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 법원, 금융당국 그리고 투자자들. 오늘날 위믹스의 형세를 '사면초가'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블록체인 게임의 기축통화'를 꿈꾸며 탄생했던 위메이드의 위믹스는 업비트, 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2022년 12월 8일 이후로 사고팔 수 없다. 거래소들의 협의체인 닥사(DAXA)가 "유통량이 위반됐고,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으며, 소명 자료가 부족했다"며 위믹스의 거래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거래 중단이 발표된 지 하루가 지난 11월 25일,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격앙된 듯 닥사, 정확히는 업비트를 저격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① 닥사는 코인 유통 계획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② 닥사의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 ③ 현재 업비트에 유통 계획이 없는 코인이 부지기수인데, 위믹스에만 과도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메이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이때 위메이드는 세 곳의 대형 로펌에 소속된 15인의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그중 가장 큰 로펌은 심리 전날에 돌연 사임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그 로펌은 사임의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일차적으로 닥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앞으로 위메이드엔 지난한 본안 소송 과정이 남아있다. 위메이드는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이 문제를 제소할 계획이다. 이것이 현재 진행형인 위믹스의 국내 거래소 퇴출에 대한 지금까지의 흐름이다.
12월 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자들에게 위믹스 거래 정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금감원장은 "개별 종목의 상장 폐지가 적정하냐 않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닥사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과 소통하면서, 관련 법령상 규정과 체계에 미흡하지만, 일정 기준에 맞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기준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한번 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위믹스의 가격은 고점과 비교했을 때 대단히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닥사에 소속되지 않은 소규모 거래소에서 계속 거래 중이다. 해하에서 항우와 끝까지 함께 했던 결사대를 보는 듯, 위믹스는 거래소 '지닥'에서 600원 선에 거래 중이다. 거래 대금은 90% 이상 줄었고, 거래량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닥은 원화 거래를 지원하지 않아서 위믹스를 사고팔려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써야 한다.
항우의 결사대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 만하지만, 비유와 실제가 언제나 100%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터. 일단 위메이드는 필사적으로 불씨를 살려 둘 작정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위메이드는 위믹스의 총발행량의 축소 골자로 하는 '수축경제'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위메이드는 화폐 가치 하락을 완화하고,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보유 물량 7,130만 2,181 위믹스를 소각했다.
지난 9일에도 위메이드는 투자자 보호의 명목으로 자사가 발행했던 위믹스 130억 원어치를 다시 사들여(바이백)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가상자산의 '소각'이란, 키가 없는 지갑(데드 월렛)으로 가상자산을 전송시켜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 경우 유통되는 자산의 총량이 줄어들어 기존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가상자산의 소각은 주식회사의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는, 주식 총수를 줄이는 조치와 비슷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위메이드는 앞으로 이용자가 늘면 일정 분량의 위믹스가 소각되는 알고리듬을 도입하는 방식 등 다양한 소각 방식을 추가할 계획이다.
위믹스의 현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총발행량을 지속적으로 줄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위믹스는 이전 고점과 비교했을 때 소수의 거래소에서 적은 양이 거래되므로, 발행량을 줄이면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즉각적인 효과'는 지난 1년간 위메이드가 추구하던 방향이 아니다. 지난 2월, 장현국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단기적인 가격부양을 위한 소각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생태계가 성장했을 때, 코인 홀더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이후 '적절한 보상'을 위해 위믹스 2,500만 개가 소각됐다.
그 뒤로 수개월 동안 위믹스는 바이백되거나 소각되지 않았다. 닥사가 실제 유통량과 거래소 유통량 사이의 차이가 있다는 보고를 했을 때에도 장현국 대표는 "단기적인 미봉책(바이백)은 그때는 넘어갈 수 있지만 기업도 생태계도 성장하지 못한다"라며 "거래소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다렸다.
같은 간담회에서 장 대표는 "상장 폐지가 기사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지만, 일은 위메이드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유통량의 차이가 처음으로 문제됐을 때 위메이드는 소각이나 바이백 같은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대표가 직접 위믹스가 주요 거래소에서 계속 거래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지만, 결론적으로 그 신호는 참이 아니게 되었다. 가처분신청까지 기각된 뒤, 위메이드는 지닥에 위믹스를 상장(소각이라는 개념어가 그러하듯, 주식 시장의 '상장'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하고, 1달 전까지만 해도 고려하지 않던 바이백과 소각을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표시되는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의 차이야 맞출 수 있겠지만, 위메이드는 적지 않은 신뢰자본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본은 대차대조표에 계상되지 않지만, 앞으로 위메이드의 행로를 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위메이드는 위믹스를 블록체인 게임의 기축통화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연내 위믹스 생태계에 100개의 게임을 온보딩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직 플랫폼 '위믹스 플레이'에 등재된 게임은 21개다.
대표가 직접 "상장폐지 가능성은 없다"라고 일축했지만, 일은 정확히 반대로 일어났다. 그러면 "메타버스는 블록체인을 통해 연결된 게임 생태계", "3년 내로 모든 게임에 토크노믹스가 생긴다"라는 발언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시장은 분명하다. 구글 금융에서 2022년 12월 14일을 기준으로 연중 지표를 잡아보면, 위메이드의 주식은 78.87% 하락한 38,950원에, 위메이드플레이의 주식은 58.26% 하락한 14,900원에, 위메이드맥스의 주식은 66.94% 하락한 12,300원에 거래 중이다. 한때 25,000원에 거래됐던 위믹스는 지금 500~6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른바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 속에서 위믹스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장현국 대표는 "위메이드의 블록체인 사업은 글로벌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일로 저희 사업이나 영업이 크게 영향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닥사 소속 거래소에서 퇴출된 위믹스는 해외 거래소 오케이엑스(OKX)에서도 거래가 중단됐다. 또다른 해외 거래소 후오비와 MEXC도 위믹스 거래에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위믹스 자체 메인넷 도입을 강점으로 자부했던 위메이드는, 위믹스를 바이낸스 커스터디에 맡기기로 발표했다. 커스터디란 일종의 제3자 검증으로 위메이드 측은 "투명성·안정성 강화를 위한 조치"였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번엔 바이낸스가 말썽이다. 13일, 미국 검찰은 바이낸스를 무면허 송금, 자금세탁 위반, 형사제재 위반 혐의 등으로 형사 고발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보도됐다. 하루 사이에 바이낸스 자산의 6%가 빠져나갔다. 물론 바이낸스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와 그곳의 검증 프로트콜을 쓰겠다는 발표는 서로 다른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상장사가 직접 발행하는 믿을 만한 코인'은 그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이런 와중에 FTX가 파산하고 그 창업자가 체포되었으며, 테라와 루나의 권도형 대표는 동유럽의 세르비아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크립토 씬 전체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 상황이 이 정도라면 오늘을 크립토 윈터가 아니라 빙하기라고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한바탕 '포맷'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어떤 믿을 만한 프로젝트가 피어날까 살펴보는 게 합리적인 결정은 아닐까?
이번에는 말을 조금 바꿔보자.
위메이드가 당장의 믿음을 잃는 대신에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웠다면? 위메이드는 '위믹스 생태계' 확대를 이야기하며 1,367억 원에 <애니팡>의 위메이드플레이(옛 선데이토즈)를 샀다. 위메이드커넥트도 캐주얼 게임사 넥셀론을 인수했다. 위메이드는 명품 메타버스 마켓과 숏폼 서비스에 쓰이는 토큰에도 투자했고, 하이퍼리즘과 열매컴퍼니에도 투자했다. 적잖은 개발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뿐 아니다. 위메이드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강남구 역삼동의 오피스 빌딩을 구매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금융가로부터 수백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위메이드가 위믹스의 불씨를 살려 두기로 했다면, 다음 과제는 위믹스의 독보적인 쓸모를 입증할 수 있도록,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는 신작이 나오는 것이다. 장현국 대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새로운 재미가 없다면 경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믹스의 강점은 'MMORPG에서 작동하는 P2E 순환 구조'를 입증한 데 있다. <미르4 글로벌>의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140만 명을 기록했고, 게임의 매출은 1억 6천만 달러를 넘겼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른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들이 이룩하지 못한 경지다.
1번 타자가 <미르4 글로벌>이었다면, 2번 타자는 후속작 <미르M: 뱅가드 앤 배가본드>다. 사실 이 게임은 한국에서 먼저 출시된 적 있는데, 역시 한국에서는 2022년 6월 '토크노믹스'가 빠진 상태로 출시되었다. 출시 초기 한국 시장 매출 10위 권에 랭크된 적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주도 중인 대형 MMORPG를 위협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미르4 글로벌>에서 흑철을 위믹스로 교환했듯, <미르M 글로벌>에서도 비슷한 경제 구조가 작동할 것으로 추측된다. 장현국 대표는 "다음 달 글로벌 시장에 출시하는 <미르M>은 <미르4>의 하이드라를 직접 사용함으로써, 두 게임의 토크노믹스가 연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신작 효과가 적고, 토크노믹스 또한 체험하기 어려우므로 해외 성과를 지켜봐야 한다. 최근 <미르M 글로벌>해외 CBT가 완료됐다.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에는 <나이트 크로우>와 <레전드 오브 이미르>가 있다. 모두 언리얼엔진5로 개발 중이며, 고 퀄리티 MMORPG를 지향하고 있다.
<나이트 크로우>는 2023년 4월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아이온>, <V4>를 개발한 손면석 대표와 <히트>, <오버히트>를 개발한 이정욱 대표가 의기투합해 세운 매드엔진에서 개발했다. <레전드 오브 이미르>는 북유럽 신화와 '미르' IP를 결합한 MMORPG로 위메이드엑스알에서 만들고 있으며, <나이트 크로우>보다 뒤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미르4 글로벌>부터 <레전드 오브 이미르>까지 총 4종의 블록체인 MMORPG가 시장에서 공존하게 된다. 오늘날 모바일게임 마켓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3형제' 모델이 떠오른다.
단, A 게임을 하다가 B 게임으로 옮길 때 자산을 이동시키거나, C 게임을 접을 때 잔여 자산을 현금화하는 방식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 차이는 크다. 이 구조는 위메이드가 주창하는 '인터게임 이코노미'에 맞닿아 있다.
메타버스-P2E 유행 이후, 여러 콘텐츠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홍보는 되는데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위메이드 게임을 할지 미지수다. '위믹스 플레이'에는 캐주얼 게임군도 있지만, 위메이드가 내건 주요 신작은 모두 MMORPG로 카니발리제이션(자기잠식)에 대한 우려가 있다. 또 많은 투자자들이 한국에 살고 있지만, 이들이 현행법의 제한에 따라 '인터게임 이코노미'를 접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점 또한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