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페르소나 5>에 모바일게임의 시스템을 끼워 넣을 줄이야.
애니메이션 IP나 특정한 게임 IP를 모바일게임으로 만들 때, 팬들 사이에서 으레 따르는 불안감이 있다. 바로 '원작 훼손'에 대한 불안감이다. 모바일게임화가 이루어지면서 원작과 설정이 충돌하거나, BM을 위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뒤바꾸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퍼펙트 월드 게임즈가 원작사 '아틀라스'의 공식 라이선스를 제공받아 개발한 <페르소나 5 팬텀 X>(이하 팬텀 X)도 첫 공개부터 이런 불안과 함께해 왔다. 개발사가 다른 만큼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를 단순히' 흉내내는 것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18일 국내에 정식 출시된 <팬텀 X>는 그 우려를 딛고 호평받고 있다. 출시 후 뒤늦게 <팬텀 X>를 플레이해본 결과 원작의 인기에만 기댄 그런 게임은 아니라 느껴졌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접근하기 좋고, 원작을 이미 충분히 즐긴 사람이라도 흥미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었다.
# 모바일로 즐기는 <페르소나 5>
<팬텀 X>의 원작인 <페르소나 5>의 특징이란 무엇일까. 가장 인지하기 쉬운 부분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그 특유의 UI에 있다. <페르소나 5>는 빨간색과 검은색을 메인 테마로 삼아,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스타일리시하게 구성된 UI를 통해 큰 호평을 받았다.
<팬텀 X>도 이런 틀을 모바일이라는 환경에 맞춰 최대한 가져오려는 모습을 보였다. 가독성을 위해 너무 화려한 연출은 자제했지만, <팬텀 X>의 UI를 보면 누가 보아도 <페르소나 5>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메인 스토리 중간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이나 대화 시 나오는 연출도 원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인트로에서도 마치 싱글플레이 콘솔 게임과 같은 느낌으로 진행된다. <팬텀 X>의 주인공인 '원더'가 페르소나를 각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싱글플레이 콘솔 게임처럼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모를 신규 게이머를 위한 설명도 놓치지 않는다.
시작부터 <페르소나 5>가 생각난다.
대화 UI는 원작과 거의 같다.
핵심적인 시스템도 최대한 원작의 느낌으로 가져와 모바일 환경에 맞춰 최소한의 수정으로 보여주려 한 느낌이 엿보인다.
<페르소나 3>부터 정립된 <페르소나> 시리즈의 특징은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며, 일상과 비일상 파트가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일상 파트에서는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연애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한 삶을 영위한다. 비일상 파트에서는 주인공이 우연히 각성해 낸 능력 '페르소나'를 사용해 '쉐도우'라는 일종의 악에 맞서 싸운다.
<팬텀 X>도 일상과 비일상 파트가 나뉘어 있으며, 일상 파트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플레이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 주인공의 지식, 용기와 같은 패러미터를 상승시키거나, 주변 인물과 시간을 보내고 관계가 깊어짐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팬텀 X>의 일상 파트
아르바이트나 공부, 여러 활동을 하도 패러미터를 올릴 수 있다.
일상 파트의 활동 횟수는 하루 5회씩 충전된다.
다양한 인물과 교류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팬텀 X>는 완연한 콘솔 싱글플레이 게임이 아니기에 '날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있지만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한다. 매일 5회 충전되는 행동력만 있다면 일상 파트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활동을 골라서 할 수 있다. 비일상 파트로의 전환도 원할 때 곧바로 가능하다.
아무래도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던 원작의 날짜 시스템까지 그대로 가져오면 곤란해질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고 곧바로 주인공을 졸업시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비일상 파트를 플레이할 때 원작처럼 계획을 세우고, 방과 후 동료들을 모아야 하는 방식이었다면 아무래도 콘텐츠 플레이에 있어 많은 불편함이 따를 수 있기도 하다.
흐름에 따라 시간이 바뀌긴 하지만, 날짜는 명시되지 않는다.
<페르소나 5>의 스핀오프란 점 때문인지 도시를 돌아다니며 익숙한 인물을 찾아볼 수도.
# 모바일에 맞게 바꿨지만, 원작 감성 살린 전투
비일상 파트와 전투 시스템은 모바일로 제공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 맞게 일부 수정됐지만, 최대한 원작의 감성을 살리려 한 부분이 엿보인다.
원작에서 전투는 4인 파티로 진행되고, 여기에 1명의 보조(네비게이터)가 붙는 방식이었다. 모바일게임이란 점에서 이미 짐작한 사람이 많겠지만, 여기서 동료는 뽑기를 통해 얻어야 한다. <팬텀 X>에서 스토리의 핵심을 맡는 주인공이나 부엉이 '루페르'와 같은 등장 인물은 스토리 흐름에 따라 제공되지만, 나머지 인물은 뽑기로 얻어야 하는 방식이다.
<팬텀 X>의 파티 구성
무기 뽑기 시스템도 있다. 각 캐릭터에 맞는 전용 무기를 게임플레이를 통해 획득하거나, 뽑기로 얻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면 계속해서 신규 동료를 업데이트해 줘야 하는데, 이 동료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스토리 파트에서 너무나 다뤄야 할 인물이 많아진다. 타 <페르소나> 시리즈와 콜라보한 동료를 출연시키면, 어떻게 이들이 주인공의 동료가 되느냐는 당위성을 확립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가 된다.
<팬텀 5 X>는 '괴도 아이돌'이라는 설정으로 이를 비틀었다. 실제 인물이 비일상 파트에서 괴도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인지한 인물의 이미지(인지 존재)를 이번 작품의 조력자인 '메로페'가 구현시켜 비일상 파트에서 주인공을 돕는 식이다.
전투는 원작처럼 턴제 커맨드 배틀이다. 각 스킬에 속성이 있어, 적의 약점 속성을 찔러 자세를 무너트릴 수 있는 시스템도 동일하다. 적을 모두 다운시킬 수 있는 경우에 등장하는 '총공격' 연출도 동일하다.다른 점이라면 약점을 찌르고 발생시키는 '추가 턴'(1 MORE)은 단순히 아군이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는 정도로 단순화됐다.
주인공이 '와일드 페르소나' 능력자로써 다양한 페르소나를 사용해 여러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거의 비슷하게 구현되어 있다. 전투를 통해 페르소나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합체시켜 더욱 강할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도 같다. 전투에서 교체할 수 있는 페르소나는 최대 3개까지로 제한되어 있지만, 덕분에 강력한 뽑기 동료가 있어도 속성 시스템 활용을 위해 주인공을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팬텀 X>의 전투 화면
모바일 환경에 맞춰 몇몇 시스템은 약간 바뀌었다.
# <팬텀 X>의 콘텐츠
원작에서 괴도단은 특정 인물을 개심시키기 위해, 비일상 파트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팰리스'라는 곳을 공략한다. 팰리스란 특정 인물의 마음이 구현해 낸 일종의 커다란 건물 같은 곳이다. <팬텀 X>에서도 팰리스를 탐험하며 악인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발견하고, 각종 퍼즐을 풀며 전진하는 기믹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긴 호흡으로 플레이해야 하는 모바일게임의 특성 덕분인지 크기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첫 팰리스부터 계속해서 주인공의 레벨을 성장시키며 오랜 시간에 거쳐 공략해야 한다. 탐사율 100%을 달성하려면 정말 넓은 맵을 꼼꼼히 돌아다니며 숨겨진 것들을 찾아야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다 보니, 메멘토스의 스케일이 많이 커졌다.
중간중간 강력한 보스가 가로막기도
지속적인 성장의 재미를 느껴야 하는 모바일 RPG의 특성에 맞춰, 육성을 위한 재화나 페르소나를 수급하는 '억압의 공간'과 같은 콘텐츠도 존재한다. 조합을 꾸려 도전해야 하는 고난이도 전투 콘텐츠인 '벨벳 시련'이나 강력한 보스에 도전해 최대한 많은 대미지를 입혀 포인트와 보상을 받는 정기 도전 콘텐츠 '흉몽의 문'과 같은 것들도 있다.
# 차후의 운영은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은 기분 좋은 시작
<팬텀 X>는 원작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한 모바일게임이다. 덕분에 팬층이라면 원작의 스핀오프를 플레이하는 듯한 마음으로, 신규 유저라면 싱글 콘솔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물론, 현재 업데이트된 메인 스토리 콘텐츠를 모두 클리어하고 본격적인 육성에 들어가면 흔히 말하는 '분재형' 게임에 가깝게 바뀌기는 한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일일 퀘스트를 완료하고, 캐릭터 육성을 위한 재료를 조금씩 수급하며 다음 스토리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그런 방식이다. 메인 스토리 번역은 괜찮지만, 서브 퀘스트에서는 종종 지나친 번역체 문장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한 분재형 게임에 도달하기까지 <팬텀 X>가 제공하는 싱글 콘텐츠는 적지 않다. 퀄리티도 원작과 비교해 크게 뒤처지지는 않으며, 원작사 '아틀라스'의 철저한 감수를 통해 만들어졌기에 한 번쯤 충분히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스토리와 연출에서는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원작의 설정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게임의 떡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오픈 기준으로는 <페르소나 5>와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와 스토리가 게임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페르소나 5>의 주인공은 '아마미야 렌'이라는 이름으로 작중에 등장한다. 지금까지 인기를 끈 <페르소나> 시리즈가 다양한 만큼, 추후에는 <페르소나 3>와 <페르소나 4>와 같은 작품과의 콜라보레이션 콘텐츠도 기대해볼 법하다.
<페르소나 5>와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