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이 유일했고, 환자와 보호자로 넘쳐 났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전담 간호사와 치료사가 있고, 퇴원 후에는 가정 보조원까지 파견해 재활치료를 관리했던 독일과는 너무 달랐죠. 경제력이 없는 많은 장애인 환자들은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재활치료 필요 장애인 수 300만 명, 전문 재활병원 병상 수 50개,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 비율 2%. 백 씨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작은 병원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기자 직업을 버리고 사업을 시작했고, 돈을 모았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모았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관련 콘텐츠 보기]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씨 


2004년 8월 강지원 변호사는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박원순 변호사 등과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강 변호사는 비상임이지만, 공동대표까지 맡게 됐죠.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기부금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380억 원. 자원봉사자와 지자체의 토지 기부 등을 빼고도 재활병원 설립에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푸르메재단’ 홈페이지의 연혁을 보면 2004년부터 10년 간 펼쳐졌던 다양한 기부 소식과 활동들이 나옵니다. 여러 사람이 도왔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2008년 말에는 경기도 화성시와 2012년까지 재활병원을 세우는 양해각서까지 썼지만, 시의 재정상황 탓에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12월 서울시 마포구가 대신 나섰고, 2011년 4월 ‘어린이 재활병원’이라는 콘셉트가 다시 설정됐습니다. 넥슨은 2012년부터 이 병원 설립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6월에는 재단과 양해각서를 맺고, 가장 적극적인 지원자가 됐습니다. 병원은 2015년 개관을 목표로 내년 2월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2012년 9월 서울 종로에는 입원실은 없지만, 재활센터(치과와 한의원, 도서관 등)와 장애인 복지관 등을 갖춘 세종마을 푸르메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2013년 12월 강 변호사, 넥슨을 난처하게 만들다


넥슨은 자회사였던 쿼드디멘션스의 전 대표 이철재 씨가 2012년 4월 10억 원을 기부한 것을 인연으로,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2012년 6월 양해각서 체결 전후부터 김정주 NXC 회장 부부까지 직접 발 벗고 나서 돕기 시작했습니다. 종로 재활센터를 위해 10억 원을 기부한데 이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일부 인테리어까지 책임줬죠. 그건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성탄절 맞이 음악회 개최 

병원 건립 모금을 위한 '만원의 행복' 콘서트 개최 및 후원

▲<사이퍼즈> 아이템 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

▲사내밴드 '더 놀자 밴드' 기부 콘서트

▲자전거 국토종단 기부

▲ 지스타 캐릭터 상품 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

▲네오플과 <피파 온라인 3>의 기부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raclehospital

) 응원글 남기면 대신 기부 등 넥슨은 이후 물심양면으로 참 열심히 푸르메를 도왔습니다. (이런 건 우리 게이머들도 함께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넥슨은 총 200억 원 이상을 기부할 것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무를 맡은 백경학 상임이사의 역할이 가장 컸겠죠. 강지원 공동대표도 무척 고마웠을 것입니다. 2012년으로 예정됐던 병원 개관이 미뤄지던 때 가장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업체가 등장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게임업체들이 '재앙'으로 여기는 신의진 의원의 법률안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해버렸습니다. 넥슨은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습니다. '기부자'에서 '피해자'가 돼버린 꼴이죠. 넥슨이 취할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강 변호사 얼굴을 보고 기부를 한 것도 아니니까요. 강 변호사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강 변호사는 왜 이랬을까요?

 

 

강 변호사에 묻고 싶은 질문


이하 내용은 강 변호사의 과거 행적을 보면서 제가 나름대로 추측한 것입니다.

 

강 변호사는 일명 '4대 중독법'을 꼼꼼히 검토해 보지는 못 했을 겁니다. 과거 악성 댓글 등 게임이나 인터넷의 부작용에 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고, 지난해 초 셧다운제 이슈 때 청소년보호법 법률 자문단에 포함된 적은 있지만, 게임 규제법률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나선 가장 큰 계기는 신의진 의원의 부탁이었으리라 추정합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 때 졌던 마음의 빚이 있으니 마이크 앞에 섰겠죠. 게다가 입법 취지는 과거 성폭행 사건 때 이야기했던 프레임과 딱 일치합니다. '성폭행'이 들어갈 자리에 '중독'을 대신 넣으면 되죠. 전문적 통합 관리시스템이 없고, 따로따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국가적인 체계적인 대책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

 

4대 중독법의 취지는 재활병원 건립 운동의 아쉬움과도 겹쳤을 겁니다. 10년째 돕고 있는 민간 재활병원은 실은 국가가 나서서 해줘야 할 일이니까요. 중독 문제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겠죠.


저는 지난 대선에 나왔다는 이유로 강 변호사를 일선 정치인 또는 정치꾼으로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선거 출마를 '비행'(청소년 비행의 그 비행)으로 표현한 강 변호사의 취지에 수긍이 가니까요.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의 상임대표로서 공적인 목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과거 검사장, 스타 방송인, 국회의원 등의 자리를 포기했던 인물이잖아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지라도, 강 변호사는 합리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겠죠. 강 변호사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하며, 다음 질문으로 이 허접한 글을 끝맺겠습니다.

 

푸르메재활센터의 어린이들에게 알코올, 마약, 도박과 게임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가르치는 게 맞을까요? 개인적으로 재활 장애인 어린이들이 비장애인들과 차별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독행위'라는 주홍글씨는 좀더 엄격하게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요?
게임에 빠지는 게 원인일까요, 아니면 결과일까요? 강 변호사는 대안교육을 지지하셨던 분입니다. 입시위주의 숨막히는 교육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도 하셨습니다. 게임은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덮기 위해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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