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러 외신이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보도하고, 유튜브에는 각국 유튜버들의 분석, 리액션 영상이 올라오는가 하면, 소셜미디어에는 외국 유저들이 만든 패러디 '밈'이 돌아다닌다.
이런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게임계에도 부분적으로 흘러들었다.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작품인 만큼, 벌써 기성 게임사와 제휴한 정식 콘텐츠가 나온 것은 아니다. 대신 유저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어떤 게임들이 나왔고,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현재 로블록스에서 <오징어 게임>의 영문 제목인 <Squid Game>을 검색하면 백수십 개에 달하는 게임들이 확인된다. 대부분 드라마 공식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해 게임 로고를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로블록스> 게임이 ‘양산’된 배경에는 물론 원작 <오징어 게임>의 대대적인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 게임>의 대중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먼저 전 세계 외신 반응이다. 9월 27일 블룸버그는 <오징어 게임> 인기로 인한 한국 미디어 관련주 상승세를 보도했다. 포브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남화조보)를 포함, 영미, 중화, 중동, 동남아, 유럽 등 각지 매체들도 비평·배우소개·차기작 전망 등 다양한 커버리지를 내놓고 있다.
패션지 보그의 경우 무려 5년 전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렸던 모델 겸 배우 정호연(강새벽 역)의 메이크업 루틴 영상 제목에 ‘<오징어 게임> 주연’이라는 설명을 추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일부는 ‘노골적 노림수’라며 떨떠름하다는 반응이지만 다른 원작 팬들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인기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반가워한다.

물론 이런 글로벌 인기 IP라고 해서 항상 <로블록스>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징어 게임>은 <로블록스>의 근간인 '캐주얼 게임' 포맷으로 제작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직관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게임의 ‘코어 룰’이 이미 원작에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 소개된 개별 ‘경기’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용 놀이여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기본적 재미도 갖췄다. 최종 우승자 1명을 가리는 작중 설정은 현세대 게이머들에 익숙해진 배틀로얄 문법에 들어맞는다(인기작이었던 <폴가이즈>도 비슷한 얼개로 진행된다) 이렇듯 <오징어 게임>은 게임화하기 좋은 소스다. 빠른 제작, 이용자 유치에 모두 유리한 IP라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로블록스> 내 <오징어 게임> 패러디 작들의 만듦새가 전반적으로 뛰어나지는 않다. 제목과 이미지만 적당히 빌려왔을 뿐, 내용에서 원작과의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든 게임들이 많다.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급조했거나, 기존하던 게임에 <오징어 게임> 관련 레벨 및 테마를 조금 추가해놓고는 <오징어 게임>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을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로블록스>의 특성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저 추천 비율이 50%를 한참 밑돈다. 이용자 수도 적게는 수십에서 많아야 수백 명에 불과하다.
이렇듯 내실이 다소 부족한 게임이 쏟아진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손쉬운 단기 수익’에 이끌린 제작자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로블록스> 제작자는 게임상에 유료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다. 만일 판매 수익이 일정 금액을 넘어가면, 페이팔 등 플랫폼을 통해 직접 개인 계좌로 인출할 수도 있다,
이런 환금성 때문에 <로블록스> 게임들이 때로 ‘무분별하게’ 수익을 올린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를테면 다른 <로블록스> 게임을 표절하거나, 인게임 균형과 질서를 크게 해치는 유료 아이템을 팔아 자제력 부족한 어린이들을 때 이른 ‘현질 경쟁’에 내몰기도 한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현재 <로블록스>에 등록된 <오징어 게임> 패러디물 중 상당수가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 품목은 대부분 인게임 밸런스와 상관없는 특수효과, 네임태그 등이지만 원작의 '일꾼'이 되어서 총기로 다른 참가자들을 임의로 죽일 수 있게 하는 등, 무과금 유저를 괴롭혀 게임 진행 자체를 저해하는 아이템도 눈에 띈다.

물론 '다양성'이 자랑거리인 <로블록스>인 만큼 그 안의 <오징어 게임> 패러디물이 전부 다 부정적 반응만 얻고 있지는 않다. 일례로 누적 방문자 수 510만 명을 넘긴 <헥사 게임>(<Hexa Game>)은 90%에 달하는 추천 비율을 기록하는 등 호평이다.
130명이 동시 진행하는 이 게임은 원작의 6개 경기를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했다. <로블록스> 플랫폼 특성상 구현하기 어렵거나, 짧게 즐기는 캐주얼 게임 문법에 맞지 않는 경기 내용은 적절히 각색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두 번째 ‘뽑기’ 라운드는, 원작에 나온 별이나 원과 같은 도형을, 폭 좁은 플랫폼으로 랜덤하게 제시한 뒤, 2분 이내에 그 위를 직접 걸어 결승점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각색했다.


‘줄다리기’는 경기 시간이 늘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참가자 전원을 반으로 나눠 동시 진행하며, 특정 시점부터는 양측 플랫폼 길이가 짧아져 더 쉽게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홀짝’은 2인 1조가 아닌 단체전으로 진행되고 구슬 20개를 획득하거나 8라운드를 버티면 통과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한 칸에 최대 2명만 올라설 수 있었던 ‘징검다리’도 고의적 방해를 막기 위해서인지 ‘강화유리’ 쪽 인원 제한을 없앴다.
<헥사 게임>은 <로블록스>의 <오징어 게임> 패러디 중 최고 수준의 인기를 누리는 상태지만 아직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는다. 다만 우려되는 지점은 저작권 침해다. 첫 라운드 소녀 로봇의 음성이나 대기실(숙소)에서의 BGM이 원작 음원을 그대로 추출, 사용하고 있어 문제 소지가 엿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 원작이 성인용 콘텐츠라는 점도 유념할 지점이다. <로블록스> 이용자 대부분은 어린이기 때문이다. 원작을 이미 본 유저들에 대해서는 제작자 책임이 없겠지만, <로블록스>로 <오징어 게임>을 먼저 접한 미성년자 유저가 ‘원작’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게임에서는 이에 대한 경고 문구나 기타 방지책은 찾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