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게임 하나로 그 어렵다던 미국 온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한 회사가 있습니다. <샷 온라인>의 미국 퍼블리셔 온네트 USA. 스무 명 남짓의 이 조직을 이끄는 이는, 4년 전 홀홀 단신 미국으로 날아갔던 김경만 대표입니다.
미국에서는 Kevin으로 통하는 그는, 낯설고 물설은 맨땅의 경험 덕분에 온라인게임 미국 수출 관련 컨퍼런스 강사 섭외 1순위에 오르고 있죠. 미국 온라인게임 산업을 공부하러 간 시몬, 운 좋게 1대1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산호세(미국)=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기자
■ ‘아마추어들’의 첫걸음 떼기
웃겼다, 시작은. 2005년 소프트웨어진흥원의 글로벌 서버 지원 1호 게임으로 선정된 <샷 온라인>. 수출 계약을 염두에 두고 글로벌 서버에 올려놨다. 당연히 마케팅이나 운영을 제대로 못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게임에 접속하는 유저들이 생겼다. 매출도 쏠쏠하게 발생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돈을 빼올 수 없었다. 당시 매출을 쌓아놨던 곳에서 미국 외부 법인 계좌로는 하루에 1,000 달러(약 133만 원) 이상 인출할 수 없었던 탓이다.
“돈은 계속 쌓이는데, 빼올 수가 없었죠. 미국에 법인을 세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다 빼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날아왔죠.”
2005년 말 빼올 돈을 믿고 비행기를 탔지만, 미국에서 회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어도 문제였고, 현지 사업관행도 잘 몰랐으니까. 그때 JY가 있었다.
“JY(진용운 現 부사장)는 <샷 온라인> 글로벌 서버의 유저였죠. 어렸을 때 미국 오하이오주로 유학을 왔던 학생인데, 친구들과 글로벌 서버 운영을 대신할 정도로 열혈 유저였어요. 도움을 요청하니까, 자기 짐을 다 싣고 3일 운전해서 산호세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친구와 회사를 세팅했죠. 법인 계좌 트는 것부터 집 구하는 것까지. 제가 한국에 출장가면 혼자 회사를 지키고. <샷 온라인>을 잘 했으니까 운영자 역할도 하고, 구글이나 MMORPG.com 광고까지. 아무튼 아마추어 둘이서 어수룩하게 이것저것 했습니다.”
물론 기술 지원 등은 한국에서 다 받았다. 현지에서 성공하려면, 현지 사람과 부대끼는 진짜 미국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만, 당시엔 그럴 수 없었다.
“여기 기술직은 너무 비쌌고, 게임 포털을 해본 경험은 아예 없었죠. 처음 2년 동안은 한국에, 한국 사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어요.”
<샷 온라인>은 이제 북미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스포츠 게임의 강자가 되었다.
■ 성장과 성장통(痛)
실질적인 첫해인 2006년부터 시작된 흑자 경영.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었지만, <샷 온라인>은 꾸준히 몸집을 키웠다. 2006년 약 100만 달러(약 13억5천만 원)였던 매출은 이듬해 200만 달러(약 27억 원)까지 올라갔다.
<샷 온라인>의 결제 유저 비율(Paying Rate)은 무려 15% 수준. 보통 5% 내외인 다른 게임 결제율의 세 배에 이른다. 필드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골프 게임을 하는 이들의 지갑이 두둑한 덕을 봤다. 1인당 한달 평균 결제액(ARPU)도 80~100 달러(약 10만~13만 원) 수준.
“스포츠 장르는 동접은 많지 않지만, 결제율이 높고 결제 금액이 많습니다. 수익이 좋은 점 말고도, 동접이 적으니 관리가 편하다는 게 장점이 있죠. 스포츠 장르는 문화적 차이도 덜하고, 번역할 것도 별로 없어요. 유저층이 40~50대 층이어서 ‘Fraud’(사기)도 덜 하죠. 참, 작년에는 1년에 1만5천 달러(약 2천만 원)을 쓴 유저도 있었어요.”
모든 퍼블리셔가 그렇듯 라인업 하나로는 아쉬웠다. <샷 온라인>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한 2007년부터 게임을 늘렸다. 온네트 USA의 게임포털 ‘게임스캠퍼스(www.gamescampus.com)’에 게임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샷 온라인>만큼의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쉽지 않았다.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며 방황하던 시기였죠. MMO도 해볼까 했는데, 기대만큼 성과가 안 나오더군요. 낚시게임(피싱온)은 골프랑 분위기가 비슷해서 그런지 출발은 나쁘지 않았는데, 개발사가 문을 닫아서 서비스를 내려야 했죠. 가져오려던 MMO들은 다른 곳에서 가져가버리고. 게임스캠퍼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이것저것 다 갖다 놓은 잡동사니 모음이 된 것은 아닌지….”
2007년부터 라인업을 늘려 지금은 7개가 게임스캠퍼스에 걸려 있다.
◆ 점점 덩치를 키운 회사. 미국이어서 겪었던 해프닝 두 토막. “2007년 여름, 친구 사이인 두 명이 입사했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그 중 ‘한 친구의 눈이 몽롱하다. 대마초를 하는 것 같다. 놔두면 회사에 문제가 된다’고 보고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가서 물어봤죠. 그랬더니 그 친구는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어요. 인사 담당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죠. 인사 담당자가 가서 그 친구와 이야기를 했죠. 그 다음날부터 둘 다 회사를 안 나오더군요. 황당했습니다.” “초창기 직원 뽑을 때 이것저것 묻다가, 혈액형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그냥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인사담당자가 거의 사색이 돼버렸어요. 만약 그 지원자가 안 뽑히면, 혈액형 때문에 안 뽑혔다고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미국은 면접을 볼 때 직무에 대해서만 물어봐야지, 그 범위를 벗어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 슬러거, 이제 홈런을 노린다
<샷 온라인>이 있어 다행이었다. 후속 게임들의 부진 속에 더욱 부각되는 <샷 온라인>의 선전은 한국과 다른 북미 온라인게임 유저 취향을 보여 준다. 국내에서 흥행했던 <카트라이더>와 <오디션>이 미국에서 쓴맛을 본 반면, 골프 게임이 뜻밖의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북미 시장은 한국과 달라요. 우리나라 캐주얼 게임은 방에 들어가면 일단 ‘ㄱㄱㄱ’를 외치기 시작하죠.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방에서 쫓겨나기 십상이고요. 뭐 물어볼 틈도 없죠. 이런 방식의 캐주얼 게임들은 미국에서 대부분 고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게임은 남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인데, 한국에서는 너무 ‘대전’에만 포커싱돼 있는 것 같아요. 혼자 게임을 배우거나 연습할 수 있는 모드도 없거나 부족하고요. 반면 <샷 온라인>은 대부분의 미국 유저들이 골프을 이미 알고 있어서 접근이 편한 게임죠. 턴 방식으로 채팅을 쉽게 할 수 있고요. 또 혼자 연습할 수 있는 모드도 있죠. 이게 미국 유저들에게 어필했던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이 온네트 USA가 <슬러거>(미국명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의 흥행을 자신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미국 대부분의 유저들이 야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채팅이 가능한 일종의 턴 베이스니까. 연습 모드도 당연히 들어 있고. 게다가 미국의 국기(國技)에 해당하는 야구 아닌가.
“자이언트 구장의 가장 싼 좌석이 25 달러(약 3만3천 원)에요. 3루 더그아웃 뒤에서 보려면 180 달러(약 24만 원)고요. 입장료를 평균 100 달러(약 13만5천 원)으로 치고, 거기에 뭐 사먹는 것까지 더하면 평균 1인당 비용이 150 달러(약 20만 원)쯤 되잖아요. 거기에 보통 4만 명 정도 들어오니까, 한 경기에 야구장에서만 600만 달러(약 80억 원)를 버는 거죠. 이런 경기를 보는 친구들이 게임을 하면 지불 능력이 되는데, 요즘 페이스북 등으로 유저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보면 한번 붐만 붙으면 온라인 야구게임은 정말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이미 미국에는 판타지 스포츠에 두터운 팬들이 있는데,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에도 매니징 성격이 많이 있으니까 흡인이 어려울 것 같지 않고요.”
LA 에인절스 구단 공식 매거진에 나온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의 지면 광고.
MLB 공식 라이선스는 천군만마. 다른 게임들은 미국 매체에 기사가 나오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는 라이선스를 딴 이후 매체를 술술 탄다. MLB 라이선스의 위력은 게임 내에서도 그렇지만, 게임 밖에서도 엄청나다.
“관심이 달라졌죠. 벤처 캐피털들까지 관심을 더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요. 패키지 게임에서 야구가 골프 게임 시장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하니까,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도 <샷 온라인>의 두 배 정도 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미국 친구들도 한번씩 해보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고요. 심지어 게임 테스트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친구는 테네시에서 차 몰고 3일만에 회사를 찾아와 입사할 정도로 게임에 푹 빠졌죠.”
(※ 지난 달 19일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는 아직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보이지는 못 하고 있다. 다만, <샷 온라인>의 초기 성적보다는 월등히 앞서고 있다. 미국 시장은 역시 느리다.)
■ 미국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향해~
MLB 라이선스로 온네트 USA는 미국 주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축구, 하키, 당구 등 많은 스포츠게임 개발사에서 연락이 오고 있는 것도 그러한 증거. MLB 라이선스를 땄을 때 <샷 온라인>의 성과가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 <MLB 더그아웃 히어로즈>의 성공은 다른 게임과 라이선스, 마케팅을 위해 훨씬 더 큰 지렛대가 될 수 있다. (※ 공략 6개월 만에 MLB 라이선스를 딴 사연은 추후에 다른 기사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게임은 니치(niche) 마켓이 아닙니다. 지난 해 60 달러(약 8만 원)짜리 <매든> 시리즈(미국 풋볼 게임)가 400만 장 정도 팔렸고, 야구 게임은 200만 카피 정도 팔렸습니다. ‘페이스북’ 등 때문에 지금 미국의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더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죠. 유저들의 인터넷 이용패턴은 이메일→뉴스→쇼핑→커뮤니티 식으로 발전한다고 보고 있어요. 이메일과 뉴스 보는 데 이어서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쇼핑 사이트들이 성장했고, 그 뒤를 ‘스페이스북’이나 ‘마이스페이스’가 이어 나갔잖아요. 이제 곧 온라인게임의 시대가 올거예요.”
게임의 시대를 앞서 가기 위해 김 대표는 회사의 구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미국의 방식대로 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 처음 온네트 USA를 설립했을 때부터 ‘현지 사람들이 함께 부대끼는 진짜 미국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의 메인스트림에서 계속 성장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희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장님도 이쪽 방식대로 일하는 게 맞다고 인정해 주신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완전히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나 게임 소싱 등에서 본사와는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있고요. 미국에 진출할 때, 한국 사람으로 임원진을 쫙 채우고, 말단만 현지인을 뽑는 구조나, 인사 등을 한국 본사 기준으로 해 현지의 연속성을 떨어뜨리면 미국 사업은 성공하기 정말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