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스승의 날 입니다. 5월 14일에는 연인에게 빨간 장미를, 그리고 5월 15일에는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드리는 날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날이지요.
요즘은 각종 촌지와 치맛바람으로 스승의 날이 많이 왜곡되기도 했습니다만,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되새겨 봅니다. 스승이라고 단지 학교에 계시는 분만 떠올려선 안되죠?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무형의 모든 존재가 바로 스승입니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도 어릴 적 다양한 게임을 즐기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게임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든, 자신의 가치관이든, 또는 고정관념 타파든 말이죠. 그들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디스이즈게임이 올해 스승의 날을 맞아 특집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게임으로부터 ○○○를 배웠다 - 개발자 편> 지금부터 확인해 보시죠. /디스이즈게임 취재팀, 정리=정우철 기자
고등학교 3학년 때 등장해 오락실을 주름잡던 <스트리트 파이터 2>는 게이머였던 나에게 대단한 재미와 영감을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락실에 갔다가 본 ‘개조’ <스트리트 파이터 2>는 개발자를 꿈꾸던 내가 받은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개조 스파>는 개발자가 된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영감을 주었다. 당시에 나는 ‘게임은 현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념을 통렬하게 깨 준 게 바로 ‘개조 스파’였다.
수학자들이 허수 i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 이러했을까?
처음의 개조 스파2는 충격적이었다. 물론 밸런스도 형편 없었다. 그후, 여러가지 변종버전이 나오면서 점차 게임적인 밸런스도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이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 땅아래에서 올라온다던가, 화면을 뒤덮는 장풍을 쏘아댄다던가, 화면의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날아가는 선풍각 등의 신기한 기술이 화면을 뒤덮었다.
생각의 틀을 뒤바꿔버린 '천하무적 승룡장풍권'.
사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의 틀이라는 게 존재한다. 때문에 평범한 사람도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다 보면 생각의 틀에 갇히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평균적으로 게임업계의 기술적, 그리고 인적 자원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최근 선보이는 게임도 비슷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도전하는 일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생각의 틀을 깨는 게임을 찾아보기 점점 힘들어진다.
뭔가 하나를 만드는 데도 사람들이 많은 생각하고, 토론하고, 조사해서 만드는 과정이 확립되다 보니 품질은 좋아졌지만 옛날 고전 게임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참신함은 점점 잊혀진 기억으로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지금, 그 반대방향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동하고 나서 생각하는 개발방식이 필요하다. 개조 스파2는 기획서로 만든 후, 다듬고 토론해서 구현하는 일반적인 게임회사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임은 그후 많은 게임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공중에서 장풍을 쏘는 아이디어는 <사무라이 스피리츠>에서 우쿄의 기술로 등장하고, 장풍을 두 개 이상씩 쏘는 아이디어도 <킹 오브 파이터즈>에서 등장하게 된다.
MMORPG 라는 장르의 특성상 기획과 운영이 보수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한정된 시장 크기 안에 비슷비슷한 게임들만 가득차게 된다면 결국 유저들은 MMORPG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위기를 상상할 때마다 나는 개조 스파2의 쇼킹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 개조 스트리트 파이터 2: 1990년대 초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기발한 개조 버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류가 대각선으로 장풍을 쏘고 가일이 공중에서 잡기를 하던,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변칙 플레이의 천국이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가능했던 것. 개조 버전도 점점 다듬어지면서 나중에는 상당한 완성도를 선보였다.(편집자 주) |
워낙 야구 게임을 좋아해 예전부터 <하드볼>이나 <하이히트 베이스볼> 같은 미국에서 만든 야구 게임을 많이 즐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즐긴 게임을 꼽자면 역시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2>였다.
나에게 야구 게임의 참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게임. 특히 이 게임에서 감명 받은 것은, 타자와 투수의 기록과 통계라는 ‘수치’를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로 만드는 것이었다. 야구 기록을 게임 속에 적용하는 궁극을 봤다고나 할까?
<하이히트>를 자세히 보면 단순히 숫자 하나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결정하지 않았다. 즉 단순하게 타율이 높다고 해서 타자의 능력이 좋거나, 방어율이 낮다고 해서 투수의 능력이 좋다는 식으로 만들지 않았다.
능력치 하나하나에 아주 절묘하게 기록이 적용되어 있다.
일부 캐릭터의 능력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에디팅’으로 고쳐 보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수정하더라도 결국 원본이 더 뛰어났을 정도였다. 정말 개발진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이히트 베이스볼 2002>를 통해 야구 게임의 참 재미, 기록을 게임 속에 적용하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야구 게임을 좋아했다고 해도 미국 게임쪽을 주로 했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등 일본에서 제작된 야구 게임을 즐겨 한 것은 아니다. <마구마구>의 게임 시스템이 잘 보면 일본 야구 게임보다 미국 야구 게임에 좀더 가까운 것은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웃음)
사실 선수는 기록으로 말할 뿐 능력치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어울리는 것을 ‘논다’고 합니다. 할 일없이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도 집에서 ‘논다’고 합니다.
마당패들이 한판 춤을 벌일 때도 이제부터 ‘놀아본다’고 합니다. ‘논다’는 게 도대체 뭘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게임을 할 때 우린 ‘플레이’를 한다고 합니다. 게임에서의 ‘플레이’는 ‘논다’와 동일어입니다. 게임의 ‘논다’는 말에는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놀이를 위한 ‘너’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놀기 같은 개그 유행어도 있지만 온라인게임 속에서 혼자 놀긴 힘듭니다.
너가 있고 네가 있을 때 놀이는 비로소 색깔을 띠고 광채를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온라인놀이’를 할 때 너는 익명입니다.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와 나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관심과 같은 주제를 위해 매일 그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접속하는 것입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땐 하찮고 작은 컴퓨터 화면 속의 사회이지만, 이 게임사회 속의 놀이는 놀랍도록 흥미롭습니다. 전우애라는 것은 군대를 다녀와야 생깁니다. 애정은 이성을 수십 번도 더 만나야 생깁니다. 배려는 세상을 오래 살아 봐야 생깁니다.
하지만 게임사회 속에선 전우애와 애정과 배려가 넘칩니다. 오프라인의 어떠한 만남보다도 더 격동적입니다.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합니까. 인류의 어떤 ‘놀이’에도 이처럼 강력한 커뮤니티가 있는 ‘놀이’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을 ‘노는’ 유저에서, 그 ‘노는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드는 개발자가 됐습니다. 올해 하반기중 선보일 <패온라인>을 마무리하면서 항상 견지하려 노력하는 첫 번째는 초심입니다. 맨처음 온라인게임을 접했을 때 느꼈던, 그 놀랍도록 황홀한 환타지세계에 대한 경외심과 달콤한 경험을 잊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게임을 만들면서 ‘놉니다’. 내일도 그럴 것이고 모레도 그럴 것이며, 어쩌면 아들, 손자 대까지도 나는 게임과 ‘놀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 속에서 ‘노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찔하고 즐거운 경험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놀면’ 즐거운 인생이고, ‘못 놀면’ 괴로운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파이날 판타지 3>(이하 FF3)를 즐겼던 중학생 시절, 당시에는 지금처럼 RPG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RPG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일본어라는 거대 장벽 앞에서 언어도 모르고 진행조차 쉽지 않은 게임을 끈기 있게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이머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나 역시 더 이상 교환 할 게임이 없는 상태에서 우연찮게 집어왔던 <FF3>, 하지만 이 게임이 나와 내 친구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시절(はい와 いいえ조차!), 우리가 RPG를 클리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오직 하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든 NPC에게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마을 사람 전체와 이야기하고, 막히면 또 다시 마을 사람 전체와 이야기하는 식이었다(그 시절 게임 키드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장벽은 실제 물질세계에 존재한다.
친구와 나는 이런 방법으로 <FF3>를 차근차근 풀어 나갔고, 점차 <FF3>의 게임 시스템과 시나리오 진행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으니, 비공정을 얻고 난 어느 순간부터 게임의 진행이 완전히 막힌 것이다.
거의 2주일이 넘도록, 친구와 내가 수없이 반복 플레이를 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의 대사를 외울만큼 반복 플레이에 한없이 높아져버린 레벨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점점 지쳐서 반 포기상태가 되었을 무렵,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공정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결정적인 이벤트를 발견한 것이다.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한 후, 게임팩을 바꾸기로 결심한 친구는 게임 매장으로 출발 직전,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 우연히도 바다 위를 비공정으로 마구 날아다니면서 장난을 치다가 바다로 들어가는 이벤트를 발동시킨 것이다.
망망대해 위의 비공정이 잠수함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이 바로 ‘노틸러스호’의 잠수 기능(바다 위에서 A키)이다. 한 방울의 낙수가 모여 바위를 뚫듯이 끝없이 두드리면 결국 문은 열리는 것이다.
'끝없는 도전만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FF3>은 당시 중학생인 우리에게 그런 가르침을 줬다.
우리는 종종 수많은 핑계들을 이야기한다. '언어가 안 되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타이밍이 나빠서',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만, 해내는 사람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그들은 불가능의 환경 속에서도 이뤄내기 때문이다.
게임이 주는 교훈은 단순히 시나리오만의 교훈은 아닐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생긴 경험, 그리고 함께 플레이를 하면서 얻게 되는 감성적인 교류,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게임에서 얻게 되는 가장 큰 감동과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 그외에 얻은 것들 -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교훈 : 2주 동안의 극한의 노가다로 인해 '노틸러스호’의 잠수 이후부터 보스까지는 너무나 쉽게 클리어했다. - 한글화의 열망 : 참고로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는, 한글로 된 RPG를 해보는 것이었다. -인생의 성공(?) : 그때 나와 단짝이었던 게임 키드는 <FF> 시리즈를 위해 결국 일본어를 마스터했고, 그것을 계기로 현재 대기업 일본 무역 담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연치 않게, 불행하게도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가끔 나는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호기심이 발동하면 생존 법에 대한 책들을 사서 열심히 읽어 보는 편이다.
그러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 있으니, 바로 <로스트 인 블루> 시리즈이다.
<로스트 인 블루>를 하다 보면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된다.
어떤 것이 먹을 수 있고, 어떤 것을 날 것으로 먹어야 하는지 익혀서 먹어야 하는지 등 우리 식생활에 관련된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또 바닷가의 고립된 섬에서 따뜻하고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야 충분한 휴식과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불을 피우기 위한 노력들과 사냥을 위해 도구를 만드는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젠,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살아남기 위한 행위들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고 생각한다.
미지의 상황에 대한 간접 경험, 그것은 곧 살아가는 데 필요한 또 다른 스승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 이미지는 무인도 서바이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3>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특히, 이후 시리즈에서는 없어졌지만 우주를 부유하듯 공중을 날아다니는 대점프는 '리얼리티'라는 현실과 'thisisgame'이라는 비현실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줬다. (적절한 김대기의 적절한 한마디)
이것은 게임 속에서만 머무르던 나에게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숙제를 던져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은 게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기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승패를 떠나, 어떻게 하면 더욱 자유로운 방식으로 플레이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게 되었다. <버추어 파이터 3>의 대점프킥은 다른 기술에 비해 별다른 장점이 없는 데 비해, 엄청난 빈틈을 가진 쓸모 없는 기술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나는 대점프킥의 엉덩이에도 타격 판정이 있다는 것을 이용해 '뒤돌기 후 뒤로 대점프킥을 하면 근접한 상대를 때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심지어 '등을 돌리는 데다 뜨기까지 한다' 것을 응용해 상대의 방심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고안했다.
이 기술이 바로 당했을 때 캐릭터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상대 유저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대미지를 주고 마는 공포의 '우주류 Kick'인 것이다.
이것이 우주류 대 점프 킥이다!!! (편집자주: 근거는 없습니다 ^^; )
이후 나는 새로운 기술들을 연구, 보급하는 단체인 <우주류 필살기 연구회>를 창시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자유도 안에서 메카닉 테란 등 수많은 전략들을 창시했고, 그 자유를 감당하기 위한 '적절함'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무언가 '적절'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반드시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삼라만상의 이치를 받아들이고 평상심을 찾게 된다면, 즐거움이 곧 당신의 스승이 될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을 졸라서 컴퓨터를 샀고, 이런 저런 게임들을 즐기는 데 심취했던 때다.
항상 사이드 횡스크롤 액션이나 종스크롤 비행슈팅 내지는 어드벤처 게임 같은 것만 하다가 어느 날 잡지에서 발견한 게임이 <데스트랙>이었다.
어느날, Sly(슬라이)라는 이름의 적을 추격하려고 너무 열심히 악셀을 밟다가 그만 키보드 위쪽 향키를 뚝! 하고 부러뜨렸다. 당시 컴퓨터 한 대의 가격은 요즘 경차 한 대의 가치와 맞먹었으니….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부모님에게 야단맞을 걱정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혼자 고쳐 보려고 재빨리 순간접착제를 가져와 키보드에 붓고 버튼을 그 위에 맞춘 후 10초쯤 기다렸다가 키를 눌러 봤다.
그런데 이젠 아예 키가 눌리질 않는 것이었다. 허둥대다가 본드를 너무 많이 부어서 기판 틈새까지 붙어버린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앞이 캄캄했다.
다시 위쪽 방향 키를 강제로 부러뜨려서 분리한 다음, 기판을 볼 수 있도록 모든 키를 다 뜯어 내고 본드가 흘러 들어간 부분을 찾아서 송곳으로 마구 쑤시고 비볐다.
글로 쓰니까 짧은 시간 같지만, 당시 나에겐 너무나 길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결국 다시 조립하고 조심조심 방향키를 접착시킨 다음에 컴퓨터에 연결하자 정상적으로 동작했다.
그때의 일은 나에게 키보드의 구조를 알게 해 줬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가슴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누린 <데스트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