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게임팬의 공통된 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하프라이프 3> 출시는 벌써 16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FPS 장르를 한 차원씩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하프라이프>와 <하프라이프 2> 이후, 시리즈 팬들은 언제나 <하프라이프 3>의 탄생을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하프라이프3> 출시는커녕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소식조차 들려온 적 없다. 그 이유에 관해 억측과 분석이 난무했으나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7월 10일 스팀을 통해 출시된 인터랙티브 소프트웨어 <하프라이프: 알릭스 - 파이널 아워스>(이하 <파이널 아워스>)는 이 오랜 질문에 부분적으로나마 답을 전해준다. <파이널 아워스>는 밸브의 최신 VR게임 <하프라이프:알릭스>(이하 <알릭스>) 개발 과정을 상세히 다룬 ‘e북’형 소프트웨어다.
2020년 3월 출시된 <알릭스>는 접근성 낮은 VR 포맷으로 나왔지만 놀라운 혁신성과 완성도로 팬과 평단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닐슨 컴퍼니 산하 연구기업 슈퍼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알릭스>는 출시 한 달 뒤인 4월 기준 약 67만 8,000장이 팔렸다. VR게임으로서는 이례적 수치다.
<파이널 아워스>는 총 13장으로 내용 대부분은 캐나다 출신 게임 저널리스트 제프 케일리의 글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개발 과정의 이해를 돕는 영상과 3D 아트워크 등 여러 형태의 콘텐츠가 가미됐다.
<파이널 아워스>에서 케일리는 <알릭스> 개발에 소모된 밸브의 지난 10년을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밸브는 2013~2014년 무렵 이미 <하프라이프 3>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팬들의 기대와 그 모양새가 사뭇 달랐다. 밸브가 기획한 것은 자사 게임 <레프트4데드>에 영감을 받은, 전투 시퀀스 중심 게임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프로젝트는 개발에 사용되던 소스2 엔진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던 탓에 결국 무산됐다.
<알릭스> 이전에 다른 <하프라이프> VR게임이 시도된 적도 있다. <하프라이프> 외전 시리즈 <하프라이프 에피소드>의 세 번째 작품을 낳을 뻔했던 이 프로젝트도 <하프라이프 3>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시도 끝에 취소됐다.
키슬리에 따르면 이 두 작품 외에 개발 취소된 <하프라이프> 관련 프로젝트가 최소 3개 더 있다. 밸브가 ‘<하프라이프> 후속작’이라는 이름에 얼마나 큰 중압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 왔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하프라이프> 관련 작품 외에도 취소된 프로젝트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협동형 FPS <레프트4데드> 시리즈의 3편
- <엘더스크롤>과 <다크소울>에 영향을 받은 RPG
- <마인크래프트> 스타일의 복셀(3차원 큐브) 기반 게임
- 개당 5,000달러(약 600만 원)의 초고가 VR 헤드셋
그렇다면 <하프라이프 3>의 꿈은 영영 요원해진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다행히 현재 개발팀 대부분은 여전히 <하프라이프 3> 개발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과연 <하프라이프 3>이라는 이름의 중압감을 감내하며 모험에 나설지, 아니면 <알릭스> 성공으로 어느 정도 앞길이 열린 VR 사업 쪽에 치중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다.
<알릭스>의 성공이 그간 밸브를 괴롭혀 온 ‘<하프라이프> 공포증’을 상당 부분 덜어 줬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밸브에서 레벨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필 코는 ‘<하프라이프> 공포증’을 얼음에 비유하며 밸브 내부 분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얼음에 드디어 금이 갔다. 팀원들은 이제 얼음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제 <하프라이프>가 더이상 무섭지 않다.”
이들의 또 다른 도전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