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하스스톤> 유저들 사이에선 일명 '아만보'라고도 불리는 격언은 게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소니 픽처스의 '스파이더버스' 트릴로지가 특히 그렇다. 기존 코믹스와 영화의 유사성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빠른 화면 안에서 압축된 정보와 연출이 많은 작품이기에 영화의 장면을 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감상이 나온다.
시그래프 2023 현장에서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사용된 여러 기술과 제작 비화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마일스와 그웬을 비롯한 스파이더맨들의 멀티버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심지어 아직 제작 중인 3편에 대한 힌트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이 소개됐을까. /로스앤젤레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시그래프 2023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프로덕션 세션 발표자
▲ 마이크 래스커- VFX 감독,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 앨런 호킨스- 캐릭터 애니메이션 책임자,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 브렛 클레어- 수석 화면 감독,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 파브 그로촐라- 화면/VFX 감독,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 움베르토 로사- 수석 애니메이션 감독,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 니콜 코르뉴트 서튼- 텍스처 페인트 감독,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로스앤젤레스 시그래프 2023 현장에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제작팀을 만났다.
# 6명의 스파이더맨, 6개의 우주
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마일스 모랄레스는 다른 우주의 거미에게 물리며 스파이더맨의 힘을 얻게 된다. 이후 차원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스파이더맨들이 나오지만, 이중 대표적인 캐릭터와 우주에 대해 먼저 설명이 됐다.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스파이더맨 인디아가 등장하는 뭄바탄은 뭄바이의 실제 문화와 기존 코믹스의 화풍을 반영했다. 각각의 지역에 대한 설정이나 원작 반영은 마일스의 브루클린, 그웬의 첼시, 스파이더펑크의 올드 요크, 스파이더 2099의 뉴에바 그리고 삼촌이 살아있고 마일스가 프라울러인 지구 42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뭄바탄이라는 가상 도시에서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인디아
가령 스파이더맨 2099와 미래 세계의 경우 차가운 SF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림의 밑에 블루 펜슬 스케치가 모두 들어갔으며, 캐릭터 표현을 할 때도 일부러 선을 밖으로 날카롭게 삐져나오게 연출했다. 탈 것부터 건물, 주변 조형물까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부 하나하나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락스타인 스파이더펑크를 그릴 때는 벌처를 표현한 것과 비슷하게 완전히 다른 화풍과 레이어로,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있는 배경과 확실한 차이를 줬다. 2D 아트와 종이 재질의 연출이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반전이 드러나는 지구 42는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전반적인 톤을 어둡게 잡았고, 그림자를 강조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어둠 속에서 프라울러가 드러나는 장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2099의 어깨와 목 주변에 선이 삐져나온 연출이 보인다.
벌처와 스파이더펑크의 표현에는 기존 캐릭터, 배경과 완전히 다른 연출이 동반됐다.
프로덕션 세션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인해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현장에서 소개된 사진을 기사에 첨부하지 못 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 특히 현지 시각 8일 진행된 세션에서는 테스트 데모 당시 영상이나 아트가 다수 공개됐다.
예를 들어, 그웬의 세계를 구성할 때는 핑크, 블루, 바이올렛 색상을 많이 사용했고,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그웬의 성장과 감정선을 위해 물에 녹아내리는 듯한 수채화 기법을 특히 많이 적용했다고 한다. 특히 제작 초기에는 작품 전반을 수채화 연출로 구성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그웬의 세계는 특징적인 색감이 살아있다. 흘러내리는 수채화 표현도 특징 중 하나다.
# 수채화와 붓질 그리고 퍼지는 잉크
제작팀은 작품에 수채화 느낌을 줄 때 리벨(Rebelle)이라는 페인팅 툴을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는 애니메이션 툴이 아니었으나, 물처럼 색감이 퍼지는 연출을 배경에 더할 때 활용됐다. 수채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잉크가 번지는 듯한 표현은 '스팟'과 같은 캐릭터에 적용됐다. 이런 잉크 번짐 표현을 위해 파이썬 코딩으로 툴을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스팟의 초기 디자인과 테스트 버전도 공개됐는데, 처음에는 목소리와 몸짓으로만 표현을 하는 캐릭터로 설정을 했으나, 얼굴에 있는 구멍을 표정처럼 변형시키며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스팟의 능글맞으면서도 위태로운 성격은 포즈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에곤 쉴레'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불안한 정서를 보여주는 미묘한 손과 자세를 부여했다고 한다.
스팟이 다크 에너지를 활용하는 장면에 대한 연출에서는 잉크가 퍼지는 연출과 함께 전기 스파크처럼 어둠이 이동하는 연출을 섞어 강력한 힘을 컨트롤하는 느낌을 줬다. 영화에 등장한 최종본 외에도 현장에서 공개된 테스트 버전에서는 더욱 그런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현장에서만 공개된 영상에서는 3편의 장면으로 추정되는 컷들도 있었는데, 스팟은 더욱 강렬한 연출 안에서 파괴적인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스팟과의 전투 장면
# 3D에 다시 2D를 얹었다
'스파이더버스'는 특징적인 연출을 위해 배경과 캐릭터 모두 수 많은 레이어의 조합으로 표현이 됐다. 특히 3D 지오메트리에 2D 핸드 드로잉을 얹어, 아티스트의 의도와 화면의 완성도를 모두 잡았다.
예를 들어, 3D로 스타일라이즈된 폭발이나 이펙트를 먼저 넣은 후, 그 위에 2D 아트를 다시 얹는 방식으로 강렬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아티스트의 기량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됐지만, 기존 3D 구성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섞일 수 있는 선을 찾아갔다고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역동적인 액션 표현들 속에도 2D와 3D의 여러 레이어가 겹쳐 있다.
바이크 뒤로 날리는 연기나 바퀴의 움직임을 강조한 선들이 예시 중 하나다.
3D 지오메트리 위에서 현재 장면의 시점에 맞게 2D 이펙트나 붓선, 라인을 넣는 경우 카메라 시점의 변화, 물체의 움직임에 의해 금세 라인이 망가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하나의 지오메트리 위에 여러 라인을 그리고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생성되게 하여, 저절로 새로운 라인을 그릴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을 적용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얼굴에 있는 라인은 매우 섬세해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함께 적용했고, 다양한 카메라 앵글에서 모두 진행해 라인 워크가 자동으로 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라인을 아티스트가 세밀한 편집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라인 외에도 브러시 또한 지오메트리를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제작팀은 "연필은 팔을 따르고, 팔은 심장을 따른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요소들도 많은 신경을 썼고, 하나하나의 장면에 수많은 색감과 붓 터치가 들어갔다고 했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에서는 또 어떤 아트와 연출을 보여줄지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늘 세션에서는 특히 수채화 표현과 레이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됐다.
또 어떤 연출과 화면으로 시선을 사로잡을지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