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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리뷰] 써클 엠파이어, RTS에도 샘플러가 있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어렵지 않은 전략 게임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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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0-10-29 09:45:32

에스토니아 소재 인디 개발사 루미너스(LUMINOUS)가 만든 <써클 엠파이어>는 굉장히 쉬운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플래시게임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사운드와 그래픽에서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흠결이 보이지는 않는다. 요컨대 'RTS 샘플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게임의 정가는 8,500원. 합리적인 가격에 어렵지 않은 전략 게임이다.

 


 


 

# EAAAAAAAAAAAASY RTS

 

<써클 엠파이어>는 컨트롤과 생산의 피로를 최소화한 채 즉각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교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영지 개념의 '써클'이 랜덤하게 배치되는데 이 영지를 많이 획득하는 것을 목표다. <써클 엠파이어>에는 몬스터 사냥, 밀리(Melee)에 해당하는 완전 정복, AI 대전 제국간의 갈등 3가지 모드가 있는데, 플레이 로직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모두 마찬가지로 땅을 많이 먹고, 병사를 많이 뽑아서 이기면 된다.

 

땅따먹기의 전형인 <써클 엠파이어>
3가지 모드가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5개의 난이도가 있는 AI 대전. 다른 두 모드에는 '불가능' 난이도가 추가된다.

최소 4개에서 최대 49개의 써클을 지배하고 자원을 생산하면서 적을 무너뜨리면 된다. AI를 많이 이길 수록 관리해야 할 영지가 늘어나고, 그만큼 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서 어느 시점에 어떻게 써클을 밀어버릴지가 중요한 게임이다. AI의 난이도는 높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세력으로 설정돼도 플레이어를 우선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타이밍 계산이 두드러진다.

 

이 게임이 재미있는 점은 생산에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꾼도 자동으로 자원을 채취하며, 건물도 바로, 유닛도 바로 나온다. 그런 점을 응용해 내 써클을 거의 비워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적들이 들어오면 비축했던 자원들로 빠르게 화염 탑을 세워서 한 번에 적들을 녹여버리는 등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써클 엠파이어>는 생산 시간에 대한 피로를 없애고 전투의 재미만 남겼다. 

 

테크트리에 해당하는 '새로운 레시피'도 알아서 개발하기 때문에 관리/성장 영역은 거의 자동으로 대체시켰다고 보면 된다. 플레이어는 큰 틀의 명령만 내리면 된다. 익숙하거나 애착이 드는 세계관도 아니다보니 이런 적절한 오토 요소는 편하게 다가왔다. (모바일게임을 즐기는 작성자가 오토에 절여진 사람일 수도 있다)

 

물량만 괜찮으면 알아서 잘 싸운다.

 

적룡의 퍼포먼스는 막강하다.

게임의 전략은 주로 상성 차원에서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써클 엠파이어>에는 각기 다른 특성이 지닌 18개의 지도자와 150여 종의 유닛이 있다. 지도자 별 성격은 게임 초반부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데, 자원 수급에 용이한 캐릭터, 골드 생산에 특화된 캐릭터, 써클을 점령할 때마다 감시탑을 얻는 캐릭터 등 저마다 개성이 다르다.

 

개구리 종족은 물 위에서 강한 기동력을 갖추고 있고, 언데드 유닛들은 생존 능력이 높고, 마법사 유닛은 각종 광역 스킬을 가졌다는 식으로 종족 별 특성이 나눠진다. 써클을 점령함에 따라 기본으로 세팅된 종족 유닛 이외의 유닛도 뽑을 수 있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선택지가 많아진다. 특히 '적룡'과 같은 특수 유닛은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대신 플레이 후반에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써클 엠파이어>의 써클은 이어져있지만, 보급로의 개념은 없기 때문에 골드, 목재, 식량 등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다. 조금 가치가 없는 써클을 내주더라도 골드가 많이 있는 써클을 관리하기 위해 병력을 돌리거나, 안정적인 종족 메타 운영을 위해 물 위에 있는 써클의 점령은 미루는 식으로 전황을 관리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새로운 써클을 점령할 때마다 '전장의 안개'가 밝아진다. 반대로 써클을 잃으면 안개가 적용되기도 한다.

 

지형, 세력, 적의 규모를 모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영지 관리의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작은 맵을 하는 것을 추천.

 

# <써클 엠파이어>를 어렵게(?) 만드는 것들

 

<써클 엠파이어>는 어렵지 않은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한 판에 20분 안팎으로 승부가 지어진다. AI와의 대전에서는 어느 정도 정석이 고정되어 반복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초반에는 적은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어느 정도 생존력을 갖춘 '가성비' 유닛으로 버티다가 투석기 등 공성 장비를 갖추고, 기마 유닛을 뽑아 기동성을 확보한 뒤, 특수 유닛을 섞어 빠른 속도로 적을 제거해나가면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다양한 메타를 조합하고 적용해보는 건 개별 플레이어의 몫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특수유닛을 적절히 조합하면 적절하게 잘 이길 수 있다

 

<써클 엠파이어>가 컨트롤 게임은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많은 서클을 먹어가면서 후방의 일꾼들이 놀지 않게 관리해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관리해야 할 영토가 늘어날 수록 할 일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특정 전선에 지나치게 공을 쏟다가는 후방의 일꾼들이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수 있다. RTS에서 치명적인 낭비다.

 

플레이어는 일꾼들이 놀게 하지 않기 위해 나무와 식량을 교환하는 '호박'을 소환해 일을 시키거나 다른 써클에서 자원을 수집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축키 설정이 섬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줌인과 줌아웃을 하며 써클을 둘러보고 생산을 연타하기 쉽지 않았다. 노는 일꾼이 많아지면 그 일꾼을 병사로 전직시키거나, 제거해서 자원으로 돌려받는 기능을 넣었으면 좋았겠다.

 

단축키는 이게 전부

특이하게도 <써클 엠파이어>의 드루이드 종족은 시작할 때 초반에​ 뽑을 수 있는 유닛이 일꾼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일꾼러쉬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반부까지 준수하게 쓸 수 있는 공격력의 일꾼도 있어 보병처럼 쓸 수 있었지만, 이런 종족은 처음이라 밸런스 차원에서 아쉬움이 들었다. 

 

일꾼유닛을 사실상 강제하는 종족을 집어넣었다니 흥미로운 시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꾼을 공격 자원으로 쓸 때 컨트롤이 쉽지 않아서 (AI가 뽑자마자 자원을 채취하는 것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초반에 뽑을 수 있는 게 전부 일꾼 유닛인 드루이드 계열

 
# 멀티가 되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게임


<써클 엠파이어>는 '샘플러'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결국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 자웅을 겨뤄야 진짜 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컨트롤 요소도 적고, 지휘자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테란-저그-프로토스처럼 종족 특성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있지도 않기 때문에 AI와의 싸움은 금방 물린다. 

 

아쉽게도 기자가 게임을 체험한 스토브 빌드에 멀티 게임은 빠져있었다. 원거리 유닛의 사정거리가 서클을 넘어가기 때문에, 게임을 멀티로 즐긴다면 원거리 사격의 정교함이 조금 더 올라가야 할 것이다. 컨트롤 요소가 '컴까기'보다는 분명 많다는 것. <써클 엠파이어>의 멀티플레이가 담긴 '라이벌즈'는 아직 스토브에 포함되지 않았다.

 

게임의 정가는 만 원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써클 엠파이어>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뽀짝뽀짝 움직이는 '플래시 감성'을 맛보기에는 좋았다. (웹에서 플래시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게임은 RTS보다는 유즈맵이 생각날 정도로 직관적이면서도 "이건 왜 없지" 싶은 것들이 없다. 진행할수록 새로운 종족과 유닛을 체험해볼 수 있다. 특히호박이나 개구리를 플레이어블한 종족으로 추가한 재치는 분명 유쾌했다.

 

그래도 캐릭터는 귀엽다.

 

그렇지만 기자는 <써클 엠파이어>만의 도드러지는 한 방은 찾지 못했다.​ (스토브 버전) 게임에는 멀티도 없지만 캠페인도 없다. 다짜고짜 짧은 오프닝 영상을 보여주고 플레이어를 '써클'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조작은 쉬울 지라도 초반부는 다소 불친절했다.

 

RTS의 엔드 콘텐츠는 "배틀넷 헌터 초보만"이라고 할지라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RTS의 스토리를 진지하게 감상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스타크래프트 2>를 안 해봤어도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스토리만 봤다는 사람도 있다지 않은가? 그런데 <써클 엠파이어>의 스토리는 도저히 짚이지 않는다.

 

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대가로 '금고'에 보물이 쌓이는데, 왜 이걸 모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건 뭐지? 자기 만족? 금고에서 모은 보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게임을 하면서 금고의 존재 이유를 밝힐 순 없었다.

 

또 <써클 엠파이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몇 시간 머물기 좋은 '샘플러'인데, 정작 게임에 튜토리얼이 없다는 것이다.

 

캐주얼한 게임을 지향하기에 굳이 장황한 설명을 할 필요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도 한 판 정도는 게임 안에서 게임의 성격을 설명하는 브리핑 개념으로 집어넣었어야 했다. 서사적으로든 시스템적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간의 RTS는 플레이어를 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장치를 사용해왔는데, ​<써클 엠파이어>는 불친절하게 "자, 이거야, 해" 떠미는 듯하다.

 

RTS를 깊이 있게 즐기는 사람이라면 몇 번 게임을 해보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기 쉽지만, 쉽다는 평가를 보고 덜컥 게임을 구매한 RTS 생초보는 해봤더니 가이드라인 하나 없이 맞으면서 배워야 할 지도 모른다. 평소에 RTS 좀 해봤다라는 게이머라면, 토끼공주가 되어 흥미를 잃게 될 테다.

 

스토리도, 튜토리얼도 없는 RTS를 마냥 '캐주얼'하다고 두둔하기는 어렵다.​ 스토브 빌드에 멀티가 포함되고, 스팀 유저와 크로스플레이를 지원한다면 그때 다시 제대로 된 평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래서 바란두르가 누구냐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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