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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라이크도 호러가 될 수 있다? ‘위더링 룸즈’

2.5D 사이드뷰, 생존 호러, 로그라이크의 만남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4-12 18:44:33
두려움은 흔히 설명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해력 바깥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를 상식의 세계로 끌어내려 설명하려는 강력한 욕구를 느끼지만, 이에 실패하면 외려 이전보다 더 큰 공포에 빠지고는 한다.

많은 호러물이 공포의 대상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서는 ‘규명되지 않음’을 아예 핵심 소재로 삼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간만의 국산 천만 영화 <파묘>의 호불호가 갈리는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히는 지점이다. (스포일러) 영화 후반부를 책임지는 ‘오니’는 물리적 실체를 지닌 탓에-어떻게든-맞상대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별수 없이 공포감이 희석되며 몰입이 깨졌다는 감상이 나온다.

이것은 액션을 가미한 생존 호러 장르 게임들에 자주 뒤따르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적’을 상대하는 방식에 있어 정교한 안배와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포와 액션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에 실패하고 만다.

지난주 출시한 인디 호러 생존 신작 <위더링 룸즈>는 꿈속 세계와 언데드, 마녀와 주술 등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이를 이전에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엮어내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2.5D, 메트로배니아, 로그라이크 등 대중적이면서도 호러와 결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은 메카닉을 한꺼번에 활용하고 있는 지점이 인상깊다.


게임명: <위더링 룸즈>

장르: 호러 어드벤처

개발사, 배급사: 문리스 폼리스, 퍼프 게임즈

플랫폼/출시일: 스팀/2024년 4월 5일

가격: 27,000원

한국어 지원: X



# 꿈에 갇힌 소녀와 사람들

<위더링 룸즈>의 주인공 ‘나이팅게일 윌리엄스’는 10대 소녀로, 아버지에 의해 ‘모스틴 프라이빗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모스틴 병원의 입원 예정자는 원내 생활 적격성을 검토받기 위해 ‘관리실’에서 사전에 하룻밤을 묵어야만 하는데, <위더링 룸즈>의 이야기는 이렇게 잠든 ‘나이팅게일’의 꿈속 세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꿈속 나이팅게일은 언데드와 마녀, 마술이 자연스레 횡행하는 세상에서 눈을 뜬다. 이쪽 세계의 주민들은 자신이 꿈속에 기거한다는 사실을 분명이 인지하면서도 빠져나가는 방법만큼은 알지 못한다. 어떤 인물은 며칠 만에 깨어나는 반면 어떤 인물은 영영 갇혀 있지만 그 둘을 나누는 차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꿈속에 오래 체류한 자들은 그 과정 중 점차 자신을 잊어 가며, 바깥세상의 ‘본체’ 역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유저와 나이팅게일 모두에게 꿈속을 빠져나가야 할 좋은 모티브로 작용한다.

한편 소녀가 거니는 꿈은 그저 정신질환자의 망아 상태에 대한 은유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유저는 탐험을 계속함에 따라 꿈 세계를 구성하는 고유의 법칙과 역사를 접하며 그 윤곽을 더듬어 알아가는데, 이것은 흥미유발을 위한 미스터리를 꾸준히 제공, 몽환적 설정 속에서도 내러티브 적 흥미를 뚜렷이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마녀와 주술이 당연한 존재로 취급된다


# 생존 호러에 로그라이트 빌려 쓴 이유?

<위더링 룸즈>는 현재 스팀 플랫폼을 기준으로 95% 이상의 유저들로부터 긍정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을 추천한 유저 중 상당수는 서로 다른 유명 호러 게임들의 특징적 요소를 제한된 메카닉 안에 조화롭게 엮어낸 실력에 감탄을 표하고 있다. 개발사 ‘문리스 폼리스’가 미국 시애틀의 소규모 개발사라는 사실은 이런 감탄을 가중한다.

비주얼을 통해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선 <위더링 룸즈>는 사이드뷰 시점의 2.5D 호러 어드벤처 게임이다. 2D 혹은 2.5D 그래픽으로 호러를 연출하는 것은 드문 시도는 아니며, <반교> 등 인기 작품도 많다.

다만 <위더링 룸즈>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바이오하자드>로 대표되는 고전 호러 서바이벌의 문법을 게임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 삼았는데, 여기서 차별화를 위한 개발사의 고민을 첫 번째로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호러 서바이벌은 탐험과 자원 수집·관리, 정교하고 어려운 전투를 주축으로 게임 경험을 풀어낸다. 복잡한 월드에 산개한 자원을 모아 위기 상황을 간신히 (중요하다) 돌파하는 아슬아슬함이 장르의 인기 비결이다.

<위더링 룸즈> 역시 게임 소개에서부터 ‘어려운 난이도’를 내세우고 있을 만큼 빡빡한 전투를 강조한다. ‘언데드’, ‘유령’ 등 적 몬스터는 89종이나 되는 탓에 패턴과 특징을 알아내는 데서부터 부담이 온다. 각자의 전투 패턴을 파악하고 나면 이번에는 엄밀한 판정과 어린 주인공의 제한적 신체 능력이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한다.

강한 적은 주인공을 2~3번 만에 쓰러뜨릴 수도 있다.

다행히 세계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마법이 횡행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 역시 ‘마녀’의 길을 선택, 주술과 물약, 제물 공양으로 적을 상대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여기엔 다양한 아이템이 투입되기 때문에, ‘물자 수집으로 살아남는’ 호러 서바이벌의 핵심 플레이스타일 중 하나는 만족되는 셈이다.

그런데 사이드뷰 게임에서는 복잡한 지형의 차용이 비교적 어렵고, 그런 만큼 탐험(과 아이템 발견)의 쾌감을 구현하기가 상대적으로 녹록지 않다.

주인공에게 ‘벽타기’, ‘더블 점프’ 등 보편적 이동 능력이라도 부여하면 다층적 맵 구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위더링 룸즈>는 주인공의 대단찮은(?) 신체능력에 기대어 전투의 중압감을 키우는 측면이 커서 이런 시도 또한 힘들다.

흥미롭게도 개발진은 여기서 ‘로그라이트’를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위더링 룸즈>의 맵은 방이 일렬로 나열된 통로 여러 개를 붙여 만든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다가 맵 곳곳의 수납장, 적 몬스터, 상점 등에서 쉽게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다른 생존 공포 타이틀에서처럼 물자에 집착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는데, 사망 시 아이템 대부분을 잃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한 결과 <위더링 룸즈>는 기존 생존 호러 게임과는 비슷한 듯 다른 재미를 주는 데 성공한다. 일반적 생존 서바이벌에서는 긴 호흡의 물자 관리에 방점이 찍히지만, <위더링 룸즈>의 경우 물자 사용에 있어 로그라이트에서처럼 ‘당면 과제의 해결’이라는 단기 전략과 ‘영구 업그레이드’라는 장기 전략을 투트랙으로 고려하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자 획득은 쉽지만, 유지는 어렵다.


# 만족스러운 성장과 빌드

이러한 ‘투트랙’ 구성은 성장(육성)에서 느껴지는 효능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낳는다. 여기에는 액션RPG를 연상시키는 게임의 빌드 다양성도 큰 몫을 한다. 역시나 호러 생존보다는 로그라이크에 조금 더 맥이 닿아있는 듯한 지점이다.

<위더링 룸즈>의 전투 시스템에는 독, 마비, 저주, 출혈, 화염 등의 속성이 존재한다. 또한 전투 스타일 면에서도 근접, 원거리, 투척물, 주술, 은신 등의 선택지가 다양하게 주어진다.

여기에 주술과 마법 아이템들까지 더해지면 작아 보이는 게임 볼륨과는 달리 수많은 플레이스타일을 이용한 실험과 ‘놀이’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문에 함정을 설치하거나, 적 생명을 흡수하는 장판을 깔거나, 갑옷에 생명을 부여해 싸우게 하거나, 투명화로 피신해 후방을 급습하는 등의 여러 전략을 게임 초반 수 시간 내에 모두 맛볼 수 있다.

갑옷 기사를 부릴 수도 있다.

다만 로그라이크 문법을 지나치게 엄격히 준수해 초기화가 빈번할 경우 빌드 완성의 재미는 감퇴하기 마련이다. 개발진은 영구 업그레이드 개념으로 통해 이러한 스트레스를 완충한다.

우선 게임에 등장하는 의상들은 체력이나 저항력 등 기초 스펙을 올려주는 것, 특수 조건 하에 발소리를 줄여주는 것, 적의 의심을 사지 않게 해주는 것 등으로 그 성능과 쓰임이 다양한데, 대부분 소모품과 달리 사망해도 잃지 않는 ‘영구’ 아이템들이다. 취향에 맞는 빌드를 유지하거나 새 빌드를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안배로 볼 만하다.

더 나아가 맵 곳곳에 놓인 공물 제단에 적에게서 입수한 장기들을 바쳐 제단을 활성화하면,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영구화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많은 버프를 제공하지만 기본적으론 ‘영구 아이템’으로 취급되지 않는 무기나 반지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유지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강한 아이템은 영구화해서 다음 '런'에 활용하면 된다.


# 독특한 생존 호러 찾는 유저라면

종합적 메카닉을 통해 게임은 유저로 하여금 연약한 10대 환자로부터 시작해 점차 자신만의 전투 스타일을 지닌 강력한 마녀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즐기게 해준다. 일견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이 게임이 강한 중독성을 발휘하는 이유다.

일반적 마녀 설화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19세기 말엽의 시간적 배경. 정신병원과 꿈, 미스터리한 재력가의 괴이한 저택 등의 오컬트 요소, 전형성을 자주 거부하는, 오싹한 디자인의 몬스터와 이들의 다양한 공격 패턴 또한 <위더링 룸즈>의 독창성을 부각하는 긍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생동감이 부족한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표정, 아이템 교체가 빈번히 이뤄져야 하는 게임 특성에 반하여 어색하고 불편한 장비 UI 등은 아쉬움을 남기는 지점들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게임의 전반적 감상을 해칠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전에 없던 생존 호러 게임을 찾는 유저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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