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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기자수첩] 1년에 단 하나의 게임을 사야 한다면

벌어진 격차, 따라잡을 용기, 도전과 기다림

김승준(음주도치) 2024-12-10 18:39:58

"1년에 게임을 딱 하나만 사야 한다면 뭘 사야 할까?"


마침 더 게임 어워드 GOTY 발표가 코앞인 시기이기도 하지만, 해당 문장은 10년지기 절친 P가 지난 10월 기자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갓 오브 워>, <스파이더맨>, <아캄> 시리즈를 지독히도 좋아했던 친구는, 유부남이 되더니 게임을 할 겨를이 없어졌다. S전자 연구원인 P의 지갑 사정은 넉넉한 편이다. (S전자에 대한 욕을 한참 들어주다가) 가격은 상관없으니 짬 내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추천해달라던 P에게 여러 작품을 언급해봤다. 


"아, <오공>은 들어본 것 같다."


P의 대답이었다. 짧은 문답 사이에서 새삼스레 느꼈다. PC, 콘솔 게임 사는 사람들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유명한 퍼스트 파티 타이틀 내지는 AAA 게임을 먼저 떠올리는구나. <오공> 수준의 인지도가 아니면, 신작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잊혀지는 게임도 참 많구나. 업계 밖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다시 되새기게 된다. 구매까지 이어지는 구간 사이에 정말 많은 정보 공백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는 2024년 올 한 해를 빛낸 대작들은 어떤 타이틀이었나. 아니, 다시 반문해보자. 꼭 대작이어야만 구매로 이어지는가? 기자처럼 참신한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세상에 많지 않은가? 각기 다른 게이머들은 게임을 구매, 플레이할 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번 기자수첩에서는 이런 커다란 담론들을 몇 가지 예시 안에서 짚어보려 한다. 


<검은 신화: 오공>


# 입이 떡 벌어졌던 게임들은 명확했다

디스이즈게임 또한 더 게임 어워드 GOTY 후보작을 추천하는 매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미 GOTY 시즌 이전부터 이런 고민을 꽤 길게 해왔다. 매번 그렇지만 '재미'라는 것은 참 주관적인 영역이라서, 어떤 게임이 더 인상적이었는지, 완성도가 높았는지 등으로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다.


<오공>, <메타포: 리판타지오>, <젤다의 전설: 지혜의 투영>, <스텔라 블레이드> 등 그래픽, 아트, 플레이, 스토리 다양한 요소로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사실 올해 기자의 마음을 가장 크게 뒤흔든 대작은 PC, 콘솔 게임이 아니었다. 


<명조>, <젠레스 존 제로>, <소녀전선 2: 망명> 그리고 <페르소나 5 팬텀 X>와 <엑스 아스트리스>까지, 이걸 모바일에서 구현했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 중국 게임들의 성장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팬덤이 탄탄한 서브컬처 게임이라서도 아니고, 그래픽이 좋기만 해서도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넘어서기 어려운 격차가 생겼다고-까지 느낀다. (심지어 이런 타이틀이 연달아 나왔다는 점 또한 놀랍다.)


타이틀 하나에서 어디까지 치밀함을 보여줄 것인가. 그 차이는 '자신감'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야비' 세 글자로 압도해버리는 <젠레스>다.

<소전 2>는 3D 모델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인상이다.
저 정도 디테일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데​, 의상이나 무기 커스텀도 가능하고 모바일 최적화까지 챙겼다.


# '자신감'과 '용기'의 차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영진이 그런 의사 결정을 할 용기가 없어서 그래요."


불황 속에서도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낸 K 대표가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해준 말이었다.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들여 시장 자체를 장악해버리는 <버섯커 키우기>, <화이트아웃 서바이벌> 등의 중국산 모바일게임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마케팅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 돈이 없으면 모바일에서의 경쟁을 피하면 그만이고, 있으면 그만큼 쓰면 되는 문제 아니냐-싶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그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는 과정 중에, 굉장히 높은 확률로, 실패하면 다 손해로 돌아오는데요?-라는 태클이 경영팀 내부에서부터 들어오기 때문이다. 중국 개발사들이라고 돈이 곳간에 넘쳐 나서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는 게 아니다. 그 정도 투자를 하면,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 금액이 돌아온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과감함인 것이다. K 대표 또한 몸으로 부딪히며 이를 학습해 '담'을 키우게 됐다.


이는 마케팅 비용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개발비 또한 마찬가지다. 멀리 앞서 가는 해외 게임들과 경쟁하려면, '올인'을 각오해야 한다. <발더스 게이트 3>도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고, <오공>도 마케팅비를 제외한 개발비에만 약 758억 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개발비가 들어간 게임들은 대부분 MMORPG였다. 최근에 들어서야 <데이브 더 다이버>,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등의 타이틀로 PC, 콘솔에 대한 도전이 이어졌고, 장르도 점차 다채로워지면서 <인조이>, <붉은사막>, <카잔> 등의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도전은 반갑지만 여기서 다시 드는 생각. 그렇게 커진 개발비, 마케팅비는 결국 게이머의 소비로 채워진다. (여전히 다른 문화 생활에 비하면 가성비 취미라곤 하지만) 몇 십 시간에 달하는 플레이 타임, 점자 비싸지는 게임 가격은 분명한 부담이다. 지갑 사정이 괜찮은 S전자 연구원 P도 '하나'의 게임만 추천해달라고 한 것을 떠올려보자. 저 많은 대작들이 다 충분한 금전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작년(2023년) GOTY <발더스 게이트 3>



# 성공해야만 하는 AAA, 참신함이 더 귀해진 인디

"2024년 출시작을 기준으론 국산 게임이 정체기였다는 말이 종종 나오고 있다"


게임 업계에 있는 Y 이사가 최근 기자와 사담을 나누며 해준 말이다. <데이브>,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이후로 잠시 공백이 생겼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Y 이사는 이후 출시될 <인조이>, <카잔>, <붉은 사막> 등의 작품을 기다리는, 마치 도움닫기에 해당하는 시기처럼 여겨지는 게 불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갈증의 이유는 '도전 정신'의 부재였다. AAA 게임들은 앞서 언급한 점차 커지는 마케팅비, 개발비로 인해 안정적인 선택만을 하는 추세로 가고 있으니, 허리에 해당하는 인디, 중소 사이즈의 개발사에서 '도전적인' 작품들이 더 나와줘야 하는데, 업계 한파 등으로 인해, 이들의 게임도 어디서 본 듯한 게임의 연장선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게임들이 도전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엔, 내수 시장의 규모, 게이머들의 소비 성향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도 이에 뒤쳐져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인디 중소 사이즈에서 보기 드문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나, 전에 없던 스타일의 도전을 하는 게임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텔라 블레이드>가 가진 상징성은 매우 크다.
누군가는 그것을 공백이라 느낄 정도로.
 


# '시간'값, '돈'값을 하느냐의 싸움

"재밌어 보이는데,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선뜻 못하겠어요."


후배 L이 <소녀전선 2: 망명>을 두고 어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소전 2>만 그러랴. 이젠 거의 표준화된 BM을 따르고 있는 많은 수집형 모바일게임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AAA 게임도 마찬가지다. 최근 출시된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은 일반판 79,990원, 프리미엄 에디션 114,270원에 판매되고 있다. 게임을 2~3개만 구매해도 비용 증가폭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플레이 타임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요즘은 숙제 콘텐츠를 줄이는 게 추세라고는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진지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매일 시간을 쏟아야 한다. AAA게임에 흔하게 등장하는 마케팅 용어 중 하나가 몇 십 시간에 달하는(때론 100시간을 훌쩍 넘기는) 플레이 아닌가. 직장인이나 학생이 저녁에 몇 시간씩 짬을 내서 하면 여러 주에 걸쳐야 엔딩을 볼 수 있으니, 사람에 따라 충분히 부담스럽다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구매 비용과 플레이 타임 모두 규모가 다양한 인디, 중소 게임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스팀 플랫폼은 많은 타이틀에 일정 수준의 노출을 보장해주고 있다 보니, 대기업의 AAA게임도 인디 중소 개발사의 야심작도 계급장을 떼고 맞붙는 그림이 종종 보이곤 한다. 올해만 해도 <팰월드>와 <헬다이버즈 2>가 그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연초에 돌풍을 일으켰던 <팰월드>

"시장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AAA와 그렇지 않은 게임들이 같이 맞붙고는 있지만, 체급은 분명히 다릅니다. 게이머분들도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신작 2종을 개발 중인 대표 J의 말이었다. 기자도 일견 동의한다. 앞서 언급한 <젠레스>나 <오공>과 같은 사례만 봐도, 일반적인 중소 개발사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격차' 너머의 게임들이다. 개발비와 마케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과거보다 '체급 구분'의 필요성도 더 커졌다. 가장 쉬운 구분은 플레이 타임과 가격의 차이가 아닐까. '시간'값, '돈'값을 하느냐-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방법 중 하나다.


게이머 입장에서는 "재밌으면 그만"인 것도 맞는 말이지만, 도전이 이어지고 있는 과도기에는 (체급 차이를 넘어서는) 냉혹한 비교보다는, 기다림과 응원이 시장에 필요한 때가 있다. 기자는 2024년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장에선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언더독을 볼 수 있던 시기였다. GOTY 후보에 1인 개발로 만들어진 <발라트로>가 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2025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는 더 많은 국산 AAA게임, 중소 인디게임이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1년에 게임을 딱 하나의 게임을 구매 또는 플레이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이 가진 의미를,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되새겨봤으면 한다.


2024 GOTY 후보에 오른 <발라트로>다. 국내외에서 시장 지형이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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