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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퍼스트룩] 명석한 두뇌도 초능력일까? 스토리에 빠져드는 국산 추리 게임

김승준(음주도치) 2023-05-22 09:39:03
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8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추리소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사건의 실마리가 한데 모여 하나의 결론을 지목하는 그 순간의 쾌감을 잘 알 것이다. 게이머들에게는 <역전재판>을 비롯한 여러 게임들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반면, 추리물과 수사물은 어지간한 트릭이나 스토리로는 도무지 흥미가 생겨나지 않는 일명 불감증에 빠지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특히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많이 하다 보면 대사의 운을 띄우는 방식만 봐도 어떤 캐릭터와 클리셰가 나올지 뻔히 예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음이 동하는 게임을 찾으면 반가운 마음이 더 크기도 하지만 말이다.

국산 인디 개발사인 팀 테트라포드에서 만든 <스테퍼 케이스>가 바로 그런 '끌림'이 있는 게임이었다. 3월 10일 스팀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스테퍼 케이스>는 204개의 스팀 평가 중 97%가 긍정 평가인 '매우 긍정적' 게임으로 출시 초기부터 좋은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국산 추리 게임 <스테퍼 케이스>는 얼리 액세스 출시 단계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 초능력 수사팀 마나사건 전담반

  

<스테퍼 케이스>의 이야기는 '스테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능력자들이 있는 세계에서 펼쳐진다. 특히 런던은 가장 많은 스테퍼가 있는 도시로, 인구의 10%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노트릭 케이스는 '관리국'의 '마나사건 전담반' 초능력 수사팀에 신입 수사관으로 스카웃되어 들어간다.

수사팀의 구성원들은 모두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노트릭은 스테퍼가 아니다. 다만, 비상한 추리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팀원들은 초능력도 없는 노트릭을 신입으로 데려온 과장의 선택을 의심하며, 노트릭을 테스트하기 위해 사건의 추리를 시켜본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첫 번째 사건의 이야기로 발을 들이게 된다.

주인공 노트릭은 마나사건 전담반에 신입 수사관으로 오게 됐다.

주인공에겐 초능력이 없다. 팀원들은 주인공에게 사건의 추리를 맡겨 테스트해보려 한다.

팀원들의 능력은 꽤나 흥미롭다. 유쾌한 성격의 테나는 진술을 하는 상대방의 심박을 감지하는 '이상박동'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침착한 성격의 브리안은 지문이나 발자국과 같은 범행 현장의 흔적을 시간 단위로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마나사건 전담반의 반장 레드핀즈는 사물의 기억을 읽어내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들의 초능력에도 제약은 있다. 거짓 진술을 찾아낼 때 큰 도움이 되는 테나의 능력은 상대가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큰 동요를 느끼는 진술에서도 이상박동을 감지해 혼선을 주기도 한다. 브리안과 레드핀즈의 능력도 일정 시간 이상 지난 과거에 대해서는 알아내기 어렵다는 제한이 있다. 특히 레드핀즈의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에 남겨진 청각, 후각, 촉각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범인의 얼굴을 곧바로 특정해낼 순 없다.

마나사건 전담반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이 맡는 범죄의 용의자들은 모두 초능력을 사용한다. 그래서 용의자가 어떤 초능력과 제약을 가지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하고,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추리물 이상의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마나사건은 초능력을 활용한 범죄를 지칭한다. 그래서 수사관들도 초능력자들로 구성된 것. 용의자들도 모두 스테퍼다.

스테퍼의 초능력(스킬)에는 제약이 있다. 추리에 단서로 활용되기도 하고, 일반적인 추리 이상의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리,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진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 노트릭은 초능력이 없지만, 대신 사건의 전말을 밝혀낼 수 있는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노트릭의 시점에서 파편화된 정보들을 하나씩 수집하며 증거를 대조하게 된다. 

 

스테퍼들의 초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쪽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한 '관리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용의자들의 신상을 포함해, 테나의 능력으로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는 용의자들의 진술도 증거로 채택되며, 브리안과 레드핀즈가 현장에서 수집한 현장 증거도 모두 사용된다. 플레이어는 의심이 가는 증거와 그 추리를 뒷받침하는 증거 두 가지를 매칭해 추리를 성공시키면 된다.

 

테나의 능력으로 진술의 진위 여부를
브리안의 능력으로 현장의 흔적을 찾아낸다.

레드핀즈와 함께 사건 현장 사물을 지정해 기억을 따라가고
그 정보들을 매칭해 추리를 한다.

 

<스테퍼 케이스>의 추리 과정은 꽤 세밀한 편이다. 한눈에 쉽게 보이는 부분부터 차곡차곡 쌓아서, 수사의 시작 단계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수집하는 정보의 양도 많고, 플레이어가 직접 정보를 매칭하는 단계도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따라왔다면,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고 힌트 또한 제한 없이 제공되기 때문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챕터 말미에 가면 증거를 두 개씩 연결하던 기존 추리에서 더 발전한 '헥사 로직'이 등장한다. 여섯 개의 증거를 한 번에 대조해 이야기의 전체 줄기를 잡아내는 방식이다. 앞에서 쌓아왔던 추리가 쌓여서 하나의 묶음이 되는 순간 커다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6개의 정보를 하나로 엮어내는 헥사 로직.(*사진에 1챕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서커스 단장이 사망한 사건을 수사하는 첫 번째 챕터에서는 세 명의 서커스 단원들을 조사하게 된다. 2미터 이내에 있는 물건을 염동력으로 조종할 수 있는 겔러, 불꽃으로 사물을 태울 수 있는 버논, 정제수만 있으면 접촉한 대상을 얼릴 수 있는 에스턴이 세 명의 용의자로 등장한다. 단장의 사망 시각으로 추정되는 시간엔 현장에 발자국이 없었으며, 흉기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테퍼 케이스>는 추리와 스토리 양쪽에서 모두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는데, 용의자들이 보여주는 입체적인 성격과 태도가 한몫을 하고 있다. 거기에 중간중간 섞여 있는 거짓 진술과 추리과정에서 겪는 일종의 오해와 '헛다리'도 끊임없는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향해갈까? 

  

거짓말이 아닌 진술에도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사건의 흐름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시종일관 모든 정보를 의심만 하고 있었다면, 게임의 플레이 경험은 피곤함만 누적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테퍼 케이스>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유쾌한 말장난을 가지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소를 터트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테나는 신입인 주인공보다 선배지만 용의자의 진술을 받아내는 데만 능통한 실수투성이 캐릭터로 나오는데,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매우 유쾌한 성격이라서 대사가 나올 때마다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첫 번째 챕터에서 나오는 용의자 버논과 에스턴도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단장은 서커스 단원이라면 자신의 초능력에 맞게 콘셉트를 항상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래서 발화 능력을 가진 버논은 <유희왕> 속 캐릭터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채 말끝마다 '파이어'를 붙이는 연기를 하도록, 빙결 능력을 가진 에스턴은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든 채로 도도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연기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유치해서 웃긴 장면이지만, 피해자와의 원한 관계로 이어지는 스몰토크로 활용되기도 한다.

테나는 발화 능력을 가진 버논의 머리 스타일만 보고 말 끝마다 "파이어! 정열!" 같은 걸 붙이게 생겼다고 주장한다.

사건 추리는 잘 못하던 테나가 사건 사망 피해자인 단장이 버논에게 강요했던 "파이어!" 대사 연출은 맞춰버렸다.

쿨하고 도도한 '척'을 하고 있는 건 빙결 능력을 가진 에스턴도 마찬가지다. 다들 연기를 하니 의심이 더 증폭된다.

주인공 노트릭은 커피를 , 팀장 레드핀즈는 홍차를 좋아해서 서로 시니컬한 말투로 비꼬며 옥신각신하는 장면 또한 단순한 말장난의 재미도 있지만, 이후 사건 현장의 바닥에 쏟아진 홍차의 트릭을 해결하는 힌트로 사용되기도 한다. 재미와 추리 양쪽을 모두 놓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레드핀즈와 노트릭이 사건 외적으로 나누는 대화는 초능력 수사팀이라는 다소 허무맹랑할 수 있는 주제에 꽤 묵직한 의미를 부여한다.

노트릭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막연한 이미지만을 상상하고 영국으로 넘어왔지만, 현장에서 오늘 마주한 건 피해자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진짜 사람이었단 걸. 죽인 것도 진짜 사람이었단 걸. 나만 소설 속의 여유로운 탐정이었단 걸 알게 됐다"는 소회를 밝히자, 레드핀즈는 "우리가 하는 일은 세상을 좋게 바꾸는 것도 아니고,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도 아니야. 그저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라 조언한다. 다소 씁쓸하기도 한 이들의 진지한 대화는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끌어올려 주고 있다.

레드핀즈와 노트릭은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대화의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총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국산 추리 게임 <스테퍼 케이스>는 현재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상태이며, 네 번째 챕터까지 오픈되어 있다. 스팀 리뷰에 호평을 남긴 유저들은 모두 마지막 챕터와 게임의 엔딩이 공개될 4월 30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초능력이 가미된 <역전재판>"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퍼 케이스>를 여러분도 꼭 한번 즐겨보시길 바란다.

▶ 추천​ 포인트
1. 재미와 완성도 모두 잡았다. 특히 스토리가 흥미롭다.
2.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 2차 창작물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3. 깔끔한 일러스트가 캐릭터 매력을 증폭시켰다.
4. 초능력이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밋밋할 수 있는 추리를 다채롭게 만들었다.​

▶ 비추 포인트
1. 플레이 경험을 저해하진 않았지만, 일부 음악은 퀄리티가 더 좋았으면 싶었다.
2. 한 챕터가 꽤 길다. 누군가에겐 불필요하게 길다 느껴질 수도 있다.

▶ 정보
장르: 추리, 텍스트 어드벤처
가격: (얼리 액세스 기준) 12,000원
한국어 지원: O (국산 게임이다)
플랫폼: PC(스팀, 스토브 인디)

 

▶ 한 줄 평

 

스토리와 대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취향저격이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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