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이 팔렸다. 인수에만 약 47조 원, 2019년 한국 국방비 예산 46조 7,000억 원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반도체 업체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그래픽카드 ‘지포스’로 유명한 엔비디아(NVIDIA)가 손정의의 ARM을 약 47조 5,000억 원(400억 달러)에 인수했다.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다. 삼성전자, 퀄컴, 애플, 아마존, 구글 등 세계 반도체 기업이 ARM 설계도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만들고, 라이선스 비용을 낸다. 즉, ARM의 설계도는 우리가 쓰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비롯, 거의 모든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컴퓨터는 물론 휴대폰까지 엔비디아가 핵심 부품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ARM의 사업모델은 ‘오픈형 라이선스’다. 라이선스만 구입하면 이를 커스터마이징해 자체 목적에 맞게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다. 인수 이후에도 오픈형 라이선스 모델은 유지된다.
이번 인수로 ARM의 사업 중립성에 많은 우려가 있었다. 엔비디아는 기존 ARM 고객사와 경쟁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에 엔비디아는 “인수 후에도 ARM 사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ARM 설계를 쓰려면 자사 영업 비밀인 로드맵 등을 공개해야 하는데, 이는 ARM을 소유한 반도체 경쟁사 엔비디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ARM의 반도체 설계 역량을 내재화해 주력사업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신경망 ▲딥러닝에 특화된 SoC(단일 칩 시스템)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ARM은 2016년 약 33조 5,000억 원(314억 달러)에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바 있다. 당시 손정의 회장은 ‘인생 최대 베팅이다’며 ARM를 높게 평가했다.
소프트뱅크의 ARM 매각은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1분기 우버(Uber) 및 위워크(WeWork)의 가치 하락과 코로나 사태 등으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겪었다. 이에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한 ARM 매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인수 금액 중 약 25조 5,000억 원은 엔비디아 주식으로 지급한다. 이번 인수로 ARM 기존 모회사,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 주식을 약 6.7~8.1% 보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