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결승전 1세트 23분 경, ‘도란’ 최현준의 초시계 활용 실수 (출처 : LCK)
초시계는 출시 당시부터 획기적인 효과로 주목을 받았다. 7.22 패치에서 업데이트된 초시계는 상위 아이템인 존야의 모래시계의 핵심 효과인 ‘2.5초 무적’ 효과를 저레벨 구간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행 아이템이 없다는 점에서 소위 ‘몸니시’를 통한 강제 한타 유도나 ‘어그로 핑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플레이에 리스크를 덜어줘 게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유저에게 사랑받는 아이템이 되었다.
모든 유저에게 호혜적으로 작용하는 아이템인 만큼 병폐도 컸다. ‘초시계 오브 레전드’라는 악평이 발생한 시즌 8의 룬 시스템 밸런싱 패치로 도입된 ‘완벽한 타이밍’ 룬의 사례가 있다. 해당 룬은 선택만 하면 일정 시간 후 250 골드 값어치의 초시계를 공짜로 받을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 룬은 모든 티어의 솔로 랭크 게임, 심지어 LCK 경기에서까지 초시계가 난무할 만큼 게임 메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전히 초시계는 특유의 저렴함과 가성비 높은 효과 덕에 불리한 팀에게는 소위 ‘원 코인’으로, 유리한 팀에게는 안전장치로 초중반을 가리지 않고 활용되고 있다.
- 당시 초시계 메타를 잘 보여주는 동영상. 50초의 싸움에서 초시계가 7번 등장한다 (출처 : 유튜브 '두광인' 채널)
하지만 이런 초시계에도 단점은 있다. 바로 ‘게임 시간을 늘린다’는 점이다. 게임 만족도와는 별개로, 스피디하고 다이내믹한 경기가 리그와 유저 개개인의 플레잉에 구현되길 희망하는 라이엇 게임즈와 유저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게임이 진행되게 만드는 대표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라이엇 게임즈가 협곡 내 챔피언과 아이템의 회복 효과를 직·간접적으로 하향한 전례만 보더라도 이러한 기조는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게임 시간을 유의미하게 늘릴 가능성이 있는 초시계와 상위 아이템인 존야의 모래시계, 그리고 수호천사는 모두 스펙은 올리되, 그만큼의 값어치가 올라 간접적인 하향을 받았다. 자칫 게임이 터질 듯 말 듯 위태한 상황에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던 상황을 최대한 늦게 만들게 해, 궁극적으로 모든 구간에서의 실 플레잉 시간을 줄여보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12.16 패치에서 벌어진 모든 랭크 구간의 평균 게임 시간과 12.17 패치 후, 일주일 간의 평균 게임 시간을 비교해 봤다.
12.17패치 후 일주일 간 약 100만 여 회의 랭크 게임이 진행된 바, 패치 직전 100만 여 회의 랭크 게임과 비교한 결과는 그리 큰 경기 시간의 하락을 보이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패치 전 대비, 약 9초 가량이 줄어든 27:46의 경기 시간을 보였는데, 라이엇의 의도와 달리 그리 큰 영향을 아직까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평균적으로 초시계를 구매한 시간은 12.16 패치 기준으로 23분 05초였던 반면, 12.17 패치에서는 23분 34초로 29초 가량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수호천사 역시 12.16 패치 기준 31분 26초에 평균적으로 등장했지만, 12.17 패치 후 23초 가량 늘어난 31분 49초에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반과 종반에서 모두 등장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은 비용의 측면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결과다.
물론, "겨우 150 골드와 200 골드의 차이가 무슨 차이를 보이겠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12시즌 들어서며 탱커 중심의 탑 메타로 인해 게임 시간이 어느 정도 늘어났고, 안정적으로 버텨줄 수 있는 탱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됨에 따라 ‘최대한 몸집을 불려 싸우자’는 인식이 협곡 랭크 게임과 대회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는 한타 싸움에서 있는 힘껏 몸집을 불린 상태로 싸움이 발생할 때, 작은 골드 수급과 아이템의가 한타 싸움의 지속력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 푼돈처럼 여겨지는 100 골드가 팀 파이트의 지속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엇의 의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수호천사의 경우 실제 평균 경기 시간보다 훨씬 늦은 타이밍에 등장했고, 이는 팀파이트 지속력을 강화시키기보다는 팀파이트 파괴력을 증진시키는 다른 아이템 트리에 투자하게끔 만드는 결과를 낳아 경기 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라이엇 게임즈)
결론만 놓고 보면 영향력은 있으나, 이를 줄일 여지 또한 크다. LCK 기준으로 LCK 10팀의 평균 게임 시간은 32분 58초로 사실상 수호천사가 뽑히는 시간보다 더 늦게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경기 템포 속에 수호천사까지는 무난하게 흘러가는 경기가 더 양산되고 있었으며, 리그 평균보다 빠르게 경기를 끝낸 팀은 젠지(31:00)와 T1(32:11) 두 팀 뿐이었다.
경기 템포가 평균보다 빠른 팀에게 초시계나 수호천사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 필수 아이템은 아니게 된다. LPL 진출 팀인 징동 인텔(30:01), RNG(30:45), EDG(31:07), TES(31:25) 모두 LCK의 평균 게임시간과 LPL의 평균 게임시간(31:26)을 상회하는 결과를 보여, 자칫 이들의 게임 템포에 말리게 될 경우 초시계 계열 아이템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경기 템포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운영이 LCK 팀들에겐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두 팀을 제외한 다른 LCK 진출 팀(담원 기아 - 33:10 / DRX - 34:13)의 경우, 롤드컵에서도 여전히 더 긴 싸움을 지향하거나 전투 지속력이 보장된 싸움을 즐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들에겐 초시계와 수호천사라는 초-종반의 전투 지속력 보장 아이템이 과연 팀의 색채와 메타 전반을 놓고 볼 때, 최선의 선택지인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 반드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타는 돌고 돈다. 지나치게 빠른 게임을 경계한 나머지, 과도하게 높아진 전투 지속력을 줄이는 데에 라이엇은 역점을 맞추고 있다. 롤드컵를 앞둔 지금, 롤드컵에 참가하는 모든 팀에게 라이엇은 초시계 패치로 마지막 질문을 던진 셈이다. “지속 가능한 전투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더 파괴적인 전투를 벌일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아마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리는 최후의 한 팀이 보여주지 않을까?
(출처 : 라이엇 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