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근교에서 첫날 촬영일정을 마치자 마자 취재팀은 영국 북동쪽에 위치한 뉴캐슬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자고 ‘디스트럭션 더비’, ‘드라이버’ 시리즈의 리플렉션 인터랙티브를 만난 뒤 오후에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있는 더비(derby)에서 서클 스튜디오를 취재했습니다. 리플렉션은 'Day THREE'에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서클 이야기를 먼저 해 보겠습니다. : )
사실 서클 스튜디오는 이번 영국 취재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중후반 왕성하게 게임잡지 공략필자를 하던 당시 ‘너무나 인상 깊게 클리어했던 게임’이 바로 ‘툼레이더’였거든요.
그리고 서클 스튜디오를 설립한 제레미 히스 스미스와 그의 동생 애드리언 스미스는 바로 툼레이더를 개발한 코어 디자인(Core Design)의 설립자이자 주축이었죠. 그러면 이쯤에서 툼레이더 이야기를 해봐야 겠죠? : )
◆ 라라 크로프트의 탄생
1996년 ‘툼레이더’ 1편이 출시됐을 때는 제대로 된 시장에 제대로 된 3D 액션어드벤처 게임이 전무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자 인디아나존스’의 이미지와 ‘여전사’의 느낌. 그러면서도 충분히 섹시하고 도발적인 ‘라라 크로프트’라는 여주인공은 단숨에 전세계 게이머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개발자가 게이머 앞에 제시하는 상황들이란… 그야말로 ‘곡예’가 따로 없을 고난이도의 공중점프와 연계 조작이 요구됐습니다. 예를 들면 공중 3회전 후 착지 후 좌로 점프 한 뒤 미끄러져서 다시 점프 후 벽에 매달리기… 뭐 이런 식이었죠.
곡마단 단장 딸이 아니고서야…… 저걸 어떻게 깰까 싶었죠. 엄살을 피우면서도 하면서도 어느새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묘한 카타르시스. 툼레이더는 시대의 전형을 새롭게 써 내려갔습니다.
툼레이더는 올해로 탄생(출시연도 기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적지 않은 확장팩과 외전이 있었지만 본편만 놓고 따지면 지금까지 6편이 나왔습니다.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죠. 라라 크로프트는 죽다가 살아나기도 했고 6편에는 남자 파트너를 맞기도 했죠.
그러나 라라가 빠져 있었던 ‘매너리즘’의 늪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1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던 후속편들의 출시는 시리즈 누계 3,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가져다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시들시들 해지는 인기를 실감해야 했습니다.
결국 6편 ‘엔젤 오브 다크니스’(국내는 한빛소프트가 출시)에서는 게임의 조작법과 시스템을 완전히 바꾼 ‘도전’을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버그와 혹평 세례를 받으며 50만장에서 판매가 멈추다 시피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툼레이더 2편 ‘판도라의 상자’ 역시 제작비 대비 ‘흥행실패’를 기록하며 툼레이더 시리즈는 깊은 침묵에 잠깁니다.
이에 경영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던 툼레이더의 유통사 에이도스는 6편이 출시된 이후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되죠. 바로 툼레이더 차기작의 개발을 코어 디자인이 아닌 미국 소재의 크리스탈 다이나믹스(케인의 유산 시리즈 개발사)에게 맡겨 버린 것이죠.
해외 언론도 ‘코어디자인, 라라를 잃다(Core Design loses Lara)’고 표현할 정도였죠… 크리스탈 다이나믹스가 게임을 잘 만드는 것은 알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당황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요즘의 에이도스는 최근 인수되기만을 기다리는 ‘황혼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록그룹 U2의 리드싱어 ‘보노’가 있는 벤처캐피탈 ‘엘리베이션 파트너’에서 인수제의를 내놓고 활발하게 협상이 진행중입니다. 여기에 같은 영국기반의 게임유통사 SCi도 인수제안을 해 온 상황입니다. 어쨌든 에이도스의 매각은 기정사실이고 이제 둘 중에 누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의 일만 남았죠.
자~ 그러면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라라 크로프트의 아버지 스미스 형제를 만나보죠. : ) 형 제레미 히스 스미스는 1993년 영국 더비에서 코어 디자인을 설립하고 ‘툼레이더’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동생 애드리언 스미스가 합류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이었죠. 이후 동생은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등 비주얼쪽을 총괄하고 형은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식으로 코어 디자인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실제로 만나본 스미스 형제는 대단히 유쾌하고 따뜻한 이미지였습니다.
취재팀의 요청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있는 스미스 형제.
스미스 형제는 툼레이더 6편 엔젤 오브 다크니스를 출시하고 코어 디자인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서클 스튜디오를 설립했는데요, 코어 디자인의 핵심 멤버들도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신작은
3D 액션 어드벤처
‘위드아웃 워닝’(Without Warning)입니다. 조준은 1인칭 슈팅게임(FPS)처럼 하지만 시점은 3인칭이죠.
6명의 주인공은 미국의 화학공장지대를 점거하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를 저지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12시간.
게이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를 플레이하는데요(캐릭터 선택은 불가), 주인공들은 같은 시간대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움직이죠.
위드아웃 워닝의 ‘타임라인’ 시스템은 시간의 인과율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어떤 캐릭터의 플레이 결과는 다로 다음 캐릭터의 플레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한 캐릭터로 다리를 파괴했어야 하는데 파괴하지 못했다면 다음 타임라인에서 조작을 기다리는 캐릭터로는 상당히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식의 설정이죠.
캐릭터별 등장 순서도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3명의 특수부대원 위주로 진행되다가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서 3명의 일반시민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남성 기자’인 캐릭터는 테러리스트를 취재하기 위해서 현장 상공에 헬리콥터를 타고 리포팅을 왔다가 헬리콥터가 격추되는 바람에 사건에 연루됩니다. 가장 늦게 타임라인에 참여하는 캐릭터죠.
이렇게 마치 한편의 액션 영화나 TV시리즈 ‘한시즌’을 보는 듯한 느낌과 연출을 주는 것이 위드아웃 워닝의 목표랍니다. 라라 크로프트를 빚어냈던 그 특유의 센스를 살려 6명의 캐릭터는 각자 개성도 강하고 능력도 다양하게 설정됐습니다.
위드아웃 워닝에 이른 차기작의 컨셉트 아트웍을 그리고 있는 아티스트.
제레미과 애드리안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며 밟은 표정으로 작업현장을 아낌 없이 공개해주었는데요, 이미 SF 스타일의 차기작의 컨셉트 디자인에 착수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애드리언이 속사포 같은 설명은 취재팀이 얼얼할 정도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50명이 넘는 개발진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서클 스튜디오.
어느 정도 취재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애드리언의 방에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툼레이더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다크지니: “솔직히… 라라 크로프트는 영국게임의 자존심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미국 개발사에서 7편이 만들어지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콩글리쉬+바디 랭귀지~ @@..)
애드리언: “(지금은 카메라 안 돌아가죠? 힐끗~) 사실 그래요. 말도 안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현실은 현실인 것은 우리는 이제 툼레이더와 연관이 없으니… 그저 잘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국에게 있어 툼레이더,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는 ‘아이콘’이었죠. 타임즈 영국판이 세계유력인사 50명을 뽑을 때 라라 크로프트를 넣었던 이야기로 90년대 말 떠들썩 하기도 했죠. 그런면에서 툼레이더 브랜드를 가진 에이도스가 영국 유통사인 SCi게임즈에 인수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조금 나은 일이겠죠.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의 아버지, 제레미를 만났습니다.
다크지니: “툼레이더… 이젠 곁을 떠났는데 어때요?”
제레미: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는 저에게 많은 의미를 갖고 있어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죠…
우리는 6편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적절하게 구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덕분에 게임의 흥행은 쉽지 않았고 우리는 좋지 않은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죠…”
다크지니: “솔직히… 앞으로도 툼레이더 시리즈가 계속 되기를 바라나요?”
제레미: “영화도, 게임도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훌륭한 개발에서 만들고 있으니까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올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대해주세요!”
제작팀의 요청에 아주 열심히 응해준 스미스 형제. 고마워요~
서클 스튜디오를 나오면서 머리 속에 진하게 남은 것은 ‘형제의 마인드’였습니다. 사실밖에서 봤을 때 스미스 형제는 ‘패배자’이자 ‘도망자’일 수 있겠죠.
그러나 그들의 진실된 웃음에서, 내공이 깃든 게임시연을 보면서 여전히 ‘승자’임을, 여전히 ‘도전자’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드아웃 워닝,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