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를 떠난 옛 취재원과 점심을 먹었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오늘 대뜸 술에 덜 깬 말투로 기자에게 이렇게 따졌다. "니들은 사전예약이 뭐냐?".
무슨 투정인가 들어봤더니 게임업계에서 즐겨 쓰는 '사전예약' 자체가 동의첩어로 틀린 표현이라는 것이다. 과연 모든 '예약'은 '사전'에 이루어진다. 캐치테이블을 비롯한 모든 예약 앱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은 미래의 것이다. 한자어 '예약'에 '미리'라는 뜻의 예(豫 또는 予)가 들어가니 사전예약은 '역전앞', '낙숫물', '함성소리' 그리고 'RPG게임' 같은 잉여적 표현이다.
친구는 사전예약에서 사전을 아예 빼버릴 것을 요구했다. 굳이 사전이라는 어감을 살리고 싶다면 '사전등록' 따위로 고칠 것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고 사무실에 앉았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사전예약 소식이 잔뜩이다.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다시 보니 사전예약이라는 단어는 식품 브랜드 '처갓집'이나 '외갓집'처럼 딱 달라붙어버린 느낌이었다. 예약이나 사전등록으로 완벽히 대체되지 않을 것 같달까?
게임업계에서 '사전예약'은 새 게임의 출시나 특정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그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모바일 MMORPG의 시대, <리니지M>은 550만을 모았고, <검은사막 모바일>은 500만 명을 모았다. 각 게임이 얼마나 많은 예약자를 모집했는지 주목했고, 수백만 명의 유저는 실제 게임의 성과와 연결됐다.
하지만 이제는 사전예약이라는 단어에 들어가던 마케팅 효과가 과거보다 퇴색됐다. 게임사들은 사전예약 이벤트를 펼치며 닉네임 선정권, 클라이언트 사전 다운로드 등의 권한은 물론 인게임 재화나 카카오톡 이모티콘 등을 지급해왔다. 추첨을 통해 실물 경품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게임에 관심이 없어도 경품을 노리고 사전예약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자체가 믿을 만한 지표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떠올랐다.
기자가 처음 모바일게임 보도자료를 다루었을 적에는 사전예약 100만 명이 대단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어떤 게임이나 100만 예약자를 모았다고 홍보하니 감흥이 없다. 예약자 100만 명이면 국민 50명 중 한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닌가? 100만이면 울산광역시 인구(109만)에 버금가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그만한 파급력을 미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이제 '사전예약 OOO만 돌파' 소식은 신뢰도가 떨어질뿐더러 재미도 없는 뉴스다. 도리어 '보상으로 만든 어뷰징'이라는 비판을 마주하기 딱 좋다. 본인이 게임 마케터라면 사전예약이라는 표현의 사용보다, 그 소식 자체를 전할지 말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디스이즈게임에 사전예약 보도자료를 전하고 싶다면 [email protected]으로 보내면 된다. 만약 기사에 '사전' 두 글자가 사라졌다면 기자 짓인 줄 알고 귀엽게 봐주시기를.
그럼에도 디스이즈게임에 사전예약 보도자료를 전하고 싶다면 [email protected]으로 보내면 된다. 만약 기사에 '사전' 두 글자가 사라졌다면 기자 짓인 줄 알고 귀엽게 봐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