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사이에는 '욕 하면서 하는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단어만 보면 부정적이지만, 사실 조금 다르다.
게임을 하다 보면 화가 난다. 명백히 문제점도 보인다. 그런데 정작 게임을 끄고 나면 다시 하고 싶어진다. 결국 다음날 다시 게임을 켜고, 열심히 욕을 하면서 한다. 주위에도 나처럼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게임 판매량은 대박을 치고 동시 접속자 수는 고공행진 중이다. '욕 하면서 하는 게임'이란 말은 여기서 기인한다. 화도 나고 게임의 단점도 눈에 분명 보이지만, 결국 게임이 재미있기에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콜 오브 듀티>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메타크리틱 유저 점수나 스팀 유저 평가에서는 늘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모던 워페어 II>도 같다. 하지만 판매량과 게임 초반 이용자 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왜 그럴까? 이번 멀티플레이 리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번 작품에서는 <콜 오브 듀티>의 런 앤 건 스타일(계속해서 뛰어다니며 상대방과 교전하는 방식)에서 조금 더 전략적인 행동이 필요하도록 바뀌었다. 맵은 여전히 좁고 단순한 편이지만, 코너 혹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상대방이 튀어나올 수 있는 '각'이 늘어났다. 그렇기에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사격을 맞고 '데스 캠'을 보기 딱 좋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전체적인 움직임도 무거워졌다. 전작 <모던 워페어>(2019)에서는 '슬라이딩 캔슬'이라는 기술을 통해 달리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빠르게 조준할 수 있었고, 점프샷을 했을 때의 패널티가 크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슬라이딩 캔슬이 불가능해졌으며, 점프를 했을 시 페널티가 상당히 크기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달리기 후 무기를 정조준할 때의 시간이 느려진 편이다.
그리고 약간 불만이 있다면, 몇몇 맵은 각이 늘어난 나머지 '조금 과하다'라는 느낌이 있다. 영화 <시카리오>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고속도로 맵이 그렇다. 맵이 일직선이고 폭발하는 차량이 도처에 널려 있어 적 색적이 어렵고 멀리서 날아오는 폭발물에 이유 없이 죽기 쉽다.
생각없이 움직이면 이런 화면 보기 십상이다. 이번 작품은 더욱 그렇다.
이건 좀
그렇다고 해서 런 앤 건 스타일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플레이어의 숙련도 여부 하에 맵을 종횡무진하며 싸우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한 장소에 대기하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대응하기 위해 '드릴 차지'라는 신규 투척 무기도 생겨났다. 벽에 부착해 반대편의 적에게 폭팔물을 끼얹을 수 있기에 실내전에서 특히 유용하다. 활용도가 높아 벌써부터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좁은 실내에서 대놓고 농성을 하면 드릴 차지 1~2개는 무조건 날라온다고 봐도 좋다.
스나이퍼 무기군이 돌격 플레이를 위해 사용되는 빈도가 다시금 늘어났단 것도 흥미롭다. 보통 스나이퍼는 후방에서 상대방을 저격한다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모던 워페어 II>에서는 모든 부착물을 '조준 속도 증가'로 맞추면 줌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이를 응용해 저격 무기를 들고 런 앤 건 플레이를 하는 '돌격 스나'가 상당히 많다. 부착물 해금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핑과 플레이어의 반응 속도가 보장된다면 사거리가 긴 샷건처럼 사용할 수 있어 상당히 강력하다.
싱글플레이에 등장한 것처럼 물을 활용한 새로운 플레이도 가능하다. 이제 몇몇 구간은 직접 잠수해 들어갈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해 상대방의 뒤로 잠입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등장해 교전을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잠수하고 있을 때는 총을 사용할 수 없으며, 뭍에 올라올 때는 무방비해지기에 페널티가 확실한 편이다.
당할 땐 화나지만, 내가 할 땐 재미있는 돌격 스나이퍼
조금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물에 잠수해 진입로를 개척할 수 있다.
뭍으로 올라올 땐 무방비하다. 생각 없이 이동하다간 죽기 십상
# 새로운 총기 해금 시스템 / 특전
본작에서는 '무기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무기 해금 방식이 도입됐다. 게임을 플레이해 레벨을 올리면 여러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며, 해당 무기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부착물을 해금하는 방식에서 조금 달라졌다고 보면 된다. 가령 AK(게임 내에서는 카스토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RPK, AKS-74U, 비존 같은 무기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여 있으며, 대부분의 부착물을 공유한다.
따라서 단순히 레벨만 올리고 무기를 많이 사용한다고 모든 무기나 해당 무기의 부착물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됐다. AK를 사용하더라도 일부 부착물을 사용하려면 같은 플랫폼 내의 다른 무기를 사용해 레벨을 올려야 한다. 대신 50 레벨에서 70 레벨 사이까지 올려야 했던 무기 레벨이 평균 20 레벨대로 줄어들었다.
플랫폼 시스템
해당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다양한 무기군을 사용하게 유도함과 동시에, 특정 무기군만 멀티플레이에서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나름의 조치로 보인다. 한 무기의 부착물을 전부 해금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종의 콘텐츠로 볼 수도 있다. 덕분에 멀티플레이 초창기 기준으로는 플레이어의 무기가 고착화되지 않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편이다.
다만 이용자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다. 다양한 무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무기를 사용하면 같은 플랫폼 내 무기군의 부착물도 자연스럽게 해금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내는 이용자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무기의 부착물을 해금하기 위해 같은 플랫폼 내 종류가 다른 무기를 강제로 사용해야 해 탐탁찮아하는 반응도 있다.
AK의 몇몇 부착물을 해금하려면 RPK의 총기 레벨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RPK를 쓰려면 AK의 레벨부터 올려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얽히는 식이다.
다소 아쉬운 지점도 있다. <모던 워페어 II>는 총기 라이센스를 구매하지 않았는데, 아예 원본 총기를 연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높은 총기 라이센스 사용비, 계속되는 총기 사고와 게임과의 연관성 문제 제기, 법적 이슈 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NRA(전미총기협회) 및 각종 시민 단체는 총기 사고에 대해 늘 폭력적인 게임이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FPS 게임이 실제 총기를 광고해 주는 꼴이라는 주장도 있기에 최근 많은 게임이 총기 라이센스 적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전 시스템에도 변경점이 도입됐다. 이제 특전을 4개 장착할 수 있지만, 기본 특전과 보너스 특전 그리고 궁극 특전으로 종류가 나뉜다. 기본 특전 2개를 가지고 시작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너스와 궁극 특전이 해금되는 방식이다.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UAV에 감지되지 않는 '유령' 특전이 궁극 특전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 초반부터 UAV에 탐지되지 않고 적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사살하는 플레이를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특전 시스템
# 모션, 애니메이션, 음향
이미 <모던 워페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정립된 1인칭 모션은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많은 FPS 개발자들에게 과제를 던져줄 듯하다. <모던 워페어 II>는 전작의 모션을 일부 재활용하기도 했지만 총기를 살펴보는 모션 등 세부적인 면에서 디테일을 더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새롭게 추가된 리볼버 재장전이 있다.
가령 리볼버는 무조건 한꺼번에 총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2발까지는 빈 실린더에만 따로 총알을 넣는 모션이 나온다.
참고로 <모던 워페어>와 <모던 워페어 II>의 모션은 모두 수동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졌다. 모션 캡쳐가 아니다.
또한, 밀리터리 마니아 사이에서 '이라크식 재장전'이라고 불리는 장전법이 게임 내에 구현됐다. 노리쇠를 손으로 수동 고정한 상태에서 탄알집을 교체하는 방식인데, 기본 재장전보다는 불편하지만 총기가 불량하더라도 확실하게 노리쇠 후퇴 전전을 할 수 있어 중동 지방에서 선호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사실 밀리터리에 관심이 없다면 "이런 애니메이션이 중요한가?"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FPS에서 역동적인 재장전 및 총기 애니메이션은 긴장감과 텐션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피니티 워드의 애니메이터 '마크 그릭스비'는 해외 매체 '게임 인포머'와의 인터뷰에서 재장전 본연의 맛을 강조하며 "다음은 누구냐?"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단순히 밀리터리 마니아를 위한 고증이라기보단, 게임의 액션성을 더욱 끌어올리는 장치로 사용된단 의미다. 실제로 <모던 워페어>(2019)가 출시된 이후 많은 게임이 이를 벤치마킹해 C-클램프 그립(총을 움켜쥐듯이 잡는 파지 방식)이나 새 탄창을 잡은 채로 재장전하는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시작했던 바 있다. 이번 <모던 워페어 II>는 전작에서 애니메이션이 더욱 발전했으니 영향력도 더 커지지 않을까 한다.
음향과 사운드도 발전했다. 이번 작품은 실내, 실외 등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발소리가 확연히 달라질 만큼 디테일에 힘을 쏟았으며, 적에게 총알을 적중시키거나 상대방을 처치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효과음 역시 여전히 강력하기에 특유의 손맛이 여실히 느껴진다.
<콜 오브 듀티> 특유의 효과음과 킬 연출은 여전하다
# 결국, 팬이라면 울면서라도 할 수 밖에...
결국 FPS의 기본은 쏘는 재미에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 싱글플레이, 연출, 다양한 모드 등 게임의 성공을 위해서 신경써야 할 점은 수많지만, 다른 모든 것을 잘하더라도 결국 쏘는 재미가 없다면 FPS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던 워페어 II>는 분명 쏘는 재미가 있다. 이전의 가벼운 런 앤 건 스타일에서 보다 전략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꾀하면서 여러 문제를 마주하고 있지만, 시리즈 특유의 원초적인 재미와 손맛은 여전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정립한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 층 더 발전시켜낸 총기 모션과 음향을 생각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콜 오브 듀티>에 늘 따라붙는 비판도 시리즈 신작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항상 신작이 나올 때마다 런 앤 건보다 캠핑이 유리해졌다는 의견이 나왔고, 시리즈 중 최고로 평가받는 <모던 워페어>나 <모던 워페어 2>의 멀티플레이에도 윈체스터 아킴보나 G18 아킴보 등 밸런스 붕괴 무기와 모든 유저가 싫어하는 나쁜 디자인의 맵이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재미가 충분했기에 화가 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긴 것이다.
<모던 워페어 2> 최강의 무기로 꼽혔던 윈체스터
국내에서는 쌍체스터라 불렸다. 결국 논란 끝에 너프됐다.
즉, <모던 워페어 II>의 멀티플레이는 FPS의 기본적인 쏘고 엄폐하는 재미를 잘 살려냈으며, <콜 오브 듀티>라는 프랜차이즈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 됐다. 배틀로얄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거뒀던 <워존>과 루머만 무성한 <DMZ> 모드는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으니 출시 초기의 기록적인 판매량에도 오히려 힘을 숨기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공에 가려 사후 지원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은 알았으면 한다. 아무리 <콜 오브 듀티>가 무조건 팔리는 프랜차이즈라 하더라도 <고스트>와 <뱅가드> 같은 실패 사례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래시 문제 등 각종 버그가 제보되고 있는 만큼, 이용자가 불쾌감이 너무 커진 나머지 게임을 이탈하지 않도록 명백히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