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업체가 유저들에게 30만 원을 받고 이벤트를 진행했다면 재심의 대상이 될까?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재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진흥법) 9조 2항에 있는 ‘게임물의 내용수정’에 관한 조항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 이벤트인가 도박인가?
<온라인 삼국지>라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위버인터랙티브는 이달 초 ‘만심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실시했다. 현금 30만 원을 결제하면 선착순으로 500 명의 유저에게 ‘만심의 상자’라는 아이템을 주는 이벤트였다.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30만 원 결제를 해야 한다는 점도 낯설지만, 더 놀라운 것은 ‘만심의 상자’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이었다.
위버인터랙티브의 이벤트 공지에 따르면 ‘만심의 상자’에서는 현금 100만 원부터 2만 원까지 다양한 금액과 아이템이 나온다. 상자에서 ‘현’이라는 가상 캐시가 나온다고 하지만 현금과 1:1의 가치로 사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현금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30만 원 결제’를 걸고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일종의 도박성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6월 1일에 이벤트가 시작되자 30만 원 결제 선착순 500 명은 순식간에 마감됐다. 500 명이 30만 원씩 결제했으니 이번 이벤트로 위버인터랙티브는 1억5천만 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벤트가 진행되자 대다수 유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임업체가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유저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유저는 정부 관련 단체에 제보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위버인터렉티브 관계자는 “월 충전한도 최대금액인 30만원을 넘지 않아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벤트를 마친 이후 유저들의 불만도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 ‘롤백’으로 증거인멸 후 오리발
이처럼 사행성이 짙은 이벤트가 진행됐지만 게임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는 답답하기만 하다. 해당 게임업체가 게임산업진흥법에 있는 내용심의 부분을 교묘히 피해갔을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해 3월6일 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게임업체가 패치를 진행했을 경우 24시간 이내에 재심의를 신청해야 하고 게임위는 일주일 내에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이벤트 역시 게임의 기존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정이 이뤄졌다면 재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이번 <온라인 삼국지>의 경우처럼 패치나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재심의를 넣지 않는 게임업체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벤트의 경우는 심의대상이 되는지 모르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더 큰 문제는 게임업체의 ‘오리발 내밀기’다. 게임위가 재심의에 영향을 미치는 패치와 이벤트를 포착하고 재심의를 요청했을 경우, 업체에서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에는 수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온라인 삼국지>의 경우도 비슷할 수 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사행성 짙은 아이템이 게임에 추가됐지만 유저들이 상자를 열어서 2만~100만 원의 현금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만심의 상자’라는 아이템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 삼국지>에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또 일부 게임업체들은 게임위의 지적을 받은 후 게임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롤백’을 통해 재심의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심의등급이 올라갈 것을 우려해 아예 기존 패치를 삭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도 결과적으로 게임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게임위에서는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게임위 “고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 많아”
게임위는 이 같은 악덕 게임업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게임위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심의를 받은 게임은 3,700 개, 패치 등의 내용수정으로 신고를 접수받은 게임은 4,000 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내용수정에 따른 재심의 이후 ‘롤백’ 등의 편법을 통해 게임위의 심의를 무시한 경우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위 전창준 정책지원팀장은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내용수정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벤트를 종료시키거나 패치를 롤백하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전 팀장은 또 “대형 게임업체들은 원칙대로 패치에 대한 재심의를 받고 있지만 중소회사들은 패치 리스트를 공개조차 하지 않고서 게임을 수정한 후 서비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는 게임산업진흥법의 개정과 관련해 이견을 보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게임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문화부와 ‘게임중독 등의 방지를 위한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복지부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만 원을 결제하고 참가한 이벤트에서 100만 원을 충전해 주는 ‘위버 백금화’를 뽑은 유저는 500 명 중 14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