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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르포] GDC에 울려 퍼진 게임개발자의 절규

GDC, 갑의 화두와 을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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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3-22 09:49:41

GDC에 오면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스무 명에 이르는 '서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개발자들은 강의와 강의 사이마다 '서클'을 만들고 여러 주제에 관해 쉬지 않고 떠든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끼리 서클을 만들고, 어떤 이유에서건 점점 확대되고, 다음을 기약하며 연락처를 나누는 광경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이러한 서클은 강연장 곳곳에 불쑥불쑥 생겨난다. 그 정도가 얼마나 빈번하냐면,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도 서클의 손길이 뻗치곤 할 정도다. 짧은 경험상 GDC의 개발자들은 대단히 개방적이다. 대뜸 인사를 청하는 것은 물론 명찰의 초록색 스티커(코로나19와 관계없이 다가와 소통해도 좋다는 표시. 빨간색 스티커를 붙인 사람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 실례로 간주된다.)를 보고 악수를 청하며 '무슨 강연을 들었냐', '어떤 일을 하고 있냐' 등의 질문을 던진다.


샌프란시스코는 서쪽 대륙에서 불어오는 지독한 미세먼지도, 3월 말에 영하의 체감온도를 기록하는 이변도 없다. 그래서 GDC에 참가한 개발자들은 봄날의 날씨를 만끽하려고 센터 바깥에서도 종일 떠든다. 개중에는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웃통을 벗고 앉아있는 사람까지 있어서 보수적인 아시아 손님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GDC의 '예르바 뷔에나 가든'​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오늘(21일) 기자는 점심시간에 볕바라기가 하고 싶어서 가든 한켠에 앉아 밥을 먹었다. 고국의 김치를 그리며 고국의 돈으로 바꾸면 3만 원이나 하는 부리토 보울을 우걱거리면서 오전에 들은 강연을 정리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든 한가운데 전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조직적인 서클이 생기더니 이내 함성이 들려왔다.


밥 먹다가 봉창 두드려 맞은 기자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놀란 가슴을 움켜쥐며 경계했다. 뒤에 알고 보니 이유 있는 절규였다. ​'GDScream'은 현재 게임업계에서 일어나는 대량 정리해고에 분노하는 캠페인이었다. 설명을 들어 보니 50여 명의 개발자들이 가든에 모여 진행하는 일종의 플래시몹으로 "GDC에서 괜찮은 척하는 개발자"들이 "카타르시스와 동지애를 느끼는 비명"이었다. 참가자들은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절규를 외친 뒤 또 다른 서클로 분열되며 사라졌다.




# 갑의 화두, 을의 화두


막 절반을 넘긴 GDC 2024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이다. 로라하는 기업들은 게임 개발 과정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자기 회사가 혁신의 최전선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북미 IT업계에 해고가 워낙 잦다지만,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번 정리해고가 유례없는 규모라고 주장한다. 이 칼바람에 올해만 벌써 10,000명 넘는 게임사 직원이 생계를 잃었다. 말하자면 인공지능은 갑의 화두고, 정리해고는 을의 화두다. 


자연히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같은 날 열린 GDC 엑스포에서 IGDA(국제게임개발자협회)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인공지능이 자신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간이 설문을 진행했다. 여기에 다수의 응답자들은 인공지능이 게임업계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간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해고된 것을 본 적이 없다"는 IGDA의 캠페이너는 기자에게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다.


IGA의 설문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자들의 우려가 보였다.


올해 GDC에는 인공지능 관련 강연이 유독 많다. 어느 인공지능 세션의 질의응답 시간에 혹자는 붉은깃발법의 예를 들며 신기술에 대한 개발자들의 비토(Veto)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자동차의 등장으로 밥그릇을 잃게 생긴 마부들은 자동차 운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당국은 그들 의견을 일부 수용해 시내 도로의 자동차 최대 속력을 제한한다. 이 법으로 마부들은 일자리를 지켰지만, 일각에서는 붉은깃발법 탓에 영국이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미국과 독일에 넘겨주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얼굴 모델을 구축하고, 캐릭터의 목소리를 생성하며, (간단한) 코드 구성과 점검까지 뚝딱뚝딱 해낸다. 어떤 개발자는 GDC를 앞두고 "자신을 대체하는 기술에 대한 컨퍼런스가 되고 있다"고 조소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 한들,​ 현장에 참가한 이들의 눈에는 업계인들이 잘려 나가는 광경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고 시연되는 모습은 하나의 장면이다.  


<드워프 포트리스>의 개발자 턴 아담스(Tarn Adams)는 PC게이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정리해고 국면에 대해 "똥이나 먹으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러한 결정은 벤처 캐피탈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실로 GDC 곳곳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어쩌면 이번 GDC의 서클은 대부분 개발자의 밥그릇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1일 밤에 열린 GDC 어워드에도 규탄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알라나 피어스(Alanah Pearce)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라며 "매년 GDC에 오던 사람들이 다음 월급이 언제가 될지 몰라서 사치(GDC 참석)를 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밤 상을 휩쓴 스벤 빈케(Swen Vincke)도 수상소감 도중에 "기업의 탐욕 때문에 일자리의 손실이 일어났다"고 언급했다.


스벤 빈케는 GDC의 스타였다. 21일 상을 휩쓸며 정리해고를 비판하고, 다음날인 오늘은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기를 발표했다.



# 판데믹이 호황기였던 게임산업의 '파티'가 끝난 뒤


GDC 엑스포에 부스를 내고 캠페인을 진행 중인 CODE-CWA

CODE-CWA는 GDC 엑스포에서 정리해고의 위험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미국통신노조(CWA) 산하 조직으로 디지털 노동자를 조직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부당 노동 행위에 비판하는 캠페인을 전개했고 최근에는 미국 내 주요 기업들의 정리해고 움직임에 비판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판데믹은 많은 스튜디오와 노동자들이 큰 수익을 얻는 호황기였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집에 있었고, 거의 모두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판데믹의 끝나자 이들의 호황기도 끝났다. CODE-CWA 부스에서 만난 시어런 코일(Ciaran Coyle)은 "이제 주주들은 우리(노동자)가 기업의 이익률을 낮추는 존재로 보고 있고, 수익성을 높이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곧 노동자를 해고하라는 직접적인 압력으로 이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지금 상황은 주주와 기업이 강하고, 노동자의 목소리는 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리해고의 시작 국면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주로 QA 등 '비개발 직군'이었다. 이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쉬운 고리부터 끊어버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자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개발 직군'까지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이르렀다.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취소하고 직원들에게 사무실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초대형 기대작 <GTA 6>를 개발하는 락스타게임즈가 대표적이다.


'생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회사가 재택근무 중단을 명령할 때 따르면 되는 것 아닌가?' ― 기자는 도일에게 나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내에서는 회사가 주는 월급으로는 폭등한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이어서 "판데믹 기간 동안 모두 외곽으로 빠져나가서, 지금 당장 회사에 가려면 3시간, 4시간씩 운전을 해야만 한다". 이들은 회사 복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복귀를 위한 안전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코일은 "노동자를 위한 하이브리드 업무 정책, 유연화된 사무실 복귀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지금 채용시장은 씨가 말랐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새 일거리를 찾아 GDC에 왔지만,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고 알리는 부스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개발자들은 포트폴리오를 전달하고, 채용 담당자는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답변하지만,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없으니 구직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엑스포에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는 개발자와 만났다. 2012년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했다는 그는 "여기 내가 찾는 것(새 직장)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렇게 활기를 잃고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GDC를 찾은 한국인 게임 PD는 "작년과 달리 올해는 회사에서 '어디를 가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안내할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며 험악해진 길거리 사정을 전했다. 그 길거리 사정이란 굳이 누구 입을 빌려서 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연하다. GDC의 역사를 안내하는 팜플릿에는 '게임개발자들이 모이기 좋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개최'를 시작했다고 쓰여 있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서클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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