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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의 ‘프로젝트 거절’에 게임계 떠나는 원로 개발자

‘둠’으로 커리어 시작한 아메리칸 맥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4-11 11:28:25

“모험은 끝났다.”

 

<둠>을 만든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유명 개발자 ‘아메리칸 맥기’가 업계를 떠난다. EA가 판권을 가지고 있는 <앨리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무산된 데 따른 결과다.

 

맥기는 전설적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고, <앨리스> 시리즈에서는 특유의 창작 미학으로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30년 경력의 개발자다. 그의 은퇴 선언이 팬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안기고 있는 이유다. 그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 왔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업계를 떠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맥기가 은퇴 선언 포스팅과 함께 올린 <앨리스: 어사일럼> 콘셉트 아트

 

 

# <앨리스> 시리즈의 아버지

 

아메리칸 맥기는 루이스 캐롤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해석한 <앨리스> 시리즈의 아버지다.

 

그의 이름을 딴 시리즈 첫 작품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는 2000년 출시했다. 시스템적으로는 큰 독창성 없는 삼인칭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익숙한 테마를 비튼 잔혹한 시각적 디테일들이 가득한 점에서 호평받았다.

 

더 나아가 주인공 앨리스의 상처 입은 정신을 암울하게 묘사한 심리학적 스토리텔링도 좋은 평가의 배경이 됐다.  2017년까지 게임은 총 150만 장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 출시한 두 번째 작품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 역시 아메리칸 맥기가 중국 상하이에 설립한 스튜디오 ‘스파이시 호스’에서 맡아 제작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환상이 중첩된 음울한 스토리텔링, 몽환적이고 기괴한 레벨/시각 디자인, 고어한 액션 연출 등으로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만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는 EA의 출시일 재촉으로 인해 다소 미완성 상태로 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보스 몬스터, 무기, 스테이지 등이 생략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게임이 전반적으로 당초 기획보다 단순해졌고, 이것이 일부 혹평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

 

 

# 3편 만들고 싶었던 맥기

 

스파이시 호스는 2016년 문을 닫았고, 맥기는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는 ‘미스테리어스’라는 이름의 새 기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부터 맥기는 온라인 공간에서 <앨리스> 3편을 향한 바람을 차츰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SNS 등을 통해 후속편 제작에 대한 팬 수요를 조사해나가던 맥기는 2017년 9월 마침내 <앨리스: 어사일럼>이라는 가제와 함께 <앨리스>의 세 번째 프로젝트를 EA에 제안하겠다고 선언했다.

 

맥기가 직접 게임 제작에 돌입할 수 없었던 이유는 게임 판권을 1, 2편의 퍼블리셔  EA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EA를 설득하기 위해 맥기는 아트북, 디자인 개요, 심지어 BM까지 포함된 사업 기획을 작성해 2018년 7월에 EA 측에 전달했다.

 

EA는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맥기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후원 사이트 페트리온에 <앨리스: 어사일럼>의 포스트 프로덕션 프로젝트를 등록, 팬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며 노력을 이어나갔다.

 

맥기의 시도는 지난 2월에 한층 가시화되었던 바 있다. 그는 페트리온 페이지에서 완성된 400여 페이지 분량 설정집과 콘셉트 아트를 무료 배포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개발 아웃소싱 기업 ‘버추어스’와의 파트너 협약 또한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EA를 다시 설득하겠다고 팬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맥기의 마지막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4월 10일 맥기는 ‘여행은 끝났다’는 제목의 포스팅을 통해 실패 사실을 직접 알렸다. 그는 “수주일 간의 검토 끝에 EA는 <앨리스: 어사일럼>에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라이센스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알려 왔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EA는 IP에 대한 내부 분석, 그리고 현재 시장 상황 및 프로덕션 제안의 세부 사항을 종합 검토한 결과 제작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한다. 라이센스 부여에 있어서도 EA는 “EA의 전체 게임 목록에서 <앨리스>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IP로서, 당장은 그 판매나 라이선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앨리스: 어사일럼> 프로젝트 포기를 알린 맥기의 트윗

 

 

# 원로 개발자의 아쉬운 마지막

 

한편 맥기는 이번 포스팅에서 업계 은퇴 의사까지 밝히며 아쉬움을 안겼다. 맥기는 “나는 <앨리스>의 프로젝트의 끝과 함께 전반적 게임 제작 활동도 끝내려고 한다. 새로운 <앨리스> 게임 제작을 위한 에너지나 아이디어가 바닥났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게임 개발환경 아래에서는 새 게임을 추진할 만한 어떠한 흥미나 생각도 끌어낼 수 없다”고 전했다.

 

맥기의 은퇴가 일부 게이머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기는 것은 그가 <둠>으로부터 게임 커리어를 계속해온 북미 게임업계의 산증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본래 수학과 컴퓨터에 재능을 보였던 어린 시절의 맥기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던 어머니로부터 16세가 되던 해 버려지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인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폭스바겐 정비소에 취직하며 비로소 생활의 안정을 찾는다.

 

그러던 중 <둠>의 개발자 존 카맥을 만나면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젊은 천재 개발자이자 벼락부자로서 차량 개조를 위해 정비소를 종종 찾던 카맥은 맥기에게 취직을 제안했고, 맥기는 제안을 받아들여 <둠 2>, <퀘이크>, <퀘이크 2> 등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드 소프트웨어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다.

 

맥기가 2월 공개한 홍보 트레일러

  

그러나 맥기는 1998 이드소프트웨어에서 해고된 뒤부터는 대부분 게임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아메리칸 맥기의 그림>, <배드 데이 L.A.>, <아메리칸 맥기의 스크랩랜드> 등 게임은 모두 혹평과 함께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았다.

 

즉, <앨리스>는 그가 진두지휘한 작품 중 유일하게 ‘성공’으로 분류할 만한 시리즈다. <앨리스> 3편 프로젝트가 무산됨에 따라 그가 창작 의욕을 상실한 이유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이번 은퇴 선언에서 맥기는 자신을 끝까지 지지해준 후원자들에게 사과의 말과 함께 작별을 고했다. 그는 “페트리온 후원자 여러분에게 달곰씁쓸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과 저 모두 바라지 않았던 결과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간 모든 비용, 희망, 아이디어, 그리고 여러분들이 수년간 쏟아부어 준 사랑을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번을 계기로 또 다른 모험과 꿈의 기회가 열리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몸담고 있는 ‘미스테리어스’에서 가족과 함께 게임 외 사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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