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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20] 게임 기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

궁금할 사람은 적겠지만...

방승언(톤톤) 2025-03-14 09:53:32
약 3주 전, 창간 20주년 특집기사 아이디어를 발제하는 자리. 이직을 기념(?)하여 ‘게임 기자란 뭘 하는 사람인가’를 주제로 마지막 기자수첩을 하나 쓰겠노라 얘길 꺼냈다. 반 이상 농담이었던 발제는 그러나 어째서인지 발탁되었고, 기자는 입방정을 후회하며 업무 종료를 하루 앞둔 시점에 나오지 않는 글을 쥐어짜 내고 있다.

(스스로 던져 놓긴 했으나) 이 주제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원천적으로 별로 재미가 없을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세상에 ‘생판 남의 직장 생활’ 같은 실제적이면서도 좀처럼 쓸모는 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인간 유형은 기자뿐이다. 그리고 기자들은 기자이기 때문에 다른 기자의 생리를 궁금해할 리 없는 것이다.

재미있어 할 사람이 거의 없는 소재로 글을 쓰려니 흥이 날 리 없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게임 기자 일을 마무리하기에 제법 어울리는 방법일지 모른다. 독특한 취향을 지닌 소수의 감사한 독자를 위해, 지난 5년을 짧게 반추해 보려 한다. 아래 적힌 내용은 직군 전반을 대변하지 않으며, 오직 기자 개인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음을 미리 일러둔다.

게임 기자를 하다가 운이 좋으면 밸브사의 1층 로비에 밸브가 있다는 사실 같은 걸 알게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이 일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이벤트에 속한다

# ‘게임하면서 돈 벌기’

“기자님은 요즘 무슨 게임 하세요?”

어쩌다 게임 기자와 말을 섞게 된 사람들이 자주 꺼내는 질문이다. 기자는 여기에 몇 년간 꾸준히 “게임 잘 안 해요”라고 응수해 왔다. 어색함을 깨려 질문한 걸 알기에, 어쭙잖은 농담으로 맞장구를 쳐보는 것이지만, 여기엔 진담도 반쯤 섞여 있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어폐가 있는 말이다. 대부분 게임 기자가 업무 시간 중 적어도 10~20%는 게임 플레이에 할애할 것이다. 주로 신작 게임을 리뷰하거나, 인기 게임의 공략을 쓰기 위해서다. 간혹 기사감 발굴을 핑계로 머리를 식히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논란이 일어난 특정 게임(높은 확률로 장수 온라인게임이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가령 신규 업데이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부 유저가 개발자에게 살해 협박을 가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데, 이를 보도하려면 불만의 정확한 원인 정도는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런 조사 없이 기사를 작성하면 살해 협박을 받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기 십상이다.

오직 일로서 <킹덤 컴 딜리버런스>를 56시간 플레이했다. 내내 즐거웠지만 마음이 편하지만도 않았다. 플레이타임이 끝나면, 그때부터 리뷰 작성이 시작된다.

그러니 “게임 잘 안 해요”라는 대답 앞에는 “퇴근하면”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취미로 즐기던 걸 업으로 삼았을 때 원래의 열의가 눈 녹듯 사라지는 현상은 사실 업계를 막론하여 흔하고 게임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직 후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를 플레이할 계획이라고 동료 기자에게 이야기했을 때 대뜸 돌아온 말은 “이제 즐길 수 있겠네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직설 화법으로 “게임하면서 돈 벌어서 좋았겠다” 말한다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게임 개발자 중에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인구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증언이지만, 게임 기자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게임 기자라는 직업을 유지할 만큼 경제적인 보상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게임 기자는 대체로 게임에 대한 생각을 자세하게 공유하려는 불가해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게임플레이뿐만 아니라 게임을 뜯어보고 논평하는 일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앞선 말 역시 기자의 상황에 맞게 더 정확히 부합하게끔 다시 적는다면, “취향에 맞는 일을 해서 좋았다”가 되겠다. 일로서 하는 게임도 나쁘지 않았단 얘기다.

반대로, 게임 소비만 즐길 뿐 평가를 좋아하지 않거나, 소수의 특정 게임만을 고정적으로 오래 즐기는 성향이라면 게임 기자는 별로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다. 실제로 일을 먼저 그만둔 동료 기자 중엔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

최근 디스이즈게임은 메타크리틱의 리뷰 매체 중 하나가 됐다. 기자가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를 왜 좋아했는지 태평양 건너 게이머도 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무엇을 취재하나?

‘게임’이라는 단일 용어가 지나치게 넓은 범주를 아우른다는 사실은 업계인들이 한 번쯤 숙고하게 되는 난점이다. 10년 넘게 캐주얼게임 1종만 즐겨 온 게이머, 매해 나오는 최첨단 게임들을 전부 섭렵하려는 게이머, 친구들과 함께 인기 온라인 게임 두어 개에 시간을 갈아 넣는 게이머에게 ‘게임’은 각자 천양지차로 정의된다.

큰 틀에서 일정한 포맷을 공유하는 음악, 도서, 영화 등 여타 미디어와 사뭇 구분되는 특징이다. 산업의 잠재력인 동시에,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논의를 간혹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적된다. 개발사와 투자자들에겐 시장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다. 게임 기자에게는? 취잿거리를 늘려주는 고맙고 골치 아픈 속성이다.

(매체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으나) 게임 언론의 커버리지는 이런 속성 때문에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 장원영 씨의 지스타 현장 방문을 보도하며 갖은 주접을 떨었던 디스이즈게임 기사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모 동료 기자는 업계에 두어 번 관여했다는 빌미로 평소 좋아하던 유명 마케터, 작곡가 등을 만나 사심(?)을 채우곤 했다.

대여섯 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출처: '더쿠' 커뮤니티 캡쳐)

요즘 들어서는 막말로 게임이 ‘안 끼는 데가 없게’ 되어 더 그렇다. 게이머 인구가 각계각층에 스며들고 산업의 자체적 체급도 커지면서, 이웃 업계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게임이 무게감 있는 아젠다로 부상했다. 기자가 5년 근무 동안 포착한 여러 변화상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다.

요식업계는 툭하면 게임 컬래버를 하고, 게임 음악 콘서트는 이전보다 잦아졌다. 게임쇼 참가자는 해마다 늘고, 게임 원작 드라마와 영화가 히트를 하고, 게임 관련 법안이 더 빈번히 발의되고, 게임 논문과 서적이 더 많이 나오고, 게임 전문 변호사와 게임 전문 국회 보좌관이 등장했다. 더 많은 게임 노조가 결성되고, 게임 주(株)가 세간의 관심사가 됐으며, 테크업계의 신기술들은 자주 게임과 엮인다. 전부 취잿거리다.

게임 기자와 업계 홍보 담당자들만 알아챘을 재미있는 변화도 하나 있다. 최근 들어 비(非) 게임 매체들의 게임 산업 관심도가 부쩍 늘어났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자들의 면면은 원래 ‘거기서 거기’였는데, 종합지와 경제지들이 최근 약속이라도 한 듯 게임 산업을 주요 커버리지에 넣으면서 ‘뉴 페이스’가 확 늘었다. 2024 지스타의 어떤 네트워킹 파티에선 원래 그런 자리에서 볼 수 없었던 매체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기자들을 초청하는 네트워킹 파티가 종종 열린다. 게임/IT 전문지 이외의 매체 비중이 최근 빠르게 늘었다. 사진은 2024 게임스컴에서 크래프톤이 주최했던 파티.


# 게임기자는 어떻게 일하나?

기존 취재 영역들 역시 한층 복잡해진 느낌이다. 출시작은 해마다 늘고, 시장은 자잘하게 나뉜다. 게이머들은 전보다 더 다양한(그리고 많은 경우 게임과 관계없는) 이유로 서로 싸운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트렌드에는 베테랑 업계인들도 혀를 내두른다.

어떤 게임사는 한두 개 타이틀로 급부상하고, 어떤 게임사는 몇 개의 실수로 오랜 명성을 잃는다. 글로벌 시장의 권역별 역학관계는 기자가 일한 짧은 기간만 해도 몇 번이나 뒤집힌 듯하다.

그 가운데서 게임 기자는 업계인과 게이머를 만나고, 게임 안팎의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외신을 뒤적여 단신을 쓰고, 최신 게임을 평가하고, 국내외 온오프라인 게임 이벤트를 방문하고, 기자 간담회에 초청되고, 초청 못 받은 모임에도 고개를 들이밀고, 어떤 현상을 (자기 단에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욕먹고, 술 먹고, 커피 마시고, 야근하고, 글을 썼다 지웠다 한다.

업계의 내밀한 속사정을 추적해 고발하는, 가장 전통적 형태의 취재도 심심치 않게 이뤄진다. 정보망을 가동해 사안에 대해 말해줄 대상(관계자, 전문가, 게이머)을 물색하고, 핵심적 단서를 찾아 숨겨진 인과를 드러내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정황을 요연하게 정리해 내는 능력, 그러니까 ‘취재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역량 부족을 가장 체감해야 했던 영역이다.

가끔 게이밍 하드웨어도 정식 출시 전 만져볼 기회가 생긴다. 밸브가 제공해줬던 스팀덱 OLED도 그런 사례.

독자와 일반 게이머들이 특히 궁금해할 만한 건 게임 기자의 (몇 안 되는) ‘특혜’일 것이다. 그중 분명하게 부러움을 살 만한 게 하나 있다면 최신 게임에 더 빨리 접근할 권한이다. 게임의 플레이테스트에 참여하거나, 정식 출시에 몇 주 앞서서 게임을 플레이해 볼 기회가 실제로 자주 주어진다. 소감을 글로 정돈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큰 특혜로 여겼던 것은 현장의 전문가들을 만나 관점과 통찰을 나누는 일이다. 유수의 개발자들과 이야기하며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여러 가설과 추측을 확인받거나, 반대로 한 번도 생각 못 해본 발상과 견해를 제공받는 일은 커리어를 넘어 인생에 길이 남을 경험이다.

게임 기자 만의 고유한 고충들도 더러 있지만 요즘 세상에 ‘알 바’ 아님을 알기에 다루지 않는다. 반대로 게임 기자들의 여러 악덕과 그 원인은 훨씬 더 흥미로운 주제가 되겠으나, 얘길 꺼냈다가는 부지불식간 통하지도 않을 변명을 덧붙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이 역시 생략한다.

뛰어난 창작자를 직접 만나 창작물을 대하는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최대 행운이었다. 사진은 <프로스트펑크> 시리즈의 (왼쪽) 루카시 유슈치크 디렉터, 야쿱 스토칼스키 디렉터.


# 감사를 전합니다

매일 벌어 매일 살아야 하는 보통의 어른에게 ‘덕업일치’란 얼마나 알맞은 크기의 축복인가.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취향이 있다’는 말은, 취향이 개인을 오롯이 담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취향에 맞는 직업을 갖는다는 건, 하루 24시간 내가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된다. 흔한 행운은 아니다. 필자에게 게임 기자는 그런 일이었다.

짧고도 긴 시간 환대와 가르침을 베풀어 준 업계의 모든 분, 그리고 많이 모자란 필자를 품고 키워 준 디스이즈게임에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뜻이 맞는 소중한 인연도 만들 수 있었다. 게임 기자는 그만두지만, 업계에는 남아있을 예정이다. 5년 세월을 뒤로하려니 별수 없이 아쉬우나,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업계 동료로서, 그리고 게이머로서, 디스이즈게임의 앞날을 응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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