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벌써 11년째, 어느 게임의 기구한 실사 영화화 이야기

<존 윅> 시리즈 각본가까지 달라붙었으나 아직도 결과가 없어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박성현(체리폭탄) 2020-08-05 16:41:39

어느 게임이 있다. 영화화 이야기만 11년째다. 그런데 아무 결과물도 없다.

 

희한하다. 영화화 이야기는 결코 끊이지 않는다. 잊혀졌나 싶으면 좀비처럼 부활한다. 벌써 여섯 번째다. 11년째 매달릴 만한 게임도 아닌데 말이다.

 

실사 영화로 나오는 게임은 대개 다음 세 종류다.

 

<사이렌>, <레지던트 이블>처럼 콘셉트가 신선한 게임

<툼 레이더>, <히트맨>처럼 캐릭터가 매력적인 게임

<워크래프트>, <둠>같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게임

 

이런 분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글의 주인공은 TPS 액션 어드벤처 <저스트 코즈>다.

 

 

<저스트 코즈> 시리즈는 특수요원 리코 로드리게스가 독재국가들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진부한 이야기다. 게임 플레이는 진부하지 않다. 황당하다. 물리엔진을 활용해 기상천외하고 엉뚱하게 즐기도록 권장하는 ‘쌈마이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오픈월드 대명사 <GTA> 시리즈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대중성을 포기하고 마니아를 선택한 게임’이다.

 

B급 영화에 어울릴 만한 내용이다. 제작비가 덜 드니 만들기도 쉬워보인다. 그런데 11년째 구체적 계획이 공개된 적이 없다. 도대체 11년간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 2009년: 무모한 도전의 시작

이야기는 영화 <히트맨> 프로듀서가 2009년 영화화 판권을 구매하며 시작됐다.

아드리안 아스카리에는 영화 <히트맨> 프로듀서로 유명하다. 그는 2007년 첫 연출한 영화 <히트맨>이 흥행하며 성공적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영화 흥행과 별도로 원작 게임 팬에게 ‘게임과 너무 다른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성공을 맛본 아드리안은 욕심도 커졌다. 도움받을 스튜디오가 없음에도 또 다른 게임 <저스트 코즈> 판권부터 샀다. <히트맨>(2,400만 달러, 약 263억 원)를 뛰어넘는 3,000만 달러(약 372억 원) 제작비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손을 잡아줄 스튜디오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드리안 아스카리에의 첫 감독작 <히트맨>

 

 

# 2010~2011년: 아직까지는 ‘뻔한’ 실사 영화화 실패 이야기  

 

영화화 소식은 2010년 재등장했다. 스튜디오와 시나리오 작가를 구한 아드리안은 의기양양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저스트 코즈>가 영화화하기 좋은 이유를 설명하며, 게임 속 그래플링 훅을 활용한 ‘하이퍼-리얼’ 액션 영화로 제작할 것이라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 2011년 1월 중 제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지켜지지 않았다. 촬영 소식은커녕 영화 시나리오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촬영 소식은 그해 연말이 돼서야 전해졌다. <저스트 코즈: 스콜피온 라이징>이라는 제목으로 촬영 중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이후 흐지부지됐다. 여기까지는 많은 ‘실사 영화화’ 게임이 겪는 흔한 이야기다.

 

 

# 2015년: 마블처럼 유니버스를 꿈꾸다

 

영화화 이야기는 2015년 재등장했다. 이번에도 아드리안 아스카리에다. 


그는 ‘<저스트 코즈>, <데이어스 엑스>, <슬리핑 독스> 등을 활용해 유니버스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자신만의 ‘스퀘어 에닉스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려는 포부였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어벤저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벤치마크하려던 시도였다.

그러나 이 유니버스는 시도조차 못했다. 2015년 8월 개봉한 그의 다음 작품 <히트맨: 에이전트 47>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아스카리에의 꿈과 포부는 물거품이 됐다. 그가 소유한 스퀘어 에닉스 영화화 판권들이 휴짓조각으로 바뀌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 아드리안 아스카리에에게 영감을 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2017년~2018: <왕좌의 게임> 칼 드로고가 주인공이 됐을 때까지 좋았는데…

2017년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좀 더 이름 있는 감독과 각본가가 배정됐고, 결정적으로  주인공 캐릭터 리코 로드리게스 역을 맡을 배우까지 정해졌다.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와 <샌 안드레아스>의 브래드 페이튼이 감독으로 결정됐다. 주인공은 <왕좌의 게임>에서 칼 드로고 역을 맡은 제이슨 모모아가 맡기로 됐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2018년 다시 부러졌다. 감독 브래드 페이튼이 도망쳤다. 이 묵은 타이틀 대신 영화 <렘페이지> 메가폰을 잡아버렸다. 


# 2019년: 성공 가도 <존 윅> 시리즈 각본가도 못 이긴 코로나19

‘더 떨어질 바닥이 있을까?’ 싶은 상황에도 기회는 다시 왔다. 2019년이 되자 콘스탄틴 필름에서 제작을 맡기로 발표했다. 

이번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존 윅> 시리즈 각본가 데릭 콜스타드와 계약했다. 2020년 촬영을 시작해 2021년 개봉을 목표로 했다. 감독과 배우만 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각본가 데릭 콜스타드는 <존 윅> 시나리오 때문에 제작사와 싸우기까지 했다.

 

 

# 2020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정도면 영화화 취소를 할 법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2020년 7월 15일에는 간략한 영화 정보와 새로운 캐스팅 정보가 공개됐다. 

코미디 영화 전문 감독 마이클 도즈가 총대를 멨다. 영화는 <저스트 코즈> 시리즈의 상징인 그래플링 훅과 윙슈트를 활용하는 액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쪼록 데릭 콜스타드가 마지막(?) 각본가로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 기구하게 이렇게까지 계속 영화화하려는 이유는

이렇게까지 틈만 나면 영화화가 시도되는 이유로 몇 가지가 꼽힌다. 

첫째, 게임 주인공이 라틴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리코 로드리게스는 미디어에서 흔치 않은 라틴계 캐릭터다. 2017년 미국 인구조사국 발표에 따르면 미국인 18.1%가 히스패닉이다. ‘히스패닉 파워’로 흥행을 노려보려는 속셈이다.

둘째, 판권이 비싸지 않다. 판권 금액은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이미 11년간, 5번의 실패를 맛본 작품인 만큼 영화화에 대한 기대는 아주 떨어진 상태다. 인기작보다 저렴할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게임이 B급 감성이다. 2017~2018년 감독을 맡기로 했던 브래드 페이튼은 인터뷰를 통해 ‘B급 감성 007 영화가 떠올랐다’고 언급했다.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를 만들어도 두려울 게 없는 작품인 셈이다. 


그렇지만 첫 영화화 언급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려보냈다. 첫 언급이 나온 2009년 이후 3개의 게임이 추가로 발매됐다. 다행히 세 작품을 거쳤지만 시리즈 정체성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11년 동안 잊을 듯하면 영화화 이야기가 나올만한 매력이 있는 작품인지는 음…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게임 실사 영화는 망한다’는 공식을 증명할 작품이 될지, 아니면 <킹스맨>처럼 B급으로 대박 나는 작품이 될지, 아니면 이번에도 좀비처럼 몇 년 뒤 부활할지 알 수 없다. 2021년에 새로운 영화화 소식을 전할 일이 없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