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건설'이라는 글자를 읽었을 때 특정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면 여러분은 <모두의마블>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최근 넷마블은 서울 구로구 G타워에 '넷마블게임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넷마블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게임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졌습니다. 제주도의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이은 두 번째 게임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달 개관한 넷마블의 게임박물관
우리는 게임에서 랜드마크를 짓고 싶어합니다.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심시티 3000>의 한국 출시 버전에는 63빌딩(대한생명빌딩)이 건설 가능한 랜드마크로 존재했습니다. 게임이 출시됐던 1999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63빌딩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심시티 3000>에서 랜드마크는 플레이어의 심미적 만족감을 위해 존재하는 비싼 건축물이었습니다. <심시티 4>에 들어서 랜드마크가 건설되면 그 지구에 상업수요가 늘어났던가요?
랜드마크에 기능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추가했던 것은 <문명> 시리즈의 '불가사의'입니다. 스톤헨지를 지으면 석재 보너스를 받고, 만리장성을 지으면 야만인을 막을 수 있죠. 최근작 <문명 7>의 '에밀레종'은 추가 식량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인삼 협정'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불가사의는 대체로 수십 턴이 소요되는 대작업으로 플레이어는 꽤 큰 리스크를 감내해야 합니다. 다른 문명이 먼저 특정 불가사의를 짓는 탓에 공사가 취소될 수 있고, 시대가 흘러 불가사의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랜드마크 짓기를 좋아합니다. 맵 위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건물의 위용은 언제나 플레이어를 사로잡기 마련입니다. '내가 (수십 턴을 들여) 이걸 지었다!'라는 만족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왜 역사의 지도자들이 랜드마크 건설에 열을 올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요? '사회주의 낙원' 건설 게임 <워커스 앤 리소스: 소비에트 리퍼블릭>은 낫과 망치 조형물로 당을 향한 충성도를 끌어올리고, <트로피코 6>은 첩보원을 보내서 자유의 여신상을 훔쳐옵니다.

<문명 7>의 불가사의 '콜로세움' (출처: 2K)
'랜드마크 건설'은 오늘날 현실의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트로피코 6>처럼 특수부대를 파견해서 오사카성을 서울특별시로 옮길 수는 없겠지만, 건축물 자체가 부동산 위에서 오래도록 생명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언제나 짓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실로 한국에 조형물은 정말 많죠. 인터넷에서는 대게, 인삼 등 각 지역의 특산물을 형상화한 조형물의 '배틀'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게임 랜드마크를 하나 짓고 싶어합니다. 문체부는 지난 6일, 문체부는 문화정책 10개년 계획 '문화한국 2035'를 발표하고,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로 '게임 컴플렉스'를 올렸습니다. 설명을 읽어보면 "게임박물관, 아카이브, 전시·체험 시설 등 게임복합문화공간"으로 "건립을 통해 세계 4위 규모의 게임강국 및 이스포츠 종주국 위상 확립"을 꾀한다고 합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지금으로부터 5년 뒤인 2030년까지 진행합니다.
문체부는 이미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을 통해서 '게임문화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던 적 있습니다. 콘진원은 2020년, 수도권에 5,000평 이상 규모의 게임박물관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최대 523억 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상설, 기획전시 등 전시공간, 게임 DB 수장 공간, 교육 공간, 라이브러리가 포함된 자료 공간, 조사/연구/사무 공간 및 각종 부대시설이 추가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계획 발표와 함께 드러난 용역 연구보고서가 나왔지만, 부실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고 2022년 문체부 계획부터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당시 용역보고서에 제출됐던 박물관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미 한국에 게임박물관은 두 곳 있습니다. 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을 공공영역에서 풀어낼 수 있겠지만, 기업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로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한 차례 부실보고서로 문제가 된 적 있던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간 게임 랜드마크의 사례를 살펴보면, 걱정도 듭니다. 대표적으로 '지역거점 e스포츠 경기장'이 있는데, 부산, 광주, 그리고 대전에 우후죽순 경기장이 세워졌지만 정작 가동률은 40% 내외라고 합니다.
한국에 게임박물관이 세 곳이나 존재하는 게 좋은 일일까요? "세계 4위 규모의 게임강국 및 이스포츠 종주국 위상 확립"을 위해서 세금을 들여 박물관을 지어야 할까요? "이스포츠 종주국 위상"이라면, 이미 서울 마포구에 '이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존재하지 않나요? 건물이 위상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지난 잼버리대회에 문을 연 '새만금메타버스체험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무리한 랜드마크 건설은 플레이어를 곤궁한 상황으로 몰기 마련입니다. 문체부는 새로운 '게임 콤플렉스'를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이 하나로 합쳐진 개념인 '라키비움'으로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체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 세금으로 게임 랜드마크를 지어야겠다면 충실한 학예연구와 함께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