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 해도 온라인게임의 부분유료화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부분유료화 게임을 ‘월정액 서비스에 실패한 게임’으로 인식했으며 실제 다수의 온라인게임이 오픈 베타테스트(OBT) 기간 동안 유저들의 추이를 살펴보며 월정액과 부분유료화라는 수익모델을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OBT기간이 짧아진데다가 이른 바 ‘대박’을 친 부분 유료화 게임이 늘어나면서 애초부터 부분유료화를 고려한 온라인게임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부분유료화 아이템과 게임이 동시에 개발되다 보니 이전처럼 게임의 밸런스와 다른 컨텐츠들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무식한’ 부분유료화 아이템도 많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유저들이 부분유료화를 보는 인식도 게임의 밸런스를 망치는 ‘적’에서 때때로 유저의 편의를 돕는 ‘부가서비스’로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인식의 변화는 또 다시 많은 부분유료화 게임을 낳기 시작했다. 이른바 ‘선(善)순환’이 꿈틀거리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4주년 특집으로 기획한 ‘온라인게임 신 풍속도’, 그 마지막 편에서는 달라지고 있는 부분유료화와 그 선순환에 대해 이야기 한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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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액 서비스는 이제 ‘기사거리’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온라인게임에서 부분유료화가 ‘대세로’ 자리잡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05년부터 국내에서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 한 해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은 <헬게이트: 런던>과 <몬스터헌터 프론티어>, <반지의 제왕>, <아이온> 정도다. 그나마도 2007년에는 월정액 게임이 아예 없었으며 <몬스터헌터 프론티어>와 <헬게이트: 런던>은 기존 월정액제 모델을 버리고 부분유료화를 선언한 상태다.
얼마 전에는 월정액 서비스를 이어가던 <마비노기>와 <대항해시대> 등도 부분유료화로 선회했고 <R2>와 <라그나로크>는 부분유료화 모델을 적용한 서버를 따로 선보였다. 이쯤 되면 온라인게임들이 대부분 수익모델로 부분유료화를 기본으로 선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정액 서비스가 사라진 이유는 원체 많지만 일단 ‘기본플레이가 무료’인 경쟁게임들을 이길 수 없다는 문제가 가장 크다
■ 미흡한 부분유료화가 부른 '악의 순환'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부분유료화'라는 수익모델은 이제 대세가 됐다. 부분유료화를 도입하면서 유저들이 늘어나고 매출도 덩달아 뛰어오르면서 개발사는 신이 났다. 하지만 부분 유료화 도입에 대해 유저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왜냐면 유저들은 '부분유료화 도입=망해가는 게임의 유저 돈 뺏기'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매달 꾸준한 고정적인 수익을 내고 금액과 상관없이 유저 모두에게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定道) 라고 여기는 업체가 다수였다. 유저들 역시 흥행에 성공한 온라인 게임은 월정액제를, 흥행이 저조하거나 품질이 낮은 게임은 부분 유료화를 수익모델로 채택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규 게임들도 역시 OBT 기간동안 속된말로 유저들의 반응을 ‘간 본 후’ 수익모델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응이 뜨거우면 기존대로 월정액을 택하고 반응이 시큰둥하면 서둘러 부분유료화로 바꾸는 식이다.
서둘러 도입한 부분유료화는 무료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저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숙한 기획으로 인해 게임 밸런스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단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분유료화가 온라인게임의 훌륭한 수익모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 하지만 초기 기획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부분유료화는 유저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런 부분유료화 수익모델이 재탄생하게 된 것은 2005년 초대박 캐쥬얼게임을 만나면서부터다.
2005년 캐주얼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의 등장은 부분유료화의 획을 다시 그었다.
<카트라이더>는 OBT 직후에 동시접속자가 1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국민 레이싱 게임'으로 추앙받던 게임. 이 게임은 게임머니(루찌) 아이템과 캐쉬 아이템 등에 따라 각각 구입할 수 있는 차량을 선보였다.
이미 게임을 제작할 때 부분유료화를 고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유저들의 취향에 맞는 대규모의 꾸미기 아이템을 선보임으로써 게임의 밸런스를 훼손시키지 않은 선에서 유저들의 구매욕을 충분히 자극 시켰다.
그 뒤를 이어 액션게임의 돌풍을 몰고온 <던전앤파이터>는 2D풍의 아바타에 다양한 코스튬을 입힐 수 있는 부분유료화를 선보였고 부분유료화를 도입한 후에도 게임의 재미가 크게 알려지면서 유저들을 흡입했다. 횡스크롤 RPG <메이플스토리>도 부분유료화를 도입한 뒤에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경우다.
이들의 게임의 공통점은 개발 초기부터 부분유료화를 결정하고, 부분유료화한 이후에도 오히려 동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부분유료화의 수익이 월 30억원이 넘어섬에 따라 정액제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부분유료화가 더 이상 월정액 서비스가 어려운 게임이 취하는 최후의 선택이 아닌 당당한 하나의 서비스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시리즈 1,2편에서 언급했듯, 대다수의 개발사가 게임 초반에 방향을 잡기 위해, 혹은 초반부터 큰 주목을 얻기 위해 대규모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진행하게 되고 이는 상대적으로 짧은 OBT로 이어졌다.
그리고 OBT가 짧아지자 온라인게임의 개발사가 유저들의 반응을 보고 월정액과 부분유료화를 고민할 시간도 없어졌다. 많은 게임들이 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분유료화와 월정액 중 하나를 선택한 채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
이에 따라 최근 개발 당시부터 부분유료화를 외치는 게임이 크게 늘어났다. 최근 이슈가 됐던 <마비노기 영웅전> 역시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에 앞서 인터뷰를 통해 ‘부분유료화’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밝혔다.
<마비노기 영웅전> 역시 부분유료화를 애초부터 염두에 둔 케이스
또 얼마 전 <로스트사가>의 부분유료화를 진행한 엘엔케이로직코리아의 윤혜정씨는 “<로스트사가>는 기획초기부터 부분유료화를 고려했고 개발 중간에 확실한 방향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한빛소프트의 <스파이크걸즈> 역시 개발과 함께 편의성과 코스튬을 지원하는 부분유료화 모델을 기획했다.
■ 변화(1)... “부분유료화 = 게임의 적은 이제 옛말“
기획단계부터 부분유료화를 염두에 둔 게임이 늘어나면서 부분유료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밸런스를 파괴할 만한 수준의 캐시아이템이 사라지고 월정액 게임을 뛰어넘는 과도한 지출을 요구하는 게임들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개발 초기부터 부분유료화를 수익모델로 기획한 만큼 다른 컨텐츠와의 밸런스를 어느 정도 조율하게 된 것이다.
최근 부분유료화를 진행한 <로스트사가>가 대표적인 예다.
<로스트사가>는 부분유료화 아이템을 따로 내놓는 대신, 게임머니로 구입 가능한 용병이나 아이템들을 캐시로도 구입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만 캐시 구입 시에는 다소 긴 시간 동안 용병을 고용할 수 있고 레벨 제한이 없어지는 등 ‘약간의 이점’만을 줬을 뿐이다.
실제로 모든 용병은 게임머니로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난투전을 기본으로 하고 적의 아이템을 주워 쓸 수 있는 <로스트사가>에서 초반용병의 중요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캐시아이템을 오직 유저들의 ‘편의성’에만 초점을 맞춘 셈이다. 때문에 <로스트사가>에서는 캐시아이템에 대한 밸런스 논란이 나올 일이 없다.
지난 해 부분유료화를 진행한 <프리우스> 역시 지역 이동의 수수료를 없애주거나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펫을 낮은 레벨에서 탈 수 있고, 원격으로 상점을 불러내 주는 등 주로 ‘편의성’을 강조한 캐시아이템만을 판매 중이다.
과거 부분유료화를 택했던 게임들이 캐릭터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일정시간 대폭 올려주거나 심지어 레벨이 기반인 PvP게임에서 습득 경험치의 양까지 배 이상으로 올려줬던 것에 비하면 매우 달라진 모습이다.
최소한 이런 캐시아이템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개발사에서 지정한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했던 이전과 달리 게임의 밸런스는 유지하되 편의성이나 꾸미기에 대한 욕구 등에 기댔다.
<스파이크걸즈>와 <에이카>를 서비스한 한빛소프트의 하나은씨는 “두 게임 모두 부분유료화를 염두에 둔 채 개발했다”며 “게임 내의 편의성 등은 아예 캐시아이템을 고려해 맞춰진 상태다”고 답했다.
<로스트사가>의 윤혜정씨 역시 “능력강화 아이템은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접근을 했다. 밸런스가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와 관련 있는 만큼 캐시에만 의존하는 게임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부분유료화 모델이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렸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돼버린 셈이다.
부분유료화가 게임 밸런스를 해치는 사례들이 줄어들면서 유저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래는 캐시라는 제목으로 검색한 <에이카>와 <스파이크걸즈>의 자유게시판 목록이다.
<에이카>의 경우에는 유저들이 캐시아이템에 대한 큰 불만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찬성이나 혹은 중립 정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게시물 역시 ‘이 정도면 괜찮은 구성 아니냐’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스파이크걸즈>는 한술 더 떠서 유저들이 캐시아이템의 도입을 요청한 사례다. 이는 두 게임 모두 게임진행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캐시아이템이 아닌 ‘편의성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유저들의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의 캐시아이템’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소프트의 이수현 과장 역시 <스파이크걸즈>의 예를 들며 “밸런스가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편의성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유저들로부터 오히려 코스튬 등의 부분유료화 아이템을 빨리 공개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부분유료화가 더 이상 게임의 밸런스를 해치는 악(惡)이 아닌 저렴한 금액으로 게임의 편의성을 충족시키는 부가서비스, 혹은 컨텐츠의 일종으로 자리잡으면서 유저들의 인식도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부분유료화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일종의 선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분유료화를 채택한 게임들이 늘어나고 -> 보다 안정적인 부분유료화 모델을 찾게 되며 -> 부분유료화 게임의 인식이 좋아지고 -> 또 다시 기획 단계부터 부분유료화를 채택하는 게임이 늘어나는 식이다.
<에이카>는 게임의 특성을 살려 일종의 펫인 프란에게 입히는 복장을 판매 중이다
한 유저는 “최근에는 부분유료화를 진행한다고 무작정 욕을 하는 경우도 없어졌다. 일단 부분유료화 게임이 늘어난 데다가 전처럼 무지막지한 캐시아이템을 파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밸런스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는 부분유료화는 오히려 유저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안정적인 부분유료화를 택한 게임이 밸런스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무리한 부분유료화를 감행했던 게임보다 오히려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부분유료화의 선순환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