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광고란 일면 종교의 성전과 같다. 성전이 이교의 신을 모시지 않듯 광고는 다른 기업 상품을 홍보하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 익숙할대로 익숙한 이 ‘교리’를 가볍게 무시한 게임 트레일러가 화제다. 29일 출시된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이하 옵시디언) 신작 <그라운디드>가 그 주인공이다. 어떻게 이런 배교행위(?)가 일어났을까?
7월 24일 Xbox 게임즈 쇼케이스에서 최초 공개된 <그라운디드> 공식 트레일러는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채워져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을 먼저 보자.
"만약 올해 최대의 게임을 고대하고 있다면...
<사이버펑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하지만 '최소'의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셨다면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게임과 하나도 안 비슷한 게임만 만들어 본 ‘옵시디언’ 작품.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번영하십시오.
아니면 친구는 그냥 거미밥으로 줘버리고 혼자 하세요.”
이른바 ‘RPG 명가’로 불리는 옵시디언에게 협동(co-op)형 생존 게임 <그라운디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게임이 얼리억세스(미리 해보기)로 출시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광고에서 자사 게임을 ‘최소’라고 표현한 것은 농담이자 겸양일 뿐 아니라 게임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그라운디드>는 모종의 이유로 신체가 개미만하게 작아진 어린이들이 야생(정확히는 집 뒷마당)에서 생존하며 돌아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내용의 게임이다.
생존 게임의 무대가 대체로 우주 저멀리 어느 행성이나 초자연 현상이 난무하는 무인도 등 이질적이고 특별한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상적 환경을 살짝 뒤틀어 낯선 장소로 연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괴물처럼 덤비는 곤충들과 싸우고, 민들레씨를 낙하산 삼아 공중을 나는 등, 어릴적 한 번쯤 해봤을 공상을 게임에서 겪게 해주는 재미도 뻔한 듯 신선하다.
제대로 웃기는 영상은 반응이 좋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네티즌들은 즐거워하고 있다. 7월 30일 기준 해당 트레일러 유튜브 영상의 좋아요 수는 약 5,900회인 반면 싫어요는 136회에 불과하다.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이버펑크 2077>을 굳이 언급한 데에서 단순 농담을 넘어선 홍보전략적 기지도 엿보인다. ‘핫’한 남의 게임을 등장시킨 덕에 광고는 실제로 일종의 바이럴 효과를 누리고 있다. 기자가 이 기사를 쓰고 있는 것도, 당신이 이 기사를 읽는 것도 그 기지에 당한 거다.
<사이버펑크 2077> 공식 트위터도 영상에 응답했다. 트레일러가 나온 7월 24일 <사이버펑크 2077> 트위터는 “다 봤어요, <그라운디드> (We see you @GroundedTheGame)”라고 썼다.
트레일러에 쏟아진 ‘압도적으로 긍정적’ 반응에 비해 게임에 대한 평가는 그에 살짝 못미치고 있다. 스팀 기준으로 <그라운디드>의 7월 30일 현재 평가는 1,127개 평가 중 75%가 긍정적이다.
부정적 평가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콘텐츠 부족이다. 얼리억세스 게임이 흔히 그렇듯 마련된 스토리 콘텐츠가 적어 플레이타임이 짧기 때문에 3만원 상당의 가격 책정은 과하다는 의견이 보인다.
하지만 잠재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유저들은 스토리 분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건축과 생존 콘텐츠가 충분해 문제 없다는 의견이다. 부정적 리뷰를 남긴 유저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기본이 탄탄하고 가능성이 보인다’며 추후 업데이트를 기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