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뜻밖의 호평과 흥행을 달성했던 추리 어드벤처 게임 <황금 우상 사건>(The Case of Golden Idol)은 추리 게임의 새로운 잠재력과 더불어 소위 <황금 우상> 시리즈의 또 다른 과제를 동시에 제시한 바 있다.
단편적인 화면을 꼼꼼히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키워드를 알맞게 배치해 추리를 완성하는 독특한 감각의 게임 플레이, 그리고 18세기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황금 우상과 그런 황금 우상에 엮인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다룬 스토리는 큰 호평을 받았다.
반면에 단편적인 화면을 잘못 해석하는 데에서 따르는 발상의 매몰과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을 만한 시스템상의 대책의 부족은 이 게임의 숙명적인 한계이자 극복하기 힘든 불안 요소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원작 출시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황금 우상 사건의 후속작인 <다시 깨어난 황금 우상>(The Rise of Golden Idol)이 새롭게 출시됐다.
<다시 깨어난 황금 우상>
보통 많은 호평을 받았던 전작의 결을 잇는 후속작은 전작의 강점을 강화하거나 전작의 결점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따금씩 두 가지를 모두 해내며 전작이 받았던 것 이상의 호평과 흥행을 달성하는가 하면 두 가지 중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며 전작을 즐겼던 이들로 하여금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황금 우상을 둘러싼 새로운 인간 군상의 욕망을 담은 이 추리 게임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과 추가적인 개선의 여지를 동시에 보여준 전작 <황금 우상 사건>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황금 우상의 미스테리도, 욕망을 반추하는 추리도, <다시 깨어난 황금 우상>
<다시 깨어난 황금 우상>은 전작인 황금 우상 사건으로부터 3세기라는 긴 세월이 흐른 21세기의 현대 시점을 배경으로 여전히 온갖 의혹으로 가득한 황금 우상을 둘러싼 새로운 인간 군상들의 행적을 추리해야 하는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우중충한 색감의 일러스트와 특유의 화면 인터페이스 구성, 그리고 단편적인 화면을 조사해 키워드를 수집하고 빈칸을 채워나가는 독특한 감각의 게임 플레이는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드러내는 캐릭터와 오브젝트, 그리고 한결 웅장해진 배경 음악 덕분에 추리 현장의 생동감과 상황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된 모습이다.
전작에 이어 황금 우상이 스토리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나 생각보다 전작과의 연관성이 그렇게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물론 전작을 플레이한 이들이라면 익숙하게 다가올 만한 요소들이 꽤 있긴 하다.) 한편 본작의 경우 출시 직후 공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한다.
오랫동안 유저 한글 패치만 존재했다가 출시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별도로 한국어를 지원했던 전작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언어 의존도가 매우 큰 추리 게임이라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가 걱정될 수 있겠지만, 다행히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는 꽤나 좋은 편이다.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 그 황금 우상을 기억하는 자는 없다. 물론 황금 우상을 갈망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전작과는 다르게 출시와 동시에 공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한다. 베리 굿!
각 에피소드에 진입해 여기저기 눌러보고 키워드를 수집하며, 차차 상황을 파악하고 화면 하단에 준비된 질문지 빈 칸에 수집한 키워드를 적절히 채워 추리를 완성하는 게임 플레이는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전작에 비해 한층 개선된 편의성이 눈에 띈다. 물음표 마크와 느낌표 마크를 통해 완전히 조사하지 않은 지점과 조사를 끝낸 지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조사를 통해 수집한 키워드는 키워드의 성질과 색깔에 따라 보기 편하게 자동으로 정렬된다. (전작이 그러했듯 수집한 키워드를 플레이어가 임의로 다시 재정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작에 비해 가시성과 시인성이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추리 과정과 그에 따른 스토리 이해도 더욱 쾌적하고 매끄러워졌다. 각 에피소드마다 키워드를 채워야 하는 질문지의 개수도 늘어났을 뿐더러 질문지의 양상도 다양해졌다. 단순히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개략적인 양상을 맞추는 질문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사항을 묻는 질문지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후 한 챕터에 포함된 모든 에피소드를 마친 뒤에는 하나의 챕터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질문지가 제시되면서 또 다른 추리의 여지를 제공하는 한편 스토리의 이해를 돕는다. 이는 전작의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던 추리 중심의 게임 플레이에 편의성을 대폭 보완해 게임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키워드를 수집하면 알아서 예쁘게 키워드가 정렬된다. 사소해 보여도 상당히 편리한 변화다.
각 에피소드의 상황에 최적화된 질문으로 에피소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스토리텔링 및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 역시 좋아졌다. 대체로 각 챕터에 포함된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 및 공간에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는데, 각 에피소드만 따로 놓고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모든 에피소드를 끝마치고 해당 챕터를 정리하는 과정 혹은 이후 챕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전 에피소드에서 제시된 떡밥과 복선이 깔끔하게 회수된다.
다시 말해 앞서 등장한 캐릭터가 이후에 다시 나타나 어째서 이 캐릭터가 존재했는지 그리고 이 캐릭터의 행방에 대해 제대로 서술되는 것이다. 여기에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자 근원과도 같은 황금 우상의 위력과 그로 인한 위험성 역시 충분히 묘사된다. 단편적인 화면의 연속이라 이야기에 빈틈이 아주 없다고 보긴 어려워도 이야기의 큰 흐름은 원활히 이어지는 셈이다.
덕분에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거듭되는 추리 끝에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황금 우상에 얽힌 진상을 파악하게 되고 나아가 모든 챕터와 에피소드의 시간 순서 및 사건의 인과 관계가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각 에피소드에서의 추리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챕터를 끝낸 뒤 드러나는 요약을 통해 그 내막을 보다 소상하게 이해하는 일련의 흐름이 매우 유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그렇게 이야기는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마지막 충돌'에서 절정으로 치닫게 되고 경악할 만한 진실을 드러내며 플레이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렇듯 키워드를 채워 추리를 완성하는 게임 플레이와 추리를 통해 황금 우상을 중심으로 한 여러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는 서로 강한 연계를 보이며 상당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이 캐릭터가 황금 우상에 의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알게 되면 꽤나 놀라게 될 거다.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지으며 이야기를 정리하고 또 다시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는 일련의 흐름이 굉장히 유연하다.
물론 단편적인 화면만을 재료로 삼은 게임 플레이와 내러티브로 인한 숙명적인 한계는 여전하다. 자칫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잘못 해석해 거기에 매몰되다보면 추리가 꼬여 오래 헤맬 여지도 다분하고, 성씨과 이름이 나뉘는 서양식 이름 순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성과 이름을 반대로 기입할 가능성이 있어 이 또한 게임의 난이도를 높이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여기에 각 에피소드를 해결한 뒤 에피소드 선택 화면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오브젝트와 이에 딸린 설명이 동원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화면으로만 서술되는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부적인 설정의 빈틈도 마냥 무시하긴 어렵다. 마냥 문제점이라고 하기보다는 게임의 특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된 추리를 어느 정도 교정해주는 보완의 부재는 못내 아쉽게 다가온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질문지에 채운 키워드가 2개 이하의 오답을 포함하고 있을 때 이를 알려주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본 게임과 그나마 가장 유사한 추리 게임인 <오브라 딘 호의 귀환>(Return of the Obra Dinn)의 경우 조금이나마 복수 정답을 인정해주기도 하고, 세 인물의 추리를 완벽히 맞췄을 때 이를 고정해주는 등의 안전 장치가 존재한다. 본 게임에도 이와 비슷한 안전 장치를 도입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되 항상 의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추리 게임이 까다롭게 느껴지는 이유.
사실상 모든 문장을 창조하는 수준에 가까운 최후반부 추리는 여전히 까다롭다.
복수 정답 같은 안전 장치가 더욱 절실해진다.
다시 깨어난 황금 우상은 전작에서 보여준 바 있던 황금 우상 시리즈의 개성과도 같은 게임 플레이와 내러티브에 향상된 편의성이라는 날개를 달아 한층 진일보한 게임성을 보여준 뛰어난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키워드를 채우며 황금 우상에 얽힌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한 명의 수사관이나 사립 탐정이 된 듯하여 몹시나 흥미롭다.
다만 단편적인 화면을 바탕으로 모든 추리를 해결해야 하는 숙명적인 한계는 여전하다. 추리의 스케일이 급격히 커지는 데다가 사실상 플레이어가 모든 문장을 창조하다시피 해야 하는 최후의 에피소드에서는 이러한 숙명적인 한계가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황금 우상 시리즈의 강점을 굳히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결점을 극복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감은 있다. 어쩌면 전작을 흥미롭게 즐겼던 이들이라면 이번 후속작이 몹시나 반갑게 느껴지면서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에 살짝 실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추리 어드벤처 게임으로써는 독특하면서도 탄탄한 게임성과 충분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선호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번 작을 통해 황금 우상 시리즈에 입문해 전작인 <황금 우상 사건>의 본편과 DLC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추천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