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의 한 온라인게임 업체 임원들이 TIG 아지트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빠듯한 일정을 쪼개 바다 건너 게임 소식을 전해줘 무척 고마웠습니다.(관련 기사 [원문보기])
이번엔 시몬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5년 만에 찾은 샌프란시스코. 목적은 Game Developer’s Conference(GDC) 참관이었지만, 하루 ‘땡땡이’를 쳤습니다. 칼트레인(Cal Train)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로부터 40분 남짓 거리인 산호세 지역으로 이동해 지난 2월 TIG를 찾아왔던 Aeria Games & Entertainment(이하 아에리아)의 사무실을 찾아 갔습니다.
그때 미처 못 들은 미국 온라인게임 산업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최근 아에리아가 미국 부분유료화 MMORPG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비결을 알고 싶었으니까요. 아에리아 JT 부사장과 조현선 본부장으로부터 유익한 수업을 받았습니다. /산호세(미국)=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기자
■ 미국 온라인게임의 동시접속자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이유
국산 온라인게임이 해외에 진출한 것은 2000년에 들어서입니다. <리니지>가 2000년 대만에, <미르의 전설 2>가 2001년 중국에 수출됐죠. 대만(감마니아)과 중국(샨다)의 파트너들은 덕분에 두 나라 최대의 게임 퍼블리셔가 됐습니다.
이후 국내 온라인게임은 많은 나라에 수출되면서 성과를 높였습니다. 이런 소식은 으레 “○○게임 △△서 동접 □□만 돌파!”라는 식으로 국내에 전해졌죠.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도 꽤 많은 게임이 수출됐습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는 동접 소식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숫자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국내 시장도 경쟁이 심해 동접 1만 명이 만만한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하는 게임이라면 동접 1만은 그리 높은 장벽이 아니죠.
반면 북미에서 동접 ‘1만 명’은 굉장한 성적입니다. 게임의 주류가 콘솔인데다, <WoW>를 빼면 MMORPG의 유저층도 아직 두터운 편이 아니니까요. 이런 까닭에 미국으로부터 “동접 □□ 돌파!” 같은 소식이 들리기 어렵습니다.
아에리아는 현재 미국에서 열 개의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가장 성적이 좋은 <라스트 카오스>의 동접이 1만 명 남짓입니다. 그런데 이 1만 명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한국의 1만과 다르니까요. 대개 통계가 그렇듯, 숫자는 그 뒤를 좀더 꼼꼼히 봐야 합니다.
■ 최고 동시접속자 기록을 다시 보아야 한다?
국내 MMORPG의 경우, 하루 중 동접 수가 가장 높은 때는 자정(밤 12시) 부근입니다. 이 시간대가 지나면 동접 그래프는 확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죠.
그런데 미국은 좀 다릅니다. 나라가 넓어서죠. 뉴욕이 밤 12시면 LA는 아직 오후 9시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하와이를 빼더라도, 동부와 서부의 시차가 3시간. 미국의 주요 온라인게임 유저층은 LA나 뉴욕, 보스톤 등 대륙 양쪽의 해안 부근 대도시에 몰려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 동접자 수치는 하루에 최소 두 번 피크(peak, 최고 수준)로 올라갑니다.
아에리아의 JT 부사장은 “(게다가) 우리는 미국 외부 IP의 접속을 막지 않는다. <라스트 카오스> 유저의 35% 가량이 유럽 쪽에서 들어온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유저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유럽 유저들은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죠. 아에리아 <라스트 카오스>의 동접 그래프는 높은 수준을 길게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최고 동접 대비 실제 플레이 유저(액티브 유저) 수가 많겠죠. 따라서 한국보다 최고 동접 대비 매출액이 훨씬 높을 거고요. 이는 같은 최고 동접 수치가 나오더라도, 글로벌 서버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매출액이 특정 지역 중심 서버 운영 회사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1만 명 수준의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하면서 높은 매출을 올리는 <라스트 카오스>.
■ 지갑을 열기는 어려워도, 열리면 많이 나오는 시장: 미국
그렇지만 동접이 바로 매출액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을 하더라도 돈을 쓰는 사람의 비율이 국가마다 다르니까요. 돈을 내는 비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럿 있겠지만, 결제 수단의 접근성 차이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일반적인 국내 유저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실 겁니다. 한국은 돈만 있으면 게임 내 캐시 아이템을 너무나 쉽게 살 수 있는, 세계에서 결제수단이 가장 다양한 나라이니까요. 휴대폰만 있으면 ‘뚝딱’이잖아요.
미국은 그게 어렵습니다. 휴대폰 결제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죠. 휴대폰으로 결제하려면 게임회사는 이동통신사에게 거의 50% 가까운 수수료를 내야 하니까요. 선불카드(오른쪽 이미지)도 판매처가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제한적인 수준입니다. 현재는 신용카드가 가장 우세한 결제수단이죠.
미국에서 신용카드는 대개 성인만 가질 수 있고, 신용카드 정보를 온라인에 남기는 것도 저어하는 경향이 높아, 한국에 비해 결제율(Paying Rate)이 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액티브 유저의 약 5% 정도.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이스페이스’ 등 소셜커뮤니티 사이트 등 덕분에 소액결제가 대중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질 전망도 크다고 합니다.)
지갑을 열기는 어려운 반면 한번 열면 나오는 돈의 규모는 한국보다 큽니다. 물가 차이도 있고, 신용카드 결제자들이 대부분 20대 이상이어서 지갑이 상대적으로 두둑한 탓도 있겠죠.
<라스트 카오스>의 경우 한달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결제 유저 1인 평균 결제액)가 90 달러(약 12만 원) 남짓이고, 최근 100 달러(약 13만3천 원)를 넘기기도 했답니다. 신용카드 결제의 경우 아이템을 사서 쓰고 나서는 무르겠다고 하는 식의 ‘Fraud’(기만 행위)가 좀 골치 아프지만, 중국 유저가 상대적으로 별로 없는 <라스트 카오스>는 이런 위험도 적다고 하네요.
현재 미국 아에리아의 직원 수는 약 60명 규모. <라스트 카오스>팀 멤버들. 왼쪽부터 Maurice Corcio(GM), Tim Adams(Associate Producer), Susan Revelt(Producer), Jamie Marazzo(Senior GM), Rudy Pham(GM).
■ 아에리아의 보배, 200명의 게임 현인(賢人)
<라스트 카오스>는 현재 <메이플스토리>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부분유료 MMORPG입니다. 주춤한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성과를 올렸을까요?
JT 부사장은 “개발사의 지원 등 다른 여러 요인도 많겠지만 커뮤니티 관리가 핵심”이라고 밝힙니다. 그 중에서도 ‘Game Sage’(게임 현인, 賢人)라고 불리는 200명의 자원봉사자(volunteer)를 자랑하더군요.
이들은 자발적으로 각 게임의 운영과 커뮤니티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라스트 카오스> 담당 프로듀서 Susan Revelt는 “Game Sage들은 게임 테스트 뿐만 아니라 해킹이나 현거래 등의 모니터링, 이벤트 운영까지 직접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JT 부사장은 “마케팅 부문에서 바이럴 영역이 50%를 차지한다. 특히 길드 리더 등으로 구성된 Game Sage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덕을 보고 있다. 스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과 같은 기존 유저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우리나라의 ‘싸이클럽’ 같은 서비스)를 활용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친구를 게임으로 초대하거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배너 등을 통해 우리 게임 홍보활동을 해주면 아에리아 포인트를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에리아가 넥슨닷컴에 이어 미국의 게임포털 중 가장 많은 등록 유저(약 600만 명)를 보유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아에리아와 커뮤니티의 끈끈한 관계는 최근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실시한 <세피로스>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1차 테스트를 실시한 <Turf Battles>(세피로스).
아에리아의 조현선 본부장은 “<세피로스>는 원래 미국에서 ‘Turf Battles’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된 적이 있다. 퍼블리셔의 사정으로 서비스가 중단됐는데, 우리 유저들이 우리 사이트에 100 페이지 가량의 게시물을 올리며 아에리아 게임즈가 서비스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에리아는 유저들의 성화에 <세피로스>의 개발사인 이매직에 연락을 취해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죠. 1차 테스트 이후에는 유저들이 원하는 시스템 추가를 위해 투표까지 진행했다고 하는군요. 유저들이 요청한 주요 시스템적 변화를 적용하기 위해 오픈베타 시기도 늦췄다고 합니다.
■ 거침 없는 사업 확장, 과연 그 미래는?
아에리아는 지난 해 8월 독일에 유럽 지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런칭한 <샤이아>를 포함해 <군주> <십이지천> 등 5개 타이틀을 이미 확보했다고 합니다. 2~3년 후 미국보다 더 성장이 빠를 것으로 예상하고, 발 빠르게 뛰어든 거죠.
<라스트 카오스>의 경우(전체 유저의 35%가 유럽)처럼 현재 아에리아의 포털 내 유럽 유저들의 비율이 상당한데다, 모국어로 서비스를 할 경우 그 규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JT 부사장은 “퍼블리싱에서 미국보다 경쟁이 심하지 않다. 유럽 퍼블리셔들은 주로 대기업 계열이어서 느리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그게 우리의 기회”라고 밝혔습니다.
아에리아 게임즈는 앞으로 2개월 내에 2개의 웹 브라우저 게임을 런칭할 예정입니다. 행보가 거침없습니다.
조현선 본부장은 “입사 이후 회사에 조용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퍼블리싱 계약이나, 베타 테스트, 상용화, 해외 지사 설립 등 새로운 이슈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aggressively’(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다. 계속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에리아는 커뮤니티 관리를 통해 유저풀을 확대하고, 확대된 유저풀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게임을 런칭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런 전략이 눈에 띄는 큰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소속 포털과 관계 없이 다양한 온라인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대중적으로 온라인게임의 활성화하지 않는 시장입니다. 포털에서 유저풀을 잡고 게임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이 계속 통할 수 있을지 아에리아를 통해 좀더 지켜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