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오픈마켓의 선두주자인 애플 앱스토어가 9개월 만에 10억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가 하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등이 속속 오픈마켓에 진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오픈마켓은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산 휴대용 게임기 GP2X Wiz를 개발한 게임파크홀딩스는 오는 6월 중에 오픈마켓을 열겠다고 발표했고, 삼성과 SK텔레콤도 오픈마켓에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오픈마켓 활성화 앞에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의 등급심의다.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판매되는 모든 게임은 등급심의를 받아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을 올리는 오픈마켓의 취지와 상반되는 셈이다.
이에 게임위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오픈마켓 게임컨텐츠 심의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의 박태순 위원을 비롯해 한국사이버대학교의 곽동수 교수, NHN의 최승훈 실장, 컴투스의 이선 이사 등이 참석해 국내 오픈마켓의 활성화와 달라져야 할 심의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스이즈게임은 세미나에서 나온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이들의 발언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현행 심의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두 공감
토론에 앞서 참석자 모두가 오픈마켓에 대한 현행 게임위의 심의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공감했다.
개발사에서 직접 게임의 심의를 넣고 빨라도 일주일 이상이 소요되는 지금의 심의방식으로는 오픈마켓의 컨텐츠 공급량과 특수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 발표를 맡은 한국사이버대학교의 곽동수 교수(오른쪽 사진)는 “우리나라의 앱스토어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심의로 인해 게임이 출시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심의제도로는 오픈마켓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심의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오픈마켓의 중요성과 게임심의의 제도적 한계를 예로 들며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세미나에서 나온 게임심의제도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등급신청의 주체와 심의하는 주체가 누가 될 것이냐의 문제, 그리고 사전심의와 사후심의가 토론의 화두가 되었다.
■ 문제 ① 심의를 신청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주제는 ‘심의를 신청하는 주체’에 대한 문제다. 게임위의 심의제도는 국산 게임은 개발사가, 외산 게임은 퍼블리셔가 직접 심의를 넣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각 자치단체에서 법인 등록을 한 개발‘사’만이 심의를 받을 수 있어 법인을 등록하지 않은 개발자 한두 명이 만든 오픈마켓용 게임컨텐츠는 아예 심의 자체를 받을 수 없다.
심의 수수료와 까다로운 심의 방식, 서울까지 직접 올라와서 심의를 받아야 하는 점 역시 문제가 된다.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김민규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게임 유통·판매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개인이 담당하기에 부담되는 심의를 운영사나 전문회사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픈마켓이 활성화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컨텐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존의 심의방식이 아닌, 심의과정을 일률적으로 처리할 중간업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법률적인 해석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왔다.
한편, 법률적인 해석을 조금 바꾸면 시장의 큰 혼란 없이도 지금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법무법인 디카이온의 홍원의 변호사는 “게임물의 심의등록을 요구하는 게임산업진흥법 21조에는 사업자 등록증이 있는 법인이 아닌 개인도 심의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는 만큼, 이 부분을 강조해 개인 개발자도 심의신청이 가능하게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빨라도 내년 이후에나 통과될 전망이고, 그 전까지는 게임위도 특별한 행동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홍 변호사의 의견은 더욱 힘을 얻었다.
■ 문제 ② 효율적인 등급심의를 위한 방안
‘게임을 심의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운영사가 직접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재 게임위의 인력으로는 처리하기에 무리가 있고, 설사 처리한다고 해도 비즈니스적으로 이미 늦은 시기에 심의가 나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홍원의 변호사는 “게임위가 반드시 ‘스스로’ 등급심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퍼블리셔가 게임위에게 등급권한 결정을 양도받아 대리로 처리하면 될 것”이라 말했다. 게임위는 운영사에게 등급심의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통제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맡으면 된다는 뜻이다.
모든 게임을 게임위가 일일이 심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개발사들의 의견이다.
NHN의 최승훈 실장도 “등급평가에 공인제도를 도입하면 된다”며 홍 변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게임위에서 교육을 받은 공인 등급평가인이 운영사와 계약을 맺고 게임위의 등급심사를 대신하는 공인등급평가인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만 최승훈 실장은 “18세 이상의 게임은 등급심의에서 실수가 빚어졌을 때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게임위에서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제 ③ "자율규제는 아직 이르다"
최승훈 실장은 “사전심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어디까지나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 말했다. 오히려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한창 출시되고 있는 게임을 심의한 후 내용수정을 요구하는 편이 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운영업체의 자율심의를 주장한 컴투스의 이선 이사(왼쪽 사진) 역시 자율심의를 하되 개발자가 아닌 운영사에 자율심의를 맡기고 그에 걸맞은 강력한 패널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선 이사는 “오픈마켓이 열리면 성인 컨텐츠의 무분별한 유통만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곳이 반드시 생긴다. 그럴 경우에 대비해 전체 서비스를 중지하는 수준의 강력한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빠른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별도로 모든 참석자는 ‘가능한 빠른 법/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게임로프트코리아의 조원영 대표는 현행 심의제도로는 많은 해외 퍼블리셔들이 오픈마켓을 위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며 “지금 상태라면 한국의 앱스토어는 국내 이용자들에게 별다른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국내에서도 다양한 오픈마켓이 생겨나려는 이상, 이를 위해서라도 빠른 법/제도적인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픈마켓 시장에서 해외에게 크게 뒤쳐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게임위의 박태순 위원은 “지금으로서는 개정안이 언제 통과될지 모른다. 법이라는 게 신속하게 바뀌고 명확한 법적근거를 만들어 주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최소한의 법적기준을 만들어서 운영의 묘를 살리는 수단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태순 위원은 “세미나에서 나온 개발·운영사들의 발언을 참고해 가능한 빨리 방법을 찾겠다”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