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이상혁의 경기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앞다투어 공격적인 픽을 꺼내 빠른 속도로 게임을 운영하는 상위권 미드 라이너와 달리, 페이커는 후반 지향적인 픽만 플레이하는 등 속도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덩달아 소속팀 T1도 헤매고 있죠. 27일 기준 T1의 성적은 7승 4패로, 이름값에 비하면 분명 낮은 수치입니다.
때문에 많은 이가 T1과 페이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공격적으로 경기를 하지 않는다, 후반 지향형 픽을 고집한다는 손가락질도 이어지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페이커는 '역대급'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을까요? 정말 T1은 모든 걸 뜯어고쳐야만 하는 걸까요? LCK 유튜버 '혁구'와 디스이즈게임이 이에 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올 시즌 페이커를 두고 혹자는 '18서머'가 겹쳐 보인다고 하더라. 당시 페이커는 그야말로 프로 커리어에 남을 만한 저점을 찍었었는데, 어떻게 보시나.
승주(이하 승): '18서머' 페이커는 메타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졌고 잔실수도 많은 편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느낌인데, 특히 자신의 시그니쳐 픽이 밴 당하면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이다. 일면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다.
혁구(이하 혁): 지금 페이커의 경기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18서머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페이커는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려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지금은 좀 밋밋한 느낌이다. 뭘 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달까.
형철(이하 철): 그렇다면 '19서머'와 비교해보자. 당시 T1과 페이커는 시즌 초 다소 헤매는 모습이었지만 후반기 들어 대반격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그때는 페이커 말고도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스타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반전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T1은 그때와 거리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그 간격을 좁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보는데.
혁: 19서머 T1은 테디 말고도 엔딩을 차지하는 선수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칸나, 테디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주인공이 없다. 플레이메이킹 옵션이 크게 줄어든 느낌이다. 확실히 작년에 비하면 지금 T1은 '위기'에 빠졌다고 보는 게 맞다.
올 시즌 페이커의 챔피언 폭은 '아지르-트위스티드 페이트' 쪽으로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카르마를 3번 플레이하긴 했지만, 시즌 초반에 잠깐 사용한 뒤 봉인한 상태고. 이에 따라 페이커가 '수동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혁: 일반적으로 라이너를 평가함에 있어, 크게 두 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챔피언을 잘 다루는 와중에 특정 챔피언을 선호하거나, 반대로 다른 걸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특정 챔피언'만' 사용하거나. 지금 페이커는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아지르, 트페 말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도 있고.
승: 확실히 아지르, 트페가 밴 당했을 때 선택한 니코, 룰루의 결과가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후자에 가까운 느낌이다.
철: 이 외에도 흥미로운 건 코르키, 갈리오에 대한 T1의 생각이다. 두 챔피언 모두 페이커가 꽤 잘 다루는 픽인 데다가 올 시즌에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물론 초반 주도권을 잡기 힘들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다른 챔피언을 잡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차라리 후반 잠재력이 높은 픽을 써볼 만 할 것 같은데,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나?
승: 메타 변화와 연결된다고 본다. 아지르는 초중반 라인전이 나쁘지 않은 데다가 후반 포텐셜도 확실한 편이다. 하지만 갈리오나 코르키는 잘못 선택했다간 초반 라인전부터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과격한 변화'를 하지 않았던 올 시즌 초에는 왜 쓰지 않았던 걸까?
승: 시즌 초반 T1이 변화를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MSC 이후, 누구보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느끼고 이를 시도해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코르키, 갈리오 등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였을 거다.
혁: T1이 코르키와 갈리오를 쓰지 않는 것은 팀별 해석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샌드박스가 신드라, 젠지가 애쉬를 선호하듯 T1은 아지르라는 픽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다이나믹스가 T1을 상대하는 해법을 제시한 느낌이다. '특정 카드에 밴을 집중시키면 T1의 힘을 봉쇄할 수 있다'와 같은.
혁: 다이나믹스 전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페이커뿐만 아니라, T1 전체가 계속해서 기존 스타일과 다른 것을 시도하고 있다. 누울 수밖에 없었던 실력을 공격적인 부분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철: 확실히 이전까지는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눕는 거 잘했었는데...' 하는 미련이 느껴졌다면 최근엔 되든 안되든 픽부터 플레이까지 일단 공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혁: 눕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이상, 이를 활용해야만 밴픽에서부터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승: 빨리 굴린다는 것이 무조건 싸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팀별로 굴리는 것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젠지와 DRX는 탑보다 하체 쪽에 힘을 실어주고, 담원은 베릴이 돌아다니면서 쉴 새 없이 난전을 유도한다. 팀별로 '빨리 굴리는' 방식이 전부 다른 셈이다. T1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에 더해, 올 시즌 페이커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챔피언 폭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 않나. 비댕겅, 댕겅이라는 웃지 못할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혁: 사실 플레이 스타일, 특히 라인전은 챔피언 픽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코르키 대 아지르' 구도라면 서로 반반 가는 게 좋지만, '루시안 대 아지르'의 경우 루시안은 무조건 뚫어야 한다는 목표로 라인전에 임한다. 이처럼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을 잡으면 공격적으로 뚫는 것이 당연하고 후반 포텐이 높은 챔피언을 잡으면 '수비적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승: 한화전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커는 세트를 픽했던 한화전에서 사일러스를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고 로밍도 다녔다. 확실히 플레이 스타일과 챔피언의 연결고리는 꽤 강한 편이다.
혁: 맞다. 완벽히 뚫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초반 라인전이 강한 세트를 잡고 사일러스를 잘 공략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자기 역할은 한 셈이다.
승: 솔직히 페이커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성기 이후 많이 변했다. 전처럼 라인전에 올인하기보다 상대의 갱킹을 영리하게 흘리고 성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올해는 그런 모습이 잘 안 나오다 보니 부진하다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때문에 페이커에게 왜 다른 어린 미드 라이너처럼 공격적으로 하지 않냐고 비난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닌데... 게다가 페이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격적인 플레이 대신 자신만의 스타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올 시즌 들어 '갑자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철: 또 하나 재미있는 건, 페이커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쓰는 픽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19서머였고. 당시 페이커는 정규시즌 중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키아나, 카사딘, 에코, 레넥톤 등을 꺼내 게임을 터뜨렸다. 큰 무대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 육감적으로 아는 듯한 느낌이랄까. 섣불리 페이커를 공격적이다, 수비적이다로 나눌 수 없는 이유다.
승: T1은 지난주 펼쳐진 한화전에서 정글로 쓰던 세트를 미드 포지션으로 '깜짝' 기용했다. 어쩌면 이게 작년 서머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T1이 이러한 옵션을 많이 보여주고, 준비할 수 있다면 아지르-트페같은 T1 전용 밴이 나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올 시즌 페이커가 정말로 '눈에 밟힐만한' 부진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올 시즌 LCK 미드라이너 지표를 준비해봤다. 이름을 가렸는데, 누가 페이커인 것 같나.
승: C 같은데?
혁: G 아니면 D 같다.
철: 사실 이는 올 시즌 순위대로 미드 라이너를 나열한 것이다. 위에서부터 쵸비, 쇼메이커, 비디디, 페이커, 플라이, 쿠로, 페이트 순이다. 다시 말해 이름표를 떼고 수치'만' 보면, 페이커는 평범한 4위권 미드 라이너의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특별히 부진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수치는 결코 아닌 셈이다. 게다가 플라이, 쵸비, 비디디처럼 후픽 배려를 많이 받은 것도 아니다.
혁: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만큼의 심각한 부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T1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라 그렇게 보일 뿐이지. 딱 지표만큼의 플레이와 순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승: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 오더나 플레이메이킹 등 집계되지 않는 것도 많으니까. 다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페이커의 지표는 평범한 편이긴 하다.
페이커와 T1의 올 시즌 경기력을 정글러와 연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인 주도권이 없기 때문에 커즈가 정상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의견과, 정글러가 약하기에 라이너가 주도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혁: 정글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드 같은 경우에는 더 그렇고.
승: 그래프가 보여주듯 정글러 혼자만의 부진은 아니다. 물론 지난 시즌 커즈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영리하게 상대 공격을 회피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굴러오는 스노우볼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T1 자체가 메타 적응에 애를 먹고 있으니, 덩달아 정글러도 표류하고 있다고 본다. 단적인 예로 한화생명과의 3세트에서 모든 라인이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나가자, 어느덧 카서스가 성장해 게임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갔지 않나.
다이나믹스전 패배 이후 유독 이런 의견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젠지전 완패는 그 여론에 불을 지핀 느낌이다.
혁: 굉장히 충격적인 패배였다. 체급부터 전략까지 모든 부분에서 완패였기 때문이다.
승: 동의한다. 여태까진 다소 밀리는 형국이라도 운영을 통해 이를 극복했었는데, 이번엔 이렇다 할 포인트 없이 압도적으로 패배한터라 더욱 충격적이다. 상성 관계라는 평가를 받아온 젠지를 상대로 당한 완패인 만큼 그 여파가 더욱 컸다고 생각한다.
당시 T1이 고의로 '누웠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혁: 누울 수 밖에 없는 실력이라고 했던 김정수 감독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직 T1은 초반부터 빡빡하게 굴리는 상황에서의 경기력이 썩 좋지 않다. 낯설어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승: 많은 해설자가 이야기했듯, 지금 T1은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글 잭스, 미드 아칼리를 뽀았던 젠지전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났다. 초중반 한타에서 이득을 보고 스노우볼을 굴리겠다는 의도였는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픽이 상해버렸다.
이후 T1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KT 전에서는 페이커가 드디어 조이, 르블랑 등 공격적인 챔피언을 꺼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승: 그만큼 젠지에게 당한 패배가 뼈아팠던 것 같다. 때문에 T1도 경각심을 느끼고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는 듯하고.
혁: 확실히 T1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내 스타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본다. 물론 실수와 성장통이 뒤따르겠지만,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T1의 승리 패턴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보자. 올 시즌 T1은 모두가 캐리하는 팀이라고 부르긴 솔직히 좀 어려워 보인다. 일단 테디가 해줄거야를 기반으로 출발하되, 중간중간 위기가 찾아오면 칸나만 쳐다보면 느낌을 많이 받았다. 뭔가 패를 미리 보여주고 경기에 임하는 느낌이랄까.
혁: 다른 라인에서도 힘을 내줘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다 보니 '칸나 엔딩'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 같다. 테디도 예전에 비해 살짝 부진하고 있고. 아무래도 미드-정글이 더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승: 일부러 칸나 엔딩을 설계했다기보다, 경기를 풀어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칸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나오는 것 같다. 1라운드 KT와의 경기 2세트를 돌아보자. 초중반부터 게임이 꼬이며 T1이 불리한 경기를 이어갔지만, 칸나가 계속 라인을 푸쉬하며 상대를 잡아냈고 KT의 미드 진격을 포킹으로 막아냈다. 만약 칸나가 한 번만 실수했더라도 KT가 경기를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
역할군이 다소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에포트에게 너무 이니시 부담이 과하게 쏠려있는 느낌도 들고. 상위권 팀을 보면 어떤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 예상하기 어려운 반면, T1은 이니시는 에포트, 후반 캐리는 테디, 해결사는 칸나로 굳어진 듯한데.
승: 분명 여러 역할을 맡겨보려는 시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잘 안되는 것 같다. 일례로 얼마 전 T1이 애쉬-판테온 바텀 듀오를 뽑았지만, 라인전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서 수확의 낫을 사기도 했다. 결국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혁: 공감한다. 담원의 경우 너구리, 쇼메, 캐년, 베릴, 고스트 등 모든 선수가 엔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DRX, 젠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T1은 '칸나 엔딩' 외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다. 패를 미리 공개하고 들어가는 느낌이 강한 이유다.
철: 지금 T1은 뭔가 이런 느낌이다. 우린 테디 보고 갈 거고, 칸나가 중간중간 슈퍼 플레이해 줄 거고, 에포트가 이니시를 맡는다! 정글은 알아서 버텨! 같은 느낌이랄까. 때문에 상대 팀도 어렵지 않게 T1전을 준비할 수 있게됐다. 물론, 지금 시도하고 있는 변화가 어떤 결과물과 '변수'를 만들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정말 빠른 스타일로 변하는 것이 맞는 걸까? T1만의 색깔을 강점으로 살릴 수 있지는 않을까? 메타상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일까?
승: 변화가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롤드컵과 직결된 서머 시즌에 해당한다. 만약 변화를 꾀하다가 롤드컵 진출에 실패할 경우, T1에겐 굉장히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때문에 T1은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 스타일이라는 것이 바꾸자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쌓아온 승리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소 애매하고 서툴다 하더라도 T1만의 '새로운 답'을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혁: 좋은 질문이다. 18 롤드컵까지는 해당 기간의 메타를 가장 잘 다룬 팀이 우승해왔다. 하지만 19년은 조금 달랐다. 당시 롤드컵을 재패한 FPX는 '도인비' 김태상의 지휘 아래 어느 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색깔을 잘 살려 우승컵을 따냈다. 그럼 그게 그 시즌의 정답이 되는 거다.
하지만 그 FPX조차도 경기 운영 속도는 꽤 빠른 편이었다. 결국 운영과 조합은 팀 색깔에 달라질 수있다 하더라도, 스피드를 올리는 것은 필수 과제인 셈이다.
승: 공감한다. 빠르게 굴린다 하더라도, 팀별로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이를테면 젠지는 강력한 봇라인을 바탕으로, 담원은 베릴과 쇼메이커의 플레이메이킹을 앞세운 초중반 난전으로, DRX는 본인들만의 판짜기를 통해 이득을 만들어간다. T1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철: 현 메타에서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무리하게 입으려다 자칫 본연의 강점마저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결과가 모든 걸 판단하겠지만, 확실히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페이커가 해줘야한다로 연결할 수 있을까?
승: 미드는 게임의 핵심이다. T1이 스프링 시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페이커가 해줬기 때문이다. 당시 페이커는 라인전에서 상대에게 밀리지 않음과 동시에 상대의 노림수도 흘려냈다. 만약 페이커가 작년 PO의 경기력을 다시 선보일 수 있다면 T1도 충분히 반등할 수 있다. 그럴만한 능력과 커리어를 갖춘 만큼, 팬과 감독 입장에서 의지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혁: 결국 미드가 강해야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물론 '부진'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지금 T1이 헤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기대치가 높은 팀인 만큼, 더 높은 곳에 도달하려면 결국 페이커가 제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1의 잔여일정은 KT-샌박-설해원-다이나믹스-아프리카-담원-DRX다. 전망을 해본다면?
승: 확실히 일정은 T1에 유리하다. 체급 차가 나는 팀을 상대로 연습과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의 색깔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면, 후반부 강팀과의 경기도 기대할 수 있다.
철: PO는 무난하게 가지 않을까 싶다. T1의 경기력과는 별개로, 현재 T1의 순위를 위협할만한 팀이 있나? 에 대해서는 퍼뜩 떠오르는 팀이 없다. 일정 자체도 최하위권부터 상위권까지 역순으로 상대하는 구조다. 앞서 말했듯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또다시 T1 특유의 '도장 깨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반면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미끄러질 경우, PO에 나가더라도 맥없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T1의 올 시즌 최종 성적을 예측해보자.
승: 속단하긴 어렵다. LCK 전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T1은 스프링 시즌 우승으로 롤드컵 포인트를 쌓아놨다. 때문에 현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롤드컵은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DRX, 젠지, 담원이 워낙 강한 만큼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혁: 개인적으론 T1이 PO 진출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본다. KT 등 동부 팀들이 계속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만약 T1이 롤드컵 선발전부터 출발하게 된다면, 돌파할 수 있다고 보나?
승: 가능하면 선발전보다는 쌓아둔 포인트를 통해 직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선발전의 젠지'는 왠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
철: 속도 적응 여부와 관계없이 올 시즌 결승 문턱까지는 갈 것 같다. 왠지 느낌이 그렇다. 그냥 T1이니까. 한두 번, 세 번까지도 우연이라고 가정할 수 있지만, 이 팀은 매년 수도 없이 불가사의한 모습을 보여왔다. 언덕 하나만 넘어가면 폭풍처럼 질주하는 팀이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플레이 스타일 측면에서 페이커의 올 시즌을 예측해본다면? 속도를 올리고자 하는 팀의 방향성에 맞는 챔피언을 계속해서 꺼낼지, 아니면 갈리오나 코르키 등 본인이 잘했던 챔피언을 다시 꺼낼지 짚어봐도 재밌을 것 같은데.
승: 다른 팀들은 계속해서 아지르, 트페 등 속칭 'T1용 밴'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일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조이 활용도가 높아졌고, 그간 정글로 썼던 세트를 미드로 과감히 돌리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나. 이기려면 변해야 한다.
혁: 미드에 밴카드가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얼굴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한화전에서 좋은 경기력 보여준 세트라던가, 아니면 다른 팀이 이미 활용하고 있는 갈리오도 주목해볼 만 하다.
철: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결국 T1이 팀적 방향성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만약 향후 중하위권 팀과의 경기에서 최악의 결과를 얻을 경우, '빠름'으로의 변화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연스레 플레이 스타일이나 챔피언 폭도 바뀔 것이다.
물론 최근 몇 년간 페이커가 보여준 플레이를 감안하면, 라인전에 모든 걸 쏟아붓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선수는 분석과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선수 같달까. 때문에 향후 페이커가 지금 이 흐름을 어떻게 넘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