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그래픽카드 RTX 3080 국내 가격이 결정됐다.
사상 최초로 ‘용산 프리미엄’ 없는 가격 100만 원. 지금껏 이렇게 화끈한 가격은 없다. 물량이 풀리는 족족 곧바로 매진된다. 한국에서 PC 부품이 이렇게 잘 팔렸나 싶을 정도다.
가격 공개 전까지는 구매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RTX 3080 가성비는 그야말로 괴물이지만 한국만 들어오면 비싸질 게 뻔했다. 2년 전 발매된 RTX 2080만 해도 MSRP(제조사 권장 소비가)는 약 84만 원(699 달러)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최소 150만 원부터 판매됐다.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MSRP가 같은 RTX 3080을 걱정한 이유다. RTX 3080이 ‘가성비 끝판왕’이라 불려도, 정작 한국에서는 그림의 떡이 될 게 뻔했다. RTX 2080도 그렇고 이런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제조사 권장 가격과 용산 가격의 차이”로 이어졌다.
용산전자상가와 제조사 가격 차이는 예전부터 성토됐다. 이를 두고 PC 커뮤니티에서는 ‘YSRP’라고도 부른다. 제조사 권장 가격을 뜻하는 MSRP에 ‘용산’의 영어 스펠링 Y를 집어넣은 은어로 ‘용산 권장 소비가’라는 뜻이다.
그럼 YSRP가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 원인으로 ①작은 시장 규모 ②특이한 유통 구조가 꼽힌다.
한국 유통사의 골칫거리는 시장 규모다. 한국과 미국 인구수는 대략 6배, 한국과 EU는 10배 차이난다. 한국에서 아무리 많이 팔려도 북미와 EU에 비하면 판매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가 작으니 들어오는 물량과 제조사로 낙찰받은 가격이 외국과 차이 날 수밖에 없다.
더 큰 골칫거리는 특이한 유통 구조다. 컴퓨터 부품이 우리 손으로 들어오는 간략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작사 → 유통사 → 총판 → 도매상 → 소매상 → 소비자 순이다. 제작사에서 소비자까지 중간 과정만 4번을 거치게 된다. 제조사 가격과 용산 가격이 크게 차이나는 이유다.
YSRP에 사람들은 ‘직구’로 대응했다. 용산에서 비싸게 살 바에 배송이 오래 걸리더라도 해외에서 사는 유저가 늘어났다. PC 커뮤니티에서 직구 가이드와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RTX 3080이 공개되자, “용산에서 살 바에 아마존에서 사고 말겠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룰 수 있던 이유다.
다행히 직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내 유통사들이 YSRP를 없애기 위해 판매 경로를 대거 수정했기 때문이다. RTX 3080을 용산 전자상가대신 쿠팡 같은 오픈 마켓으로 물량을 공급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재고관리와 유통망 문제로 용산과 협력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소매자 구매가 활성화되며 용산이 필수가 아니게 됐다. 이는 '용산 프리미엄'으로 발생하는 판매량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가령 에이수스(ASUS) 수입사 인텍엔컴퍼니는 "RTX 3080 초도물량 전량을 쿠팡에 넘기겠다"라고 밝혔다. 인텍엔컴퍼니를 선두로 다른 유통사도 판매 경로와 가격을 조정하는 중이다.
중간 마진이 없어지며 자연스레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됐다. 오픈 마켓에서 RTX 3080을 100만 원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2년 전 RTX 2080의 150만 원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다만 RTX 3080은 전 세계에서 품귀 현상을 겪는 ‘귀한 몸’인지라, 원활한 구매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유통사가 직접 판매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국내 PC 시장도 바뀔 것으로 전망 중이다. 변화될 점은 다음과 같다. ▲부품 시세 안정화 ▲다른 부품의 유통 과정 개선 ▲소매상의 폭리 방지 ▲쉽고 편리해진 구매 방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