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대표하는 인디게임사 레드캔들게임즈에게는 몇 가지 쉬운 길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교 2'였다. 대만 게임으로는 스팀에서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반교>의 후속작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개발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으로 마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레드캔들게임즈는 2D 액션 플랫포머 <나인 솔즈>를 연내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동양풍 공포게임 전문 개발사로 입지를 탄탄히 할 수 있었겠지만, 대만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한 편 더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2D 액션 플랫포머는 스팀에서 선호도가 높은 장르이지만, 잠깐만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숱한 동종 장르 게임이 떠오른다.
<나인 솔즈>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이들이 대만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빈센트는 가장 대만스러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그로 하여금 플레이어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타이베이(대만)=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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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디스이즈게임: 개인적으로 <환원>의 OST '환원'을 좋아한다.
A. 레드캔들게임즈 빈센트: 노 파티 포 카오동(No party for Cao Dong)의 곡이다. 대만에서 꽤 인기 있는 밴드다.
Q. 여담인데 대만도 꽤 좋은 밴드가 많다. 선셋 롤러코스터나 엘리펀트 짐은 작년에 한국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A. 실은 나도 음악을 했었다.
Q. 정말인가?
A. 그렇다. (웃음)
Q. 대만에서는 몇 년 새 훌륭한 인디게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A. 이제는 모두가 스팀 계정을 가지고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에이펙스 레전드> (두 게임 모두 대만에서 인기를 끌었다) 같은 게임 하러 스팀에 들어왔다가 '여기 이런 게 있네' 하고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 스팀에서 우연히(by chance) 그런 게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대만의 인디게임 씬도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또 여기는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닌텐도 스위치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스위치에 넣을 인디게임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위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즐길 게임을 찾는 일은 대만에서 희귀한 일이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대만의 인디게임 시장은 수년 새 급격하게 성장했다.
Q. 모바일게임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모바일게임을 개발하는 인디개발자들이 적지 않은데.
A. 여전히 있고, 주류의 영역에 있지만, 내 생각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뭔가 새로운 게임을 찾는 추세 같다. 사람마다 게임 취향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소구하려는 쪽은 새로운 게임을 찾는 사람들이다. 간단한 게임이든, 평범한 게임이든, AAA급이든... 뭔가 '쿨'한 것, 신선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 게임과 맞다. 조금 더 '본능적인' 성향의 게이머, 또는 개발자들의 취향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바일게임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른다. (웃음) 그렇지만 <반교>가 모바일게임으로 출시가 되었고, iOS에 잘 만들어졌는데 다른 플랫폼에 출시된 <반교>와 계속 비교가 된다. 대만에 있는 큰 게임 회사들도 모바일게임을 만들어왔지만, 지금은 PC 스팀에 게임을 내고 있다.
Q. 대만 게임업계에서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중국에 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인가?
A.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일단 '소문'은 아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논할 문제도 아니다. 개발자라면 블리자드나 너티독이 불렀을 때 관심이 가지 않을까? 닌텐도에서 오퍼를 한다면 거절할 수 있을까? 재능 있는 개발자라면 최고의 기회를 찾는 게 맞다. 지금 중국 게임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많은 회사에 유능한 개발자들이 모이고 있다. 대만의 개발자들이 거기에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두 가지 타입의 개발자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임금과 안정성, 큰 회사에서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을 바라는 개발자들이 있고, 자신의 센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있다. 우리는 후자 쪽에 속해 있고, 그런 개발자들이 만드는 인디게임으로 대만 게임 생태계는 유지되고 있다. 10년 전에는 대만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들어도 어떻게 팔지를 모르니까.
스팀의 등장 때문에 이제는 대만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 개발자도 많다. 예전엔 옵션이 전혀 없었다면, 이제는 옵션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그 질문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Q. 스팀의 등장으로 개발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가질 수 있게 됐다?
A.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10~15년 전에는 대만의 큰 게임 회사들은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IP를 가지지 않았다.
<리니지>나 <라그나로크> 같은 게임들이 대만에서 성공했다. 그들의 성공 이후 많은 대만 게임회사들이 '우리는 게임을 만들지 않아도 돼, 한국 게임이나 일본 게임이나 미국 게임을 잘 사오면 돼'라고 생각했다.
나라 밖에서 이미 좋은 게임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으니 선도적으로 뭔가 만들려는 시도가 뜸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Q. 신작 <나인 솔즈>는 어떻게 출발한 게임인가? 전작들과 달리 공포 느낌은 없어 보인다.
A. 호러 게임은 그만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웃음)
두 차례 호러 게임을 만들면서, 그리고 <환원>의 일을 겪으면서 우리 팀에는 번아웃이 왔다. 조금 쉬고 싶었고, 호러 게임 플레이 경험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여러 이유로 중국 시장에서 정지되면서, 우리는 우리를 재조직하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먹힐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로 결론내렸다.
처음에 생각은 '<할로우 나이트> 같은 게임을 해보자'라는 것이었다. <하데스>도 그렇고,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면 비슷한 게임이 상당히 많이 생겨난다. 아마도 스팀에는 수백 개의 2D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 있을 거다. 소울라이크든, 액션게임이든, 매트로배니아든 무엇이든 말이다. (웃음)
우리는 또 다른 버전의 <할로우 나이트>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버전의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꺼낸 게 중국의 고대 신화였다. 2D 액션 플랫포머면서도 우리 버전의 <갓 오브 워>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도교의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아홉 태양을 쏘는 유명한 신화의 영웅담을 게임으로 재탄생 시키기로 했다.
(기자: 처음 듣는 이야기다 / 빈센트: 말도 안 돼. 이 이야기를 모른다고?)
<나인 솔즈>의 근본이 되는 신화는 영웅 예(羿)의 이야기다.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지자, 예는 한 개의 태양만 남기고 전부 활을 쏴 격추시킨다.
Q. 처음 듣는다. 대만의 계엄령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이야기였다. <반교>를 통해서 그 사실이 알
려지지 않았나?
A. 동의한다. (웃음)
Q.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는 어떤 차별점을 만들었나?
A. <세키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패링(타이밍 가드)을 통해 기를 모으고, 그를 통해서 스킬을 사용하는 액션이 들어간다. 동종 유사 장르 중에서는 다른 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타이밍을 맞춰서 적을 공격하고, 다양한 커맨드를 조합해서 스킬을 사용하고,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요소들이 들어간다. 게임을 플레이할 수록 갈고리를 거는 등의 기믹들이 추가된다.
Q. <나인 솔즈>는 언제 출시될까? 펀딩 페이지에는 올 2분기로 명시되어 있는데.
A. 우리가 그랬나? (웃음) 2분기라고 되어있는데, 조금 더 여름이 될 수도 있다. 스팀에 먼저 출시될 계획이며, 콘솔 쪽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 중인데, 포팅 자체는 편해졌지만 게임플레이 설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Q. 하나를 잘 만들어서 터뜨리면, 그 콘텐츠의 후속작을 만들거나 IP 사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레드캔들게임즈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게임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A. 솔직히 말해서 전작의 후속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많은 인디 스튜디오에게 가장 먼저 고민되는 것은 '어떤 것을 만들까'가 될 것이고, 그 다음은 '무엇이 안전한 선택인가'가 될 것이다. 레드캔들게임즈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가'이다. <나인 솔즈>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반교 2>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게임플레이를 설계하며, 그 다음으로 '어떤 물건을 만들지'를 구체화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우리 회사 구성원들은 모두 신이 난다. 인디 스튜디오가 좋은 점은 구상과 실행이 굉장히 가깝다는 데 있는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재미를 탐험하는 것이 인디 스튜디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개발자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는데, 내 생각에 레드캔들게임즈 개발자들은 다른 게임 만들기를 좋아한다. 또 각자 선호하는 게임 장르가 다 다르다. 모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삼국지>나 <문명>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한다. (웃음)
만약에 <반교 2>를 만들어야 한다면, 사람들은 재밌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창의적인 게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인디 스튜디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일전에 '가장 대만다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나?
A. 회사 차원에서는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대만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텐데. 그것은 곧 우리의 문화적 배경이 될 것이다. 대만은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두 전작은 그런 부분을 많이 어필하고 있다. 대만스러운 게임을 만드는 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인디게임 시장은 굉장히 경쟁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을 주지 못하면, 그러니까 색다르지 않으면 빠르게 휩쓸려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만스러움'이란 우리에게 중요한 키워드다. 내가 한국의 역사로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어볼 것이다. '너네 한국 회사야?'라고. 나는 가장 말이 되는(reasonable) 물건을 만들고 싶고, 그것은 곧 대만스러운 것이다. 나는 대만 사람이니까 대만스러운 물건을 하기에 가장 좋다.
하지만 요즘 들어 진짜 대만스러움이란 무엇인지 어렵기는 한다. 누군가는 레드캔들게임즈의 대만스러움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도 이 부분은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Q. 그럼 빈센트의 목표는?
A. 직원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목표는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유저들에게 최고의 게임플레이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