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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희미해진 T1과 KT의 '통신사 더비'에 대하여

KT가 고점과 저점 오가는 사이, 확실한 강팀으로 자리매김한 T1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이형철(텐더) 2020-08-21 11:00:12

SK와 KT는 한국 이동 통신 업계를 대표하는 '라이벌'로 꼽히는 만큼, 프로농구 등에서도 오랜 시간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습니다. '다른 팀은 몰라도, 통신사 라이벌은 이겨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다시 말해 양 팀의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두 회사의 자존심을 건 승부였던 셈입니다.

 

e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1999년 KT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을 창단한 데 이어, 2004년에는 SK가 SKT T1을 창단함에 따라 e스포츠에서도 '통신사 더비'가 성사된 것입니다.​ 특히 리그를 이끈 임요환이 SK, 홍진호가 KT 소속이라는 것 역시 두 팀의 라이벌 구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T1과 KT는 각종 대회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나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최고의 라이벌'로 꼽혔죠. 하지만 최근 양 팀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T1이 '확실한 강팀'의 반열에 오른 반면, KT는 고점과 저점을 오가며 부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라이벌이라 부르기엔 너무 멀어져 버린 두 팀의 맞대결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KT에 'T1 공포증'을 유발한 승승패패패

  

두 팀의 '첫 번째' 정상대전은 2013 LCK 서머 결승전에서 펼쳐졌습니다. 이 경기는 T1에는 '전설의 시작'으로, KT엔 '악몽의 시발점'으로 꼽힐 만큼 상징성이 매우 큰 경기로 꼽히곤 합니다. 

 

결승전 초반은 KT B의 흐름이었습니다. KT B는 '스코어' 고동빈과 '인섹' 최인석의 활약으로 1, 2세트를 선취하며 우승을 눈앞에 뒀죠. 하지만 SKT T1 K(이하 T1 K)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3세트를 터뜨리며 KT B의 항복을 받아낸 T1은, 4세트에서도 초반부터 상대를 찍어누르며 경기를 5세트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된 5세트는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페이커' 이상혁과 '류' 류상욱이 모두 제드를 골랐기 때문인데요. 특히 경기 후반부 KT B 억제기 타워 앞에서 펼쳐진 두 선수의 1:1 대결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꼽히죠. 

 

당시 페이커는 류에 비해 훨씬 적은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피지컬을 선보이며 류를 제압했고, T1 K 역시 2연패 후 3연승을 질주하며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페이커와 류의 1:1 전투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류또죽'(류 또 죽었네)이라는 웃지 못할 밈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페이커의 '화려한 피지컬 컨트롤' (출처: OGN)


결승전 후, 양 팀은 또다시 '롤드컵 선발전'이라는 중요한 고비에서 만났지만 결과는 T1 K의 3-1 승리였습니다. 이후 T1 K는 롤드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대회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T1에 2013 LCK 서머 결승전이 '전설의 시작'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 KT의 '매서운' 반격, 월드 챔피언을 잡은 서브팀 'KT A'

 

양 팀의 간격은 계속해서 벌어졌습니다. T1 K가 2013 롤드컵을 거머쥔 데 이어 그해 윈터 시즌 전승 우승을 차지한 반면, KT는 롤드컵은커녕 윈터 시즌 4강에서 '또다시' T1 K를 만나 패배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KT가 시종일관 얻어맞은 것은 아닙니다. 

 

KT B의 서브 팀 정도로 평가된 KT A가 2014 LCK 스프링 조별 예선에서 T1 K를 2:0으로 박살 내는 '대형사고'를 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T1 K는 롤드컵과 LCK를 우승하는 등 그야말로 '무적함대'로 꼽히는 팀이었습니다. 반면 KT A는 보여준 것이 없는 유망주로 구성된 가능성 있는 팀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KT B에서 주전 정글러로 활약한 '카카오' 이병권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KT A의 선전을 예상하지 않았죠.

 

그랬던 KT A가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 T1 K를 2-0으로 박살 낸 것입니다. 경기 내용도 팽팽했다기보다, 그야말로 KT A의 완벽한 승리였기에 충격은 더했습니다. 이후 T1은 천신만고 끝에 8강에 진출했지만 삼성 오존에 패배하며 탈락하고 맙니다.

 

반면 스프링 시즌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KT A는 다음 시즌 삼성 블루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KT에 첫 번째 LCK 트로피를 안겨줬죠. 반면, T1은 롤챔스 스프링·서머 8강, 롤드컵 진출 실패 등 역대급으로 부진한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 경기는 LCK 역사에 남을 만한 '업셋'으로 꼽힌다 (출처: OGN)

 

 

# 단일팀 체제, 격차를 벌리는 T1

 

LCK가 형제팀 체제를 폐지하고 단일팀 형태의 풀리그 진행으로 변경된 2015년, T1과 KT의 거리는 또 한 번 벌어집니다. 

 

'임팩트' 정언영, '피글렛' 채광진 등 기존 선수들이 떠난 T1은 '벵기' 배성웅과 페이커를 중심으로 한 단일팀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 2015 LCK 스프링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KT는 6승 8패, 5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죠.

 

그렇게 T1 쪽으로 기울어지나 싶었던 순간, KT에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16 LCK 서머, 결승 진출을 두고 펼쳐진 플레이오프 최종 라운드에서 숙명의 라이벌 T1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패패승승승, KT의 역전승이었죠. 특히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스코어는 신들린 정글 운영을 선보이며 승리의 일등공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KT가 높은 무대에서 T1을 잡은 첫 번째 경기나 다름없다 (출처: OGN)

 

어렵게 결승에 진출한 KT는 정규시즌 1위 락스 타이거즈와 LCK 역사에 남을만한 접전을 펼칩니다. 그렇게 진행된 5세트, KT가 바론을 사냥하며 경기를 잡나 싶었던 순간 충격적인 상황이 전개됩니다. '스멥' 송경호가 갱플랭크의 궁극기 '지옥 화염 폭탄'을 통해 체력이 2가 남았던 바론을 스틸한 것입니다. 경기는 순식간에 락스 타이거즈 쪽으로 기울었고, KT의 단일팀 체제 우승 역시 물거품처럼 사라졌죠.

 

패배의 여파 때문일까요? 이후 KT는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상대 전적상 우위에 있었던 삼성에게 무릎 꿇으며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T1은 중국의 강호 RNG와 LCK 1시드 락스 타이거즈, 기세를 올렸던 삼성까지 제압하고 롤드컵 우승을 차지했죠. 양 팀의 명암이 또다시 갈린 셈입니다.

  

스코어의 강타는 야속하게도 '2 HP'를 남기고 말았다 (출처: OGN)


 

# '슈퍼팀' KT의 대반격

 

점점 벌어지는 라이벌과의 격차, 눈앞에서 놓친 우승은 KT로 하여금 '극심한 갈증'을 느끼게 했습니다. 

 

결국 KT는 이듬해 중국에서 활약한 '데프트' 김혁규와 '마타' 조세형을 데려와 바텀 라인을 구성한 데 이어 락스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끈 스멥과 삼성 왕조의 주역 '폰' 허원석까지 영입하며 슈퍼팀을 결성합니다. 목표는 단 하나. '타도 T1'이었죠. 당시 KT 선수들이 여러 차례 'T1을 박살 내기 위해 뭉쳤다'라고 강조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넘치는 패기와 달리, KT가 받아들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2017 LCK 스프링 결승전, 고대하던 라이벌을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났지만 3-0으로 맥없이 패배한 데 이어 그해 서머 플레이오프 최종 라운드에서도 2-3으로 역전패 했기 때문이죠. 이후 KT는 롤드컵 선발전마저 '또다시' 삼성에게 3-0으로 완패하며 그야말로 '참패'에 가까운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넘치는 패기와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출처: OGN)

 

하지만 이듬해 KT는 드디어 반격에 성공합니다. 2013 LCK 서머, 2015 LCK 서머, 2016 LCK 서머, 2016 롤드컵 선발전, 2017 LCK 스프링, 2017 롤드컵 선발전 등 숱한 준우승 징크스를 깨고 마침내 LCK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인데요. 

 

5승 4패로 다소 흔들린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 8승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결승에 직행한 KT는 당시 돌풍을 일으키던 그리핀과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단일팀 체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2013년 페이커의 제드 미러전을 '관중'으로 지켜봤던 '유칼' 손우현이 수년 만에 프로씬에 등장, KT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도 꽤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결승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KT는 이어진 롤드컵에서... (출처: OGN)


 

# 격차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KT의 첫 번째 단일팀 체제 우승을 이끈 '슈퍼팀'은 롤드컵 8강을 마지막으로 해산했습니다. 이에 따라 KT는 킹존의 전성기를 이끈 미드라이너 '비디디' 곽보성을 중심으로 새롭게 팀을 재편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2019년 내내 최하위권을 맴돌았음은 물론, 스프링 시즌에는 승강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죠. 이는 디펜딩 챔피언이 한 시즌 만에 '승강전'으로 떨어진 유일무이한 사례입니다. 

 

그 사이 KT와 T1의 거리는 한층 더 벌어졌습니다. T1이 2019년 LCK를 집어삼키는 동안, KT는 T1에 단 한 세트도 따내지못하는 부진에 시달렸죠. 물론 2020 LCK 스프링 2라운드에서 KT가 T1을 잡으며 연패를 끊긴 했지만, 수년 간 KT를 괴롭힌 'T1 공포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팀의 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개편한 KT가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반면, T1은 아카데미 출신 유망주를 과감히 주전으로 내세우면서도 '우승'이라는 확실한 결과물을 챙겼기 때문이죠. 어쩌면 T1과 KT는 더이상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T1과 KT는 더이상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출처: LCK 플리커)

 

한 팀은 '완벽한' 영광의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그간 해온 것과 조금 다른 방법과 방향을 통해 다시 한번 그 길을 걸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팀은 수년간 고점과 저점을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올해부터 아카데미를 꾸리는 등 미래를 준비하며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e스포츠에 있어 좋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구도에 따라 전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동반되며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기의 질이 올라가고, 팬들의 관심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양 팀의 관계가 과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통신사 라이벌'과 같이 호각을 다투는 구도로 다시금 형성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