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발사는 어떻게 대마도 배경의 게임을 만들었을까?
오픈월드 액션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일본 배경 작품답게 일본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이하 SIE)가 ‘재고 부족’ 사태를 경고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 게임, 의외로 일본이 아닌 미국 개발사 ‘써커 펀치 프로덕션(이하 써커펀치)’ 가 만들었다. 써커펀치는 일본 기업 SIE의 자회사지만 미국 워싱턴주 벨뷰시에 소재한 미국인 위주 게임사다. 일본통 기업이라 보기는 힘들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일본에서 ‘대박’을 쳤다. 7월 22일 SIE는 공식 트위터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어 일부 매장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적었다.
우선 엄밀히 말하면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역사 고증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작품은 아니다. 시간적 배경도 15세기 에도 시대와 13세기 원나라의 일본 원정을 뒤섞어 다루는 등, 역사적 사실을 혼합해 만든 가상 시대극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 내 평가를 봤을 때 적어도 ‘일본적 분위기’를 어색함 없이 그려내는 데 성공한 듯하다. 아직도 많은 서양 기업이 동양 문화를 표현할 때 편견이나 무지로 인한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드러지는 성과다.
써커펀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7월 21일(현지시간) ‘유로게이머’가 보도한 써커펀치 제작진 인터뷰에 그 내용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우선 써커펀치는 SIE 자회사로서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SIE 재팬 스튜디오 팀과 긴밀히 협력하며 게임 내용이나 게임 피칭 내용에 문화적 오류가 없는지 검토 받을 수 있었다.
제작진이 직접 대마도 땅을 밟기도 했다. 현지 전통 문화행사, 전통 건축물, 검술 시범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박물관이나 게임의 배경이 된 실제 역사적 장소를 방문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후 수 년에 걸친 제작 과정에서 대본을 검토할 자문을 구하거나, 모션캡쳐 단계에서 일본식 제스처와 서양식 제스처의 차이를 지적해 줄 코치를 쓰는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공을 들였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다 보니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써커펀치가 이렇게 많은 품을 들여 ‘일본스러운’ 게임을 만들고 싶어한 이유는 과연 뭘까?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일본영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일본의 여러 고전 사무라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써커펀치 공동창립자 브라이언 플레밍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제작진은 훨씬 더 근원적 차원에서 일본 문화에 젖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레밍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구로사와 아키라 작품을 비롯한 여러 사무라이 영화에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사무라이 영화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서양 작품들, 즉, 서부극이나 <스타워즈> 시리즈 등에도 영감을 얻었다.”
실제로 <스타워즈> 감독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의 각본을 쓸 때 아키라 감독 작품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모티브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 스토리 핵심 세력인 ‘제다이’의 설정은 복장 등에서 사무라이를 참고한 흔적이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와 서부극은 모두 ‘가장 미국적 콘텐츠’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일본 역사와 접점이 별로 없는 미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자꾸만 ‘사무라이’나 ‘닌자’와 같은 일본 문화 요소가 등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60여 년 전 미국에 상륙한 고전 사무라이 영화들은 서부극과 스타워즈로 변주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뿌리내렸고, 결국엔 ‘미국인이 만든 일본 게임’까지 탄생시켰다.
BTS와 <기생충>이 미국 대중문화에 무시할 수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이 시기는 20년 후 게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