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콘셉을 버린 <A3 리턴즈>. 요즘 유저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2003년 당시에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게임입니다. 모두가 영등위의 ‘18세 이용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혼자 ‘18세 이용가’를 신청하고 심지어 에로티시즘을 앞세워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섹시를 버렸다고 외치는 <A3 리턴즈>의 과거가 궁금하지 않나요? 왕년의 <A3>가 남겼던 섹시 콘셉의 갖가지 파장들을 모아 봤습니다. /(원고마감을 위해 타임캡슐을 열어버린)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파문 ① 게임 광고야? 여성용품 광고야?
2002년 겨울, 당당하게 성인전용 게임을 만들겠다는 말은 <A3>에겐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인게임이라 하기엔 당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파문으로 다가오는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아마 당시 게임잡지를 구독하고 있던 유저라면 기억이 날까요? 바로 <A3> 티저 광고입니다. 저도 당시 광고를 보는 순간 뒤에 누가 없나 돌아봤으니까요. 뒤에서 누군가 봤다면 온갖 상상과 함께 변태(?)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파문의 발단은 광고가 게재된 게임잡지의 주요 독자층이 14~18세 청소년이었다는 겁니다.
하얀 바탕에 한 방울의 피가 떨어지는 모습, 그리고 ‘첫 경험’이라는 단 한마디가 광고의 전부 입니다. 무엇이 연상되나요?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공간에 피 한 방울로 적셔 놓은 듯한 야릇한 광고의 의미는 한달 뒤에 허무하게(?) 밝혀집니다.
당시(액토즈에서는 세계 최초라는 말을 썼습니다만…)엔 처음 즐길 수 있는 성인전용 온라인게임이라는 뜻이었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로 <A3> 로고가 공개됐습니다.
파문 ② <A3>의 정체는 개봉예정 외국영화?
2003년으로 기억합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영화관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A3>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그냥 본 것이냐? 아닙니다.
개봉전의 영화를 소개하는 홍보용 리플릿에 <A3>의 캐스팅 캐릭터 ‘레디안’이 등장한 거죠. 게다가 영화 상영표까지 인쇄돼 있어 얼핏 보면 <A3>라는 영화 자료로 보입니다. 정식 게임명도 <프로젝트 A3>였으니 떡밥은 이미 뿌려진 것이나 다름 없었죠.
섹시한 갑옷을 입고 있는 사실적인 캐릭터의 모습. 영화 상영표까지 기재된 리플렛을 본 사람들은 <A3>를 영화로 착각할만 하죠. 리플릿에 적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당당히 성인 인증을 요구하니 최신 게임정보를 모른다면 당연히 속아 넘어갔겠죠.
재미있는 점은 <A3>의 대표 캐릭터 레디안의 모티브가 당시 ‘비너스의 환생’이라고 불리던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결국 영화관을 찾은 일부 관객들은 ‘레디안=모니카 벨루치’, ‘A3=개봉예정 외국영화’로 인식하게 됩니다.
어쨌든 영화관에서 하루에 6만 장 이상 리플릿을 뿌린 결과, 액토즈소프트는 영화 공개일을 물어보는 문의 전화로 곤란을 겪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파문 ③ 1년 7개월 동안 볼 수 없었던 캐릭터
아마도 가장 컸던 파문일 텐데요, 각종 전단지와 포스터에 등장한 레디안을 정작 게임에선 볼 수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A3>에 접속한 이유가 레디안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무려 19개월 동안 그녀는 실종상태였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게임 밖에서는 매일 보이는데, 게임 안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이들 캐릭터 앞에 ‘캐스팅’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죠.
당연히 유저들의 반발은 심했습니다. “레디안이 왜 게임에 등장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비스 전의 광고와 동영상에서는 매번 섹시한 자태를 뽐내던 레디안이 정작 게임에는 없었으니까요.
이런 유저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까요? 결국 유저들의 성화에 ‘레디안 스토리’라는 퀘스트가 등장합니다. “이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려면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개발사의 알쏭달쏭한 말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계속되는 파문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파문 ④ 레디안 스페셜 퀘스트의 정체는?
발음을 잘못하거나 오타를 내면 곤란한 문제에 빠지는 단어가 있습니다. 관광을 강간으로, 게임을 게이로 쓰면, 오타는 둘째 치고 그 뜻만으로도 파문이 일어나고 말죠.
레디안 퀘스트가 업데이트되면서 액토즈 소프트로부터 한 통의 보도자료가 날아옵니다. 그 당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강간’ 장면이 퀘스트에 도입되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레디안 ‘스폐셜’ 퀘스트를 통해서 말이죠.
아무리 성인게임이라지만 강간이라는 설정을 게임에 적용하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시나리오를 보면 레디안이 어린시절에 강간을 당했다는 내용이 더욱 충격적이었죠. ‘아동 성추행’이라는 금기까지 들먹일 정도로 <A3>의 줄타기는 아슬아슬했습니다.
사실 섹시를 내세웠지만 게임 안에는 하드고어로 꽉 차있으니 유저들을 납득시키려면 큰 한 방이 필요했겠죠.
어쨌든 유저들은 퀘스트를 위해 날밤을 지새웁니다. 레디안의 강간 장면과 퀘스트 완료 이후의 누드를 상상하며 마우스를 클릭했습니다. 그러나 ‘므흣한’ 마음으로 퀘스트에 몰입했지만 유저들을 흐뭇하게 하진 못 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집니다.
파문 ⑤ 섹시 파문의 결정판 ‘레디안 누드집’
당시 기술력과 PC 사양으로는 레디안의 섹시함을 게임에 그대로 녹여내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액토즈 소프트는 레디안 누드집을 발매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게임 속에서 제대로 보여 주지 못 한다면 게임 밖에서 확실히 보여 주겠다는 전략이었죠. 물론 <A3>라는 게임의 화보집이 아닌, 3D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이소아 씨의 개인 화보집으로 출판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발표가 나가면서 다시 한번 남성 유저들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공개된 그림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레디안과 <A3>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죠. 이미 공개된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했는데, 아예 누드집을 낸다고 하니 그 기대심리는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러나 <A3>의 레디안 누드 화보집은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액토즈 측에서 아무런 해명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당시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이소아 씨가 넥슨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화보집 미발매로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힌 레디안 누드, 진짜로 두번 다시 볼 수 없는 걸까요? 아쉬우니 미공개 이미지 몇 장을 이 자리에서 살짝 맛보기로 하겠습니다. 6년 전 자료를 찾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
왕년에 나왔던 <A3>의 섹시 콘셉 파문을 살펴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섹시를 강조했지만 게임 내부가 아닌 외적으로 강조했다는 것, 그리고 섹시라는 이미지는 오로지 레디안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요즘 세대의 용어로 말하자면 ‘낚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결과도 월척 수준을 넘어 만선의 기쁨을 얻을 정도였으니까요.
6년 전과 지금의 세태가 달라진 만큼, <A3 리턴즈>가 섹시 콘셉을 버린 이유를 이제는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더욱 발전된 기술로 구현된 레디안을 게임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 봐도 손색없는 레디안의 묘한 매력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겠죠?
파문 시리즈의 마무리 레디안 피규어. 이 정도면 섹시라는 꼬리표는 한방에 벗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