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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리뷰] 치유는 아픔 뒤에 온다, 피의 길을 청산한 레서판다 '아카'

탐험, 농사 그리고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 모든 것은 과거에서 출발한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2-12-15 17:59:30

추운 겨울 사람들은 따뜻한 유자차나 코코아를 찾습니다. 머그컵, 종이컵 어디에 담겨있든 손바닥부터 전해지는 온기가 얼어있던 시간을 잠시 녹여주는 건 동일하죠. 오늘 소개해드릴 <아카>(AKA)는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줄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게임입니다.

 

<아카>를 제작한 곳은 캐나다에 위치한 1인 개발사 코스모 가토(Cosmo Gatto)입니다.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리드 애니메이터 출신 개발자가 그린 귀여운 캐릭터들은 시선을 사로잡죠.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나오는 수채화로 그린 손그림도 동화적인 색채와 따뜻한 감성을 잘 살려줍니다. 2020년 깃헙 게임 잼(GitHub Game Jam 2020) 우승작인 <어 트립 투 더 문>에 이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수많은 동물 친구들을 만나며 섬을 가꾸는 귀여운 레서판다의 감동적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힐링에도 이유가 있다

 

스팀 페이지에 소개된 '귀여운', '릴랙싱'이라는 태그처럼 <아카>의 첫인상은 귀여운 힐링 게임이었습니다. 레서판다는 현실 속에서나 게임 속에서나 언제나 귀엽죠. 하지만 게임은 첫 장면부터 바닥에 꽂힌 무기 너머로 주인공 '아카'를 비추며 "전쟁은 이제 안녕"이라는 자막을 띄웁니다. 잔잔한 힐링 게임이지만, 주인공이 풀어나갈 이야기는 그리 가볍지 않을 것임을 예고합니다.

 

아카는 '소나무 섬'에 도착해 친구 톰을 만납니다. 톰은 이 섬에 정착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라는 말을 해줍니다. 주인공 아카는 퇴역 군인입니다. 전쟁에서 동료를 잃었고 기억도 잃었죠. 풀을 벨 때 말고는 더 이상 검을 잡지 않겠다는 아카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흉터가 보입니다. 아카가 머물 집의 원래 주인도 전쟁 때문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근과 양파를 키우고 꽃을 심으며 아카는 자신을 돌아보고 심신을 회복합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유유자적 가만히 있는 게 힐링이 아니라는 것을 <아카>는 보여줍니다. 상처와 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에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게임이 진행될수록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일하면서 멍 때리는 일명 '일멍'을 잘 보여주고 있죠.

 

주인공은 퇴역 군인 레서판다 아카입니다.

친구 톰은 소나무 섬에 주인공이 정착할 수 있게 돕습니다.

 

 

# 첫 번째 목표, 다른 섬에 가야 한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아카는 이제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는 가까이 가면 표시가 뜨는 오브젝트를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어지는 첫 번째 퀘스트는 친구 '나야'의 유골을 카낙 산 정상에 올라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퀘스트는 아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장치인 동시에,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오픈월드 안에서 커다란 목표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은 이제 카낙 산을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합니다.

 

다른 퀘스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나무를 베거나, 섬 곳곳에 있는 덫을 없애 달라는 퀘스트는 괄호 열고 소나무 섬이라고 표시되면서, 다른 섬의 존재를 암시하죠. 난파된 배를 고치고 새로운 섬으로 떠나는 퀘스트는 소나무 섬에서 하는 작업 중 가장 오래 걸리는 일인 동시에, '나야'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이렇듯 목적 없는 반복 퀘스트가 아닌 이야기에 녹아든 과제로 동기 부여를 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모험에서 만나는 동물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자기 세계로 이끕니다. 

 

주인공에겐 이제 모험을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다른 섬, 새로운 지역의 존재를 계속 암시합니다.

 

 

# 모험은 언제나 의외의 순간에

 

이야기를 따라가며 섬을 가꾸고,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쇠'가 부족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섬에 있던 덫을 회수해 용광로에 녹여 만드는 '쇠 막대'로는 부족한 양이었죠. 섬 곳곳을 다시 탐험하다 보면 나무와 절벽 뒤로 들어가거나, 헤엄쳐 들어가야 나오는 숨겨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어렵게 찾은 공간답게 그 안에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나, 만나지 못한 동물 친구가 있기도 하죠.


힐링 게임답게 섬의 풍경도 높은 만족감을 주는데, 이걸 플레이어에게 보여주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게임 내내 주인공이 가운데에 위치한 탑뷰 시점을 유지하다가 등대에 들어가면 시야가 바다 쪽으로 이동합니다. 해안에 누워있는 '몽상가'에게 말을 걸면 밤에는 빛나는 별을, 낮에는 뭉게구름을 보여줍니다. 

 

감옥에 갇힌 '렌노'라는 캐릭터도 밤에만 만날 수 있고, 열쇠를 찾아서 렌노를 풀어줄 때도 밤에 찾아가야 합니다. 찢어진 우산 아래에 있는 꼬마 고양이 '아리'를 처음 만나는 것도 비 오는 날씨일 때죠. 이미 탐험했던 장소인데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로운 이벤트가 계속 발생합니다. 섬 크기를 크게 설정하지 않아 이동에 대한 피로도는 줄였고, 시간과 날씨라는 변수를 넣어 다채로운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등대 안에 있는 주인공의 실루엣이 보이시나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밤에만 만날 수 있는 렌노. 스토리도 생김새도 가오나시가 떠오릅니다.

 

# 개성 있는 캐릭터와 다양한 즐길 거리

 

소나무 섬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거대한 용 '구드룬'입니다. 구드룬을 만나는 공간 바로 옆에는 새끼용들이 있는 방이 있는데, 배고픈 새끼용들에게 먹이를 주는 퀘스트를 줍니다. 용은 주로 뭘 먹느냐는 질문에 "작은 레서판다 한 마리면 맛있게 먹을 거예요"라는 섬뜩한 농담을 건네기도 하죠. 이 게임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이 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만 따라가기엔 문제가 없지만, 캐릭터의 말투가 존댓말과 반말 하나로 통일되어있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만나는 '레온'의 시와 해변에서 줍는 병 속의 편지 등 긴 텍스트는 영어로 표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특정 텍스트를 제외하면 큰 문제 없이 읽혔지만, 캐릭터 성격을 더 잘 살린 번역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카>에는 탐험, 농사 외에 미니게임도 많이 등장합니다. 파도에 맞춰 북을 치는 리듬게임, 바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간단한 룰의 카드게임 등이 있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지만, 카드게임을 할 때는 마우스 커서가 밖으로 밀려나 조작에 불편을 겪기도 했습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특정 캐릭터와 상호 작용하면 카드를 주는 등 미니게임을 일회성 요소로 남겨두지 않은 만큼, 차후에 마우스 조작 관련 업데이트가 있길 기대합니다.

 

거대한 용 구드룬 외에도 등에 올라탈 수 있는 바다거북, 커다란 여왕벌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합니다.

여러 미니게임들 중에서 카드게임은 조작감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게임성을 보여줬습니다.

 

 

# 4개의 섬 그리고 농사

 

소나무 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주인공 아카의 배를 고치는 순간부터 새롭게 추가되는 야자수 섬, 대나무 섬, 단풍 섬을 포함해 총 4개의 섬을 넘나드는 모험으로 확장됩니다. 게임의 볼륨이 작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죠. 새로운 섬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면 풍경과 배경 음악 모두 소나무 섬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섬에서도 덫 제거, 고목 베기 퀘스트 등은 다시 주어지지만 소나무 섬에 비해 그 수가 적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습니다. 오히려 덫과 고목 등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섬을 더 꼼꼼히 보게 되죠. 나무늘보와 거대 바다거북, 펭귄 등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맞이한다는 점도 모험의 두근거림을 키워줍니다. 

 

다만, 농사 콘텐츠는 피로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양배추 등 일부 작물은 심은 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수확할 수 있어서, 빠른 진행을 위해 잠을 계속 자 게임 속 하루를 빠르게 넘긴 적도 있었죠. 힐링 게임도 전투적으로 하는 유저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사 콘텐츠 중 일부 요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보입니다. 후반부로 진입해 여러 섬을 탐험하기 시작하면 스토리 진행이 빨라지면서 작물 수확 시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줄어든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배를 고치는 순간부터 다른 섬으로도 모험을 떠날 수 있습니다.

농작물이 중구난방 심어진 이유는 괭이로 땅을 고르고 나서도 아무 것도 심어지지 않은 부분은 다시 잔디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 산 자와 죽은 자...동물들이 보여주는 인간성

 

친구 '나야'의 유골을 카낙 산 정상에서 뿌려 달라는 첫 퀘스트부터 눈치채셨겠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일부는 이미 죽은 유령이거나, 생환했지만 아픔을 간직한 존재입니다. 전쟁은 상처만 남길 뿐이라는 조언을 하거나, 전장에서 자신을 구해주지 못한 아카를 책망하는 캐릭터도 있죠. 아카는 기억의 파편만 가지고 있기에, 다른 이들의 입을 빌려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아카>에서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동물들에게도 종종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이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카를 포함해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서사는 '인간성'을 떠올리게 만드니까요.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행동이 구현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공 아카는 배고프고 졸리다는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계속 다른 친구들을 도울 뿐이죠. 긴 여정 끝에 '나야'의 유골을 뿌리는 퀘스트를 마쳐도 커다란 감동으로 이야기의 매듭은 확실히 지어주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아카는 이제 과거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사람이라는 단어를 섞어 쓰는데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요소가 되어줍니다.

자신을 구해주지 못한 아카를 책망하는 미사오. 아카는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알아가면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 레서판다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여러 장단점을 나열했지만, 전체적인 플레이 경험은 감동과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타듀 밸리>, <동물의 숲>처럼 느긋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힐링 요소도 좋았지만, 주인공 아카의 과거를 따라가는 스토리가 가진 흡인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깔끔하고 귀여운 디자인과 산뜻한 BGM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죠. 

 

네오위즈는 지난 4월​ 개발 단계였던 <아카>의 매력을 알아보고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2월 15일부터 스팀과 스위치에서 <아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아카>의 출시 가격은 스팀/ 스위치 모두 13,500원이며, 출시 후 2주간은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될 예정입니다.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을 기준으로 6~7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이 소요되며, 그 이후에도 아카와 함께 섬을 가꾸며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에 지치셨다면 귀여운 레서판다 한 마리 들여가시죠. 

 

만나는 동물마다 생각할 거리를 계속 던져줍니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힐링 게임으로 승화시킨 <아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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