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가 매크로와 오토를 잡기 위해 드디어 칼을 꺼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서 ‘멀티박싱’이 금지된다. 개발사 블리자드는 2020년 11월 4일 공지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멀티박싱을 처벌 가능한 행위로 규정하고 경고-정지-영구정지 3단계를 거쳐 단속에 나서겠다고 통보했다.
멀티박싱은 ‘깜지 쓰기’와 같다. 연필로 종이를 빼곡하게 채운다고 가정해보자. 양손으로 글을 쓰거나, 연필을 여럿 연결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깜지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멀티박싱은 MMORPG에서 계정 여러 개를 동시에 플레이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편법에 해당할지 몰라도 많은 게임에서 허용된다. 봇이나 매크로로 규정되지도 않는다. 복수 캐릭터를 한 번에 조종할 뿐, 게임 상황을 판단하고 조종을 하는 주체는 여전히 플레이어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도 최종 사용자 라이선스 계약에서도 다중 조작에 대해 문제가 될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게임사도 멀티박싱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계정 동시 접속 및 클라이언트 중복 실행을 금지시켜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독 기반형 게임에서는 계정마다 게임을 사야 될 뿐더러, 클라이언트 중복 실행이 불가능하면 멀티박싱을 위해 PC도 추가 구매해야 한다. 조종하려는 두 캐릭터의 조작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를 경우에는 멀티박싱 이점도 없어진다.
반면 <와우>는 멀티박싱에 최적화된 게임이다. 한 PC에서 복수의 클라이언트를 실행할 수 있다. 통상 한 번에 클라이언트 하나만 조종할 수 있지만, 이는 키보드 입력을 여러 클라이언트로 분산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 해결된다. 멀티박싱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고, 커뮤니티에서도 ‘선을 넘지 않으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어둠땅> 확장팩을 앞두고 16년 만에 블리자드가 칼을 꺼냈다. 멀티박싱을 사용한 ‘오토’와 ‘매크로’가 게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와 멀티박싱을 병행한 유저에 대한 원성을 <와우> 커뮤니티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악성 유저는 멀티박싱으로 3~5개 계정을 동시에 조종한다. 이들은 필드 상의 특정 재료 아이템을 주로 수집하는데, 레이드처럼 게임 엔드 콘텐츠에 쓰이는 아이템의 재료가 주 대상이다. 획득한 재료는 모두 엔드 콘텐츠용 아이템으로 제작해 경매장에 판매한다. 그렇게 얻어낸 골드로 ‘30일 구독’을 결제하거나 현금으로 환원한다. 이는 게임 내 골드 및 아이템이 순환이 무너져 유저들이 불편을 겪는 원인이 된다.
법적인 문제도 있다. 멀티박싱 유저들은 최대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5개의 계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 블리자드 계정은 1인당 최대 3개 계정만 생성 가능하다. 즉, 3개를 넘어가는 멀티박싱은 계정 도용 혹은 대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