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의 한계를 뛰어넘다.
2024년 10월, 게임 플랫폼 GOG는 자사 플랫폼에서 서비스 중인 <폴아웃 런던>이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폴아웃 런던>은 게임 팬들이 모여 수년 동안의 개발 끝에 출시한 <폴아웃 4>의 대형 모드로, 모더가 직접 구현한 런던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담고 있다.
<폴아웃 런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 전 트레일러 공개부터다. 본래 이런 '대형 모드'들은 기대감만 잔뜩 심어 놓고 출시는 수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폴아웃 런던>의 트레일러는 그 마음마저 뒤집을 만큼 좋아 흥미를 느꼈었다.
2024년에는 <폴아웃 런던> 출시를 앞두고 베데스다가 <폴아웃 4>의 차세대 업데이트를 갑작스레 진행해, 모더가 출시를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듣고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2차 창작'이 공식 업데이트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이처럼 불평할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출시 후 수 달이 지난 후에야 문득 생각이 들어 플레이한 <폴아웃 런던>은 모더가 왜 차세대 업데이트로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을 때 그렇게 좌절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훌륭한 모드를 온갖 풍파를 견뎌 내며 완성하는 데 성공했는데, 출시가 코앞인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만큼 <폴아웃 런던>은 뛰어나다.
# 정말 '시리즈 팬'이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모드
과장을 보태서 <폴아웃 런던>은 정사에 넣어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베데스다 게임은 '모딩'의 자유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스카이림>, <폴아웃> 등 오랜 시간 베데스다의 게임을 즐겨 온 게이머라면, 메인 퀘스트 N회차는 기본에 모든 서브 퀘스트를 수십 번 이상 클리어하고, 그 아쉬움에 모더들이 개발한 여러 대형 퀘스트나 지역 추가 모드를 설치해 즐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카이림>은 <다크 소울>을 오마주해 만들어진 <비질런트>라는 모드가 유명하고, <뉴 베가스>에는 현상금 사냥꾼을 콘셉트로 한 <썸가이> 시리즈, <폴아웃 4>에는 <퓨전 시티>로 시작하는 유명 모더의 대형 퀘스트 모드 시리즈가 있다. 그 외에도 상당한 분량의 콘텐츠를 가진 퀘스트 모드는 수많으며, <스카이림>의 초창기 대형 모드인 <팔크라스>는 완성 후 모더가 베데스다의 스카웃을 받기도 했다.
(출처: 넥서스모드)
위에 언급한 모드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모드는 '2차 창작'라는 한계상 아쉬움을 노출하기도 했다. 가장 큰 것은 과다한 설정이다. 아무리 모드라도 가끔은 지나칠 때가 있었다. 으레 2차 창작이란 것은 원작사가 아니기에 공식 설정과의 괴리가 생기거나 '자극적인 소재'에만 집중해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가 기억하는 몇 가지를 말하면 <폴아웃 4>의 빛나는 바다 한복판에 팩션의 보스들이 비밀리에 애용하는 엄청난 규모의 클럽이 있다던지, 프레스턴 가비가 사실 신스라는 내용을 넣어 놓는다던지와 같은 것들이 있다(이유는 모른다). 심지어 한 대형 모드는 동료를 노예로 만들고 데스클로와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넣어(놀랍게도 실화다)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개발자가 잠적한 경우도 있다.
<폴아웃 런던>이 여기서 확실한 차별점을 가진 것은, 원작의 '풍자'라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설정을 쌓아 나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설정들은 지극히 '영국적'이다. 레이더 대신 축구 유니폼을 입은 훌리건이나 '예전의 해군 문화'에 경도된 '잭 타르'라는 단체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한편, 방사능으로 멸망한 세계 속에서도 '차 문화'는 절대 버리질 못하고 꾸역꾸역 만들어 마신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세계에서도 '영국군 근위대'는 여전하며, 전통을 중시해서인지 모두가 베테랑 구울로 이루어져 있다. 전화기 부스를 타고 진입하는 비밀 기지도 있다.
실제 존재했던 술집도 등장한다.
소설 '1984'로 유명한 '텔레스크린'이 게임 내에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의 그 유명한 '대영박물관'에 진입하면 칩입자를 막기 위한 로봇이 궁시렁대면서 계속해서 함정으로 플레이어를 죽이려 시도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놈의 (강탈해 온) 유물에 대한 설명은 빼먹지 않는다.
영국의 의회 문화, 왕실에 대한 충성, 시간마다 울리는 런던 타워의 종소리 등 영국적인 요소도 게임 내 적절히 녹아들어가 있다. 영국을 공격했다가 고립된 프랑스 군인들, 런던탑을 점령한 끔찍한 식인종들, 나아가 처칠의 2차 세계 대전 연설을 본딴 대사도 '적절한 시점'에 등장한다.
런던에서는 잘 안 팔리는 '누카 콜라' 라던지, 핵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던 미국에 비해 기술이 부족해 전쟁을 위한 물자 부족 및 전시 통제를 위해 '아이스크림 트럭'까지 징발하고 '1984' 같은 소설은 금서로 지정해 정보를 통제하는 정부 등 원작의 설정과 결합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등장한다.
"폴아웃 세계관에서 영국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에 <폴아웃 런던>은 정확히 답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를 담아내면서도, '무언가를 풍자'하는 성격이 짙은 <폴아웃>의 세계관과 절묘히 조합해 게임은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국의 하원 의장으로 유명했던 '존 버코'에 대한 묘사다. 모드의 출시 전 존 버코가 직접 게임의 성우로 참여해 적잖이 화제가 됐는데, 단순히 대사 몇 마디 읊고 끝날 줄 알았지만, 게임의 최후반부에 정말 <폴아웃>스럽게 등장한다. 밈으로 유명한 발언인 "정수우우욱!"(Orderrrr)도 뺴놓지 않고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을 순전히 개인의 자발적 참여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드'를 통해 완성했다는 것은 정말로 흥미롭다. 단순히 대형 모드 하나 나왔다고 말하기엔 <폴아웃 런던>이 일구어낸 성취는 꽤 대단하다. 해외 게임 미디어에서 <폴아웃 런던>의 출시를 주목한 이유다.
# 메인 퀘스트는 <폴아웃 4>보다 좋습니다.
스토리는 스포일러를 보지 않고 했다는 점이 올해 가장 만족스러웠을 만큼 즐거웠다. '모드 치고는 좋다' 수준이 아니다. 실제 상용 게임과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실제로 <폴아웃 런던>의 메인 작가는 2021년 베데스다에 고용됐다.
누군가는 "맨날 보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지만,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전과 클라이맥스로 가는 과정의 묘사다. 플롯은 어떻게 만들어도 호불호가 갈리기에, 결말까지의 흐름을 '게임'이라는 특성을 살려 어떻게 보여주냐가 관건인데 이 부분이 잘 만들어진 느낌이다.
게임 후반부에는 세 가지 팩션 중 하나를 정해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각 팩션이 콘셉트에 맞춰 서로 다른 방향의 퀘스트를 흥미롭게 선보인다. 비밀 조직인 '엔젤'은 말 그대로 첩보 영화와 같은 퀘스트가 많고, '아서 왕 이야기'를 따르고 있는 집단 '카멜롯'은 주인공이 직접 원탁의 기사로 임명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파시스트 집단인 제5열도 있는데, 아쉽게도 아직 해보지는 못했다.
서로 다른 팩션을 플레이할 때의 차이도 상당히 흥미롭다. 가령 '카멜롯' 팩션은 나름 정의롭게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고 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애쓴다. 기사도를 추구하는 만큼 정면 돌파를 선택할 때도 있지만, 런던의 복잡한 정치 문제 속에서 순진하게 대응하지만은 않는다.
반대로 엔젤을 선택하면 비밀리에 협박과 암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1회차 때 동고동락했던 카멜롯의 동료가 내 손에 허무하게 암살당할 때는 충격까지 느껴진다. <폴아웃 런던>은 상당히 등장인물에 자비가 없다. 주인공이 선택한 팩션에 따라 다른 팩션의 주요 등장인물이 결국 전쟁에서 패해 처절하게 죽기도 한다. 팩션마다 같은 스토리라도 전개에는 상당히 있어 회차를 돌리는 맛이 있다.
클라이맥스의 연출도 상당히 훌륭하다. 런던 전투로 터져 나오는 마지막 카타르시스를 위한 빌드업도 좋고, 구태의연한 맥거핀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엔딩을 낸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엔딩 후일담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폴아웃 런던>의 서사와 퀘스트는 시리즈의 주제를 정확히 캐치하고 있다. 전쟁, 전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전쟁 이후에도 사람들은 서로 무리를 짓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끝없이 충돌한다. 론칭 트레일러 마지막의 "장소는 달라졌지만, 전쟁, 전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대사는 개발진이 <폴아웃> 시리즈의 '찐팬'이자 원작의 설정을 결코 해치지 않고 모드를 만들어 냈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과장을 보태서, <폴아웃 런던>의 메인 퀘스트는 '자식 찾아 3만리'를 외치는 <폴아웃 4> 본편보다 좋다.
심심하면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는 영국의 날씨 속에서 진행되는 탐험과 흥미로운 서브 퀘스트도 뺴놓을 수 없다. 일설에 따르면 <폴아웃 런던>의 맵은 <폴아웃 4>의 맵 오브젝트를 깔끔하게 밀어 버리고 그 위에 구축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런던의 재현도가 빼어나다. 실제로 기자는 플레이 중 특정한 지역을 못 찾아서 런던 구글맵을 보고 이동했는데, 실제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폴아웃 런던>의 전체 맵
모더가 모여 이 정도 규모의 오픈 월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출처: Joric's Fallout London)
맵 탐험의 재미도 상당하다.
맵 디자인도 '여기는 영국'이라는 모습이 물씬 나타나며, 몇몇 던전은 <폴아웃 4> 본 게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흥미롭게 만들어져 있다. 몇몇 퀘스트는 나름 '보스전'스러운 연출을 보여 주기도 한다.
동료 퀘스트는 모두 해보지 못했지만, <폴아웃> 시리즈에 있어 중요한 만큼 나름 공들여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을 구울로 살아오다가 '페럴화'에 직면한 공무원 '아서 마운트배트'가 기억을 잃기 전 마지막 추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동료 퀘스트는 꽤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많은 퀘스트가 원작의 구성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가령, <폴아웃 4>에는 잠수함을 타고 핵미사일을 발사하러 왔다가 구울이 되어 허송세월을 보낸 중공군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런던에 핵을 발사하러 온 독일군과 잠수함이 나온다.
공략을 보긴 했지만, 참으로 흥미로웠던 '크튤류 인형' 찾기 퀘스트
인형을 다 모은다면...
이 독일군들이 잠수함에 갇힌 이유도 참 웃긴데
문을 걸어잠그고 자신과 '칸트의 철학'에 대한 토론을 끝없이 요구하는 있는 AI에게 고통받고 있다.
# '모드의 낭만'이라는 점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이게 대륙의 운명을 건 세기의 전투임."
<엘더 스크롤> 시리즈를 해 봤다면 유명한 농담이 있다. 한 지역의 운명을 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데, 정작 군대랍시고 서 있는 녀석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대륙의 명운을 건 전투라더니 그냥 촌동네 전투 같다. 콘솔로도 게임을 내야 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사양은 다양하기에 최적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쉬움을 도통 삼켜낼 수가 없다.
반대로, <폴아웃 런던>은 '공식 게임'이 아닌 '모드'라는 점을 활용해 팬이라면 생각해 봤을 법한 낭만 있는 전투를 구현해 냈다. 약간 스포일러를 하자면, 마지막에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지역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투석기로 벽을 부수거나 하수구에 구멍을 뚫어 적 혹은 아군이 진입하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정말 <콜 오브 듀티>의 싱글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끝없이 몰려오는 적과 싸워야 한다. 렉도 심하고, 적이 너무나 많이 나오긴 하지만 어떤가? 이 부분은 모드의 '낭만'으로 충분히 용납할 수 있다.
후반부 연출은 낭만이 치사량이다.
런던에서의 시가전은 마치 <콜 오브 듀티>처럼 이루어진다.
적들도 엄청나게 많고, 아군도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전투 외에도 퀘스트마다 모딩 툴을 쥐어 짜며, 나름의 연출을 보여 주기 위해 모더가 몸을 비튼 부분이 많다. '컷신'같은 연출도 부분부분 시도된다. '대영 박물관' 같은 곳은 여러모로 정말 중요한 장소인 만큼, 상당히 공을 들여 탐험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인상이다.
게임을 하면서 생긴 궁금증도 영리하게 마지막에 풀어놓는다. '런던'하면 가장 떠오르는 지역은 어디일까? 바로 '런던 탑'과 '다우닝 가 10번지'다. 아무리 게임을 해도 이 지역에 입장을 시켜 주지 않기에 궁금했는데, <폴아웃 런던>은 최후반부에서 플레이어를 두 지역으로 유도하면서 스토리의 마무리를 짓는다. 가장 중요한 여왕의 정체도 특정 팩션의 후반부에나 등장한다.
나름 모더들이 공들여 준비한 연출이 등장한다.
극을 끌어가는 주요 인물인 스마이스
처음에는 그냥 흔하디 흔한 악역 같지만, 나중에는...
그 외에도 게임의 여러 단에서 <폴아웃 모드>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엿보인다. 가령 게임 내에 등장한 여러 무기는 <폴아웃 런던> 개발팀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고, 한 고퀄리티 총기 모더의 허가를 받아 게임 내에 집어넣은 것이다. 이처럼 모드라는 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작업물 외에도, 타인의 작업물을 직접 허가받아 모드 내에 녹여낸 것이 많다. 오직 모드였기에 가능한 낭만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접근성
그러나 접근성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폴아웃 런던>이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폴아웃 런던>은 사실상 설치부터 플레이까지 <오블리비언> 혹은 <스카이림> 시절부터 여러 모드를 '개인 구축'하며 오류와 싸워 온 게이머를 위한 종합선물에 가깝다. 설치부터 모드 출시 전 진행된 베데스다의 차세대 업데이트 덕분에 '강제 버전 다운그레이드'를 하면서 시작한다.
모드의 한계 덕분에 게임 내에 산적한 최적화 문제와 기나긴 로딩, 퀘스트 버그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드인 만큼 정말 오브젝트를 대책 없이 쑤셔박았기에 프레임 드랍도 종종 발생한다.
<폴아웃 런던>을 쾌적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Buffout'과 같은 시스템 설정 개선 모드를 깔고 메모장을 수정해 별도의 로딩 시간 개선 기능을 실행해 주거나, 'Enbboost'와 같은 퍼포먼스 모드를 '반드시' 깔아줘야 한다. 그렇다고 엉뚱한 모드를 깔면 오히려 게임의 불안정성이 높아져 1시간 단위로 튕기는 지옥을 맛보게 된다. 설치한다고 끝이 아니다.
오브젝트를 대책 없이 쑤셔 박아서, 프레임 드랍을 막기 어려운 장소들이 있다.
기자도 <폴아웃 런던>의 첫 인상은 굉장히 별로였다. 로딩은 엄청나게 긴데, 게임 내에는 여러 지역을 이동해야 하는 소위 말해 '똥개 훈련'같은 퀘스트가 많았다. 게임 초반부에 많은 비중을 가진 돌연변이들인 '템즈포크'들은 말하는 것이 정말 답답하게 느리기에 불쾌감은 더욱 가중됐다.
퀘스트는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지만,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출을 위해 NPC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데, NPC가 제자리에서 목석처럼 굳어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물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글에 영어로 검색하면 <폴아웃 런던> 레딧에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고, 댓글에 해결법이 항상 적혀 있다. 퀘스트 버그도 이외로 콘솔 명령어 몇 줄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모드 초심자라면 당황스럽거나 짜증을 낼 법 하다. 결국 진입 장벽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구간, 반드시 퀘스트 진행 오류 버그가 생긴다.
반대로 모드 개인 구축에 익숙한 사람에겐 <폴아웃 런던>은 천국이다. 기자도 모드를 통해 로딩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면서 이 게임의 가진 잠재력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폴아웃 런던>은 <폴아웃 4>를 위한 모드와의 호환성이 상당히 높다. 대부분의 <스카이림>가 호환되지 않았던 대형 스탠드얼론 모드 <엔데랄>과는 다르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각종 커스터마이징, 종족 추가 모드도 잘 적용된다. 다만, 스포일러 문제로 상세히 말할 수는 없는데, 종족 모드는 가능하면 설치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특히 게임 내에서 '모자'가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종족 모드는 보통 머리 크기가 달라서 항상 머리카락이 모자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설득으로 넘길 수 있지만 반드시 모자를 쓰고 들어가야 하는 장소도 있다.
개인적으로 <폴아웃 4>는 고퀄리티의 총기 모드가 많아서, 타격감 개선 모드 등을 합쳐 '총 쏘는 재미'로 오랜 기간 플레이하기도 했다. <폴아웃 런던>도 이런 모드가 잘 적용돼 그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게임 마지막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듀얼 데저트 이글 모드'를 설치하고 마치 주윤발처럼 싸웠는데, 코트를 입고 쌍권총을 신나게 쏘다 보니 속이 상당히 시원했다. 모드에 등장하는 무기는 아니지만, 아무렴 어떤가?
쌍권총 낭만은 못 참는다. 모드를 설치하고 배열할 줄 알면 <폴아웃 런던>은 더더욱 재밌다.
애초에 모드 설치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배우면 된다.
# 너무 칭찬만 늘어놨으니, 단점도 조금 말해 보면
너무 칭찬만 늘어놓은 것 같으니, 리뷰를 마치기 전에 추가적인 단점도 조금 언급해 놓겠다.
<폴아웃 런던>은 모드치고 상당히 훌륭하지만, 모드의 한계를 보인 부분도 많다. 최적화를 위해서인지 맵을 거대한 크기로 피자처럼 잘라 놓았는데, 그 사이를 오가는 소위 말해 '뺑뺑이 형식의' 퀘스트가 많아 로딩 화면을 상당히 자주 봐야 한다.
심하면 심부름 퀘스트 하나를 위해 6번의 로딩 화면을 봐야 한다. 퀘스트를 건물을 나가는데 한 번, 그 지역을 나가는데 한 번, 지역을 나가서 다시 빠른 이동을 하는데 한 번. 그리고 목표를 완료하면 다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돌아가야 한다. 기나긴 로딩 문제와 연계하면 정말로 치명적이다.
버려지는 지역도 있다. <폴아웃 4>의 '빛나는 바다'와 역할을 하는 '돔'이라는 장소가 <폴아웃 런던>에 등장하는데, 주어진 서브 퀘스트는 단 하나 뿐이다. 몇몇 공간은 '무언가 있을 법'하게 만들어졌지만, 완성을 못 해서인지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없다. 게임을 하다 보면 모더들이 '힘에 부쳤다'고 느껴지는 장소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대형 모드치고는 시스템적인 변화는 많지 않은 편이다. 퍽(Perk)은 <폴아웃 4>의 것들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뉴 베가스>에만 존재했던 것들이 몇 가지 추가된 정도다. 오픈 월드의 구축과 세계관 묘사에 힘을 준 덕분인지 전투와 같은 부분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스토리나 설정을 풀어내는 것에 대한 문제도 있다. '런던'이라는 배경에 맞춘 여러 새로운 팩션과 설정들이 등장하는데, 게임 내에서 설명을 잘 안 해 주는 편이다. 특정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아 묘사된 것인지, 검색을 좀 해 봐야 이해가 되는 내용이 많다.
퀘스트의 구성에서도 몇몇 아쉬움이 있다. 메인 퀘스트의 초반 부분은 솔직히 말해 동선과 레벨 디자인이 별로라고 느껴지며, 몇몇 서브 퀘스트는 고전 RPG처럼 꼼꼼하게 탐험을 해야 퀘스트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키 아이템'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악랄하게 숨겨 놓은 경우가 많다. 아예 오브젝트로 키 아이템을 가려 숨겨 놓은 경우까지 있다. 이 경우에는 그냥 영어로 공략을 검색하는 것이 속 편하다.
사소한 단점도 있는데, 보통 베데스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NPC를 스치듯이 지나가면 '어깨빵'을 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짜증내는 대사를 말하고는 하는데, <폴아웃 런던>의 NPC들은 모두 입이 걸걸해 말 그대로 주인공에게 욕설을 내뱉는다. 그냥 NPC 앞만 지나가도 온갖 창의적인 욕설이 쏟아지는데 이걸 게임 내내 봐야 한다.
퀘스트 진행을 위한 필수적인 오브젝트를 더러운 곳에 숨겨놓은 경우가 많다.
진짜 미궁을 탐험해야 하는 퀘스트도 있는데... 얌전히 TCL를 콘솔에 입력하길 권한다.
맵이 정말 더럽게 복잡하다.
# 모드기에 넘치는 '낭만', 그것이 <폴아웃 런던>을 해 봐야 할 이유다.
<폴아웃 런던>의 엔딩곡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인의 마음을 달래줬던 'We'll meet again'이다.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사를 들어 보면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참으로 적절한 노래 선정이자, 새로운 회차로 넘어갈 플레이어를 향한 의도된 메시지로 느껴진다.
개발진이 <폴아웃 런던>에서 이뤄낸 성취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실제로 개발진은 해외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폴아웃 런던>의 사후지원을 인디 스튜디오를 세워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게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어찌 되었건, 이들의 노력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일면식도 없는 전 세계의 수많은 모더가 온라인으로 모여, 보상도 없이 순전히 성취욕만으로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 게임 역사에 남길 만할 성취다. 모드니까 가능했고, 끝내 모드의 한계까지 뛰어넘았다. 두 가지 엔딩을 보고 나니 플레이타임은 50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베데스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아직 <폴아웃 런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