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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용산 잠행] ‘R4는 여전히 팔리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닌텐도DS 불법기기들

정우철(음마교주) 2009-06-22 13:48:55

지난 6월 8일, 닌텐도DS용 불법복제 구동기기 R4의 수입·판매업자가 징역 8월의 실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나왔다.

 

올해 2월 14일 한국닌텐도 코다 미네오 대표가 최고 경영자 신춘 포럼에서 한국에서 닌텐도 같은 제품이 나오려면 불법복제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며 일침을 놓은 데 이어 2월 26일, 닌텐도는 한국을 주요 불법복제 국가로 꼽았다. 이번 R4 수입·판자업자의 실형 선고도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온라인 오픈마켓에서는 여러 가지 꼼수를 동원해 관련 물품이 여전히 거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원문보기])

 

그렇다면 한때 복사게임 천국으로 불렸던 용산 전자상가는 어떨까. 디스이즈게임이 직접 현장에 나가 봤다. /디스이즈게임 국순신, 정우철 기자


 

비가 내리던 6월 20일 토요일 오후. 용산 전자상가의 일명 도깨비 상가(오른쪽 사진)로 불리는 게임매장 밀집 지역. 도깨비 상가로 가려면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입구는 지나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상가 안의 풍경은 한가했다.

 

대부분의 진열대 앞에는 게임 타이틀만 놓여 있었을 뿐, 물건을 찾는 손님은 드물었다. 상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찾는 물건이 무엇이냐고 말을 꺼내며 호객에 나선다. 하지만 지나치는 손님을 붙잡지는 못 한다.

 

과거에 비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용산 도깨비 상가의 풍경이다.

 

매장 진열대 위에 닌텐도DS가 보인다. 지난 해 초부터 한국닌텐도와 오프라인 총판 대원게임에서는 불법기기인 R4 등을 판매하는 매장에 물건 공급을 끊은 바 있다. 대원게임의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면 이들은 R4를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

 

최근에는 R4를 수입·판매하던 업자가 징역 8월의 형사처벌을 받았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발효되고 이를 위반한 업자에게 책임을 물은 최초의 사례R4와 같은 기기를 수입하거나, 판매하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셈이다.

 

R4 판매는 실형을 받을 수 있는 범법 행위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실형 판결 이후에도 R4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용산 전자상가 주변은 차들로 북적거렸다.

 

 

여전히 용산에서 판매되고 있는 R4

 

“R4 요즘도 구할 수 있나요?”

 

그럼요. 지금 사실 건가요?

 

조심스레 도깨비 상가 게임매장 직원에게 R4를 판매하는지 물어봤다. 직원의 대답은 시원스레 나왔다. 주위의 눈치를 살핀 후 살짝 말을 꺼낼 것이라는 예상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칭 용팔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점원들이 친절해졌다는 것이다. 용산에도 경기 침체의 바람이 부는 듯했다. 점원이 R4를 꺼내어 보여줬다. 닌텐도DS에 넣은 뒤 간단한 시연과 함께 DSTT와의 장단점도 친절하게 비교하며 설명해 줬다.

 

게임매장에서 R4를 꺼낸 곳은 게임 타이틀의 DVD 케이스, 혹은 비어 있는 닌텐도DS 포장박스였다. 그 안에는 수십여 개의 R4가 들어 있었다.

 

R4의 가격은 2GB 마이크로SD 메모리를 포함해 4만 원. 4G 메모리를 끼면 5만 원이었다. 몇 군데를 둘러보면서 가격을 물어봤지만 이 가격은 거의 표준이 된 듯했다.

 

보통 수입·판매업자가 구속이 되면 물량이 모자라 가격이 상승하기 마련이지만 디지털 세상은 달랐다. 오히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진 게 가격 인하에 영향을 끼쳤다.

 

매장 전면의 진열장에는 게임 타이틀이 가득 차 있었다.

R4도 게임 타이틀 케이스에 담아 놓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용산의 한 게임매장 점원은 “R4 DSTT의 가격은 같지만 유저들은 R4를 많이 찾는다. 그 동안 이름이 알려졌고 호환성이 좋기 때문이다. 굳이 R4를 권하지는 않지만 유저가 원한다면 당연히 팔 것이다. 어떤 매장이든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에서 R4를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찾는 사람에게만 판매한다는 이야기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 용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오기 때문이다. 단속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점이 있었다. 예전엔 다소 큰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줬다면 지금은 R4가 포장 없이 판매되고 있다는 거다.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예전에는 R4를 구입한 유저가 직접 게임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마이크로SD 메모리를 같이 팔기 때문에 서비스 차원에서 원하는 게임을 넣어 준다. 또 박스를 같이 구비하면 단속에 대비하기 힘들다. 이제는 불법이라는 게 확정되지 않았는가.

 

 

물량 충원은 어디서?

 

발길을 돌려 전자랜드의 또 다른 게임매장을 찾았다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직접 물어봤다. R4 수입업자가 구속된 마당에 물량을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지 말이다.

 

영업 비밀인 양 머뭇거리는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비밀을 알려주는 업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번에 적발된 사람은 수입업자이기도 하지만 주로 온라인에서 판매하던 사람이라는 것. 용산에서는 별도의 수급 루트가 있고 매장마다 루트도 달라서 물량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일부는 국제우편 등을 통해 중국 판매처로부터 직접 물건을 받는다고 했다.

 

R4 등을 수입해 들여오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추적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대원게임이 불법복제를 근절하기 위해 해당 매장에 닌텐도DS 납품을 중단하는 강경책도 유명무실해졌다.

 

총판에서 물건을 받지 못 해도 온라인 오픈마켓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PC 부품의 경우도 용산 매장끼리 땡처리를 하면서 물량을 수급하거나 딜러를 겸하는 매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이해가 빠르다.

 

도깨비 상가 안으로 쭈욱 들어가면 PC 패키지 게임 타이틀 진열대도 볼 수 있다.

 

 

■ 남는 이윤이 정품 판매율보다 높아

 

용산 게임매장에서 불법 판결이 나온 R4 판매를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익성이 더 좋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 신품 닌텐도DS는 용산에서 보통 14만 원에 판매된다. 그러나 중고 닌텐도DS의 가격은 10만 원. 중고로 판매될 때는 제품 겉면에 난 흠집들도 깨끗하게 처리된다. 박스만 없을 뿐, 얼핏보면 신품과 거의 같다.

 

결국 용산 게임매장에서는 신품 닌텐도DS 한 대보다 중고 닌텐도DS와 R4 등을 묶어서 파는 게 훨씬 이익이다. 신품 닌텐도DS와  중고 패키지(NDS+R4)의 판매가격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는 이윤은 다르다.

 

신품 닌텐도DS를 한 대 팔 경우, 매장에 떨어지는 수익은 약 1만 원. 여기에 정품 타이틀 한 개당 1,000 원의 수익을 예상해 보면 11,000 원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중고 닌텐도DS R4를 끼워서 판매하면 최소 3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지난 해 R4 8만 원이 넘었을 때는 수익이 더 짭짤했다. 그때는 R4만 팔아도 신품 닌텐도DS보다 마진이 높았다.

 

용산에서 R4와 같은 불법기기의 판매가 근절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한 게임매장의 주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는 “어차피 닌텐도DS의 경우 R4와 같은 기기가 보급됐고, 실제로 대부분의 유저가 사용하고 있다. 또, 우리가 판매하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결국 용산에서 R4 같은 물건의 판매를 중단하고 정품 타이틀만 팔면 매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라고 말했다.

 

게임 타이틀은 출시 2개월이 지나면 신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저들은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 총판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더 이상 출고하질 않는다. 결국 유저들은 중고를 구입하거나 R4 같은 기기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용산이 원해서라기보다 유저가 원하고 있다. 우리는 장사꾼이니 팔 수 있다면 구해 놓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찾는 사람이 있고,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R4는 계속 팔리고 있었다.